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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난 무얼 했나”
조회수 | 2,257
작성일 | 06.08.12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터미널이나 지하철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가두 선교하는 모습입니다.

확성기를 들고 크게 외치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심지어 타종교인들과 심한 말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같은 일을 목격한, 믿지 않는 분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 역시 그 같은 일로 상당한 불쾌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글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반성의 글로 다가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TV <칭찬합시다>에 등장했던 어느 스님, 고아들을 거두어 택시 운전을 하시며 돌보시는 부산의 스님, 지하철로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구하려고 이국 땅 일본에서 살신성인의 덕을 보여준 불교도인 고(故 )이수현 청년,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영국에 대항하여 비폭력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루어낸 힌두교도인 마하트마 간디 같은 분들도 정녕 지옥에 가야만 하는가? 정말로 예수만 믿었지 인간성의 됨됨이는 싸가지 없는 속물 근성의 기독교인들… 그런 자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간다면,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가서 세종대왕님이나 이순신 장군님을 만나 뵙고 지옥 불장난이나 하련다.”

참으로 예수님을 죄스럽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렇게 보여졌다면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복음의 생명의 빵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세상에 나누지 못한 죄와 그 불충으로 재를 뒤집어쓰고 단식을 선포하며 참회의 예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믿고 외쳐왔던 생명이신 예수님을 욕되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삶이 온전한 나눔이셨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어 세상에 생명이 되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살지 못한 불충의 죄를 우리가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나눔을 너무나 애타게 바라는 이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내려옴의 신앙

우리는 너무 자주 부활 신앙을 강조하여 왔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너무 도취하여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은‘강생’이요, ‘내려옴’이라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자주 잊고 살았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마지막으로 생명까지 나눌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감히 그리스도인이라 외칠 수 있는 길임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은 가장 낮은 자리, 비천한 자리로의 내려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상 가르침은 온전한 나눔, 생명의 빵이 되심이었습니다. 그 같은 삶의 뒤에 부활이고, 천국인 것입니다. 내려오지 않고 지붕 위에서 외치기만 한다고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천국에 계신 성인 성녀들은 끊임없이 내려오는 삶을 사셨고 그것이 영원한 생명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서> ‘겸손’의 장에는 “땅으로 내려오는 자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늘의 하느님을 모시고 있으면 우리가 하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심사상에는 늘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내려오심이 강조되어 있고, 장엄한 성경의 끝인 묵시록에는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묵시 21, 3)

오늘날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아베 피에르 신부님은 복음의 진복팔단을 묵상하시면서 ‘마음이 가난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신바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국가의 원수이건, 회사의 우두머리이건, 또는 노동조합 책임자이건, 교사이건, 매일 저녁‘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라고 자문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하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세상에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에 남으시고자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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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대가리와 생명의 빵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하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십니다. 밥을 먹어도 맨 밑에 누른 밥을 좋아하시는데, 그나마 먹다 남은 찬밥이 없을 경우에 그러합니다. 삼겹살을 먹을 때도 야채만 좋아하시고, 자장면 짬뽕을 먹어도 국물만 좋아하십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정말 좋아하시는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맛있다는 생선 대가리를 먹어 보지만 쓴 맛만 납니다. 그나마 붙어 있는 살은 발라내어 먹기가 어렵습니다. 삼겹살에서의 야채는 고기 맛을 돋우어 주고 영양분을 조절해 주지만 결코 그 자체로는 별 맛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세상 누구도 양념만을 먹기 위해 자장면을 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좋은 것도 모자라 더 좋은 것을 자녀들을 위해 내어 주고 자신은 덜 좋은 것을 택하십니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선택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 51).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깨닫는데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또 서품을 받고 사제로 살고 있는 지난 1년 동안에도 여전히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분은 진정으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우리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그분은 하염없이 자신의 살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왜 그토록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려고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 좋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당신이 가지려 하셨던 그 마음을 사제로 살면서 조금씩 느껴봅니다. 덜 좋은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좋은 것을 가지려는 계산된 행위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것마저 내어 놓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어려서는 생선의 살을 먹으며 육신이 자랐고, 이제는 예수님의 살을 먹으며 영혼을 살찌워갑니다. 이제 우리도 생선의 대가리를 먹고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몸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일환 바오로 신부
  |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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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빵 힘

포천 송우리에는 포교 성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분도 마을이 있습니다. 분도 마을은 어르신 요양원인데, 산자락에 펼쳐진 단 아한 정원과 붉은 벽돌로 단단히 지어진 단층의 요양원은 따듯한 수녀님의 모습과도 참 잘 어울렸습니다.

재작년 솔모루성당 보좌신부였던 저는 한 달에 한 번 그곳에 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한 번은 할머니들을 좀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근처 빵 집을 들렀습니다. ‘아무래도 어르신 분들이 좋아하실 빵들은 소보로, 단팥빵, 앙금빵들이겠지.’ 하며 싹쓸이했습니다. 솔직히 강론보다 백배는 좋아하시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고 신나게 흥얼거리며 분도 마을을 향해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얼마나 뜨겁던지요!

빵을 사왔습니다. 시작 인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면서 좋 아하셨는데, 그 중에는 왜 신부님이 돈을 쓰게 만드느냐, 신부님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걸 사오시냐 하시며 괜히 옆에 앉아계신 수녀님에게 볼멘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나 그날 미사 때 부르시는 성가 소리는 정말 크고 웅장했고 그야말로 천상의 군대만 같았습니다.

거룩한 성체와 성혈을 거양하는 순간, 숨소리마저 죽인 채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 선도 뜨거웠습니다. 소보로의 그것과 단팥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함을 바라고, 청하며, 간절히 구하는 감사의 기도가 느껴졌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하나둘 휠체어를 밀고, 끌어주며 경당을 나가는 어르신께 빵 을 한 개씩 나눠 드렸습니다. 그런데 빵을 잡으시지만 시선은 저의 눈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좋다, 고맙다, 사랑한다, 계속 보고 싶다는 눈빛입니다. 잘은 몰라도, 자신을 나눠주시는 예수님의 시선과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문득, 거양되는 예수님의 몸을 바라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속으로 한껏 외치셨을 기도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내용은 모릅니다. 다만 그 내용을 얻기 위해 예수님과 약속한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나가면서 신부님과 인사할 때에 손을 꽉 잡아 줘야지.

▦ 춘천교구 이지목 안셀모 신부 : 2018년 8월 12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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