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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신비
조회수 | 2,177
작성일 | 06.08.12
하나의 빵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빵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성체성사를 언어에 비유해 가르쳐 준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의 울림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말(言)이 되고, 말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진리가 되듯이,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빵의 표지도 빵이라는 본질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신비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 말씀은 성체성사의 신비뿐 아니라, 신앙인이 생명의 빵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깨우쳐 주신다고 봅니다. 사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이 모두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말은 진리를 거슬러 상처와 불신과 미움을 낳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을 별다른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받아 모신다면, 그리스도의 신비로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곧 주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 변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구원받기에 과연 충분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신앙생활의 변화에 대해 왜 그렇게 간절히 호소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1-32). 에페소 공동체인들도 주님의 성찬례에 참여하던 신앙인들이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간절히 호소합니다(에페 5,1-2). 그 이유는 생명의 빵을 먹는다는 의미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생애를 따른다는 우리의 결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응답인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신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 6,47-50). 광야의 여정에서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고도 등을 돌렸던 백성들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원망하고 달아났던 예언자 엘리야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음식으로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결국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갔습니다(1열왕 19,8).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의미는 생명을 향한 창조적 여정을 전제합니다. 우리 내면 저 깊은 곳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이 우리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하도록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응답이 “아멘”입니다. “아멘”은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바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는 응답인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홍승모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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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인 우리들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지금, 미래 그리고 영원히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 안으로 초대하며 영원한 생명 안에서 마음껏 누리길 바라십니다. 다른 말로,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거나 불안에 떨지 말고 평화 속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근심은 ‘책임, 공포 등을 느끼는 감정’, ‘관심, 애정을 갖고 있는 사물, 사람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 ‘불안한 상태’, ‘마음이 괴로운 상태’ 등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영의 상태는 근심하거나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으로 머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4).

모든 것이 채워졌을 때 즐긴다고 한다면 우리는 평생 즐길 수 없을 겁니다.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긴장을 풀고 삶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샘에서 물이 솟아 흐르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 샘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흙을 파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처럼 내면에 있는 기쁨을 끌어 올리는 것은 웃음과 노래와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쏟아져 나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시편 118장 24절은 말합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요한 복음 1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필립비서 4장 4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부정적 태도, 곧 화와 원한과 서러움을 품을 수 있었지만 늘 기뻐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기뻐하고 찬미하는 건강한 태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또한 고난을 그리스도와 내밀한 관계를 맺는 기회로 여기며 기쁨으로 극복합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24) 우리는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4,13) 너무 긴장하지 맙시다. 가벼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비우십시오. 삶을 즐겁게 사십시오.

서울대교구 문종원 베드로 신부
  |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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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빵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성체성사를 거행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는 말씀 때문에 술렁거리는 군중들에게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라고일침을 놓으십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하고 천명하십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오래전에 이 빵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애를 썼던 때가 기억납니다. 1989년 10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모시고 서울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거행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룩한 이 행사를 위해 각 본당에서는 내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몇 개월 전 신수동 본당에 부임한 저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봄 사순절에 100명씩 세 차례에 걸쳐 정동 프란치스코 피정의 집에서 1박 2일 피정을 계획하였고, 거기에 제가 해야 할 강의를 매번 3시간씩 넣었습니다. 열정에 가득 찬 젊은 본당 신부였던 저는 이 강의를 위해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해 나갔는데, 피정을 약 열흘 앞둔 시점에서도 전혀 준비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젊기 때문에 힘은 넘쳤는데 내적인 지식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유혹에 시달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습니다. 지금도 그 꿈이 생생합니다. 높이 오르는 계단이 있어 오르다 보니 그 계단은 구름 속을 뚫고 지나갑니다. 계단 맨 위에 오른 저는 구름을 내려다봅니다. 그 순간 보이는 구름 속에서 까만 점들이 무수히 나타나더니 그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면서 둥그런 원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원이 구름 속에 살짝 숨더니 그 원 안에서 아름다운 붉은 빛이 쫙 비추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는 “야! 성체다, 성체다!” 하고 외쳤습니다. 꿈을 깬 저는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 또다시 포기하고 싶을 때면 그 꿈을 상기하게 되고 그러면 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힘이 생겼습니다. 여하튼 고진감래 끝에 피정은 계획대로 끝났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라는 말씀이 되새겨집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은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본능적이어야 합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지금 이루고자 하는 것이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에 부합한 것인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그 분별이 옳다면, 그 안에는 늘 희망이 살아 움직입니다. 이 희망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리라는 본능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잊지 맙시다.

▦ 서울대교구 홍성만 미카엘 신부 : 2018년 8월 12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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