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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조회수 | 2,177
작성일 | 05.12.15
세상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신앙인인 우리들보다 더욱 간절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거리의 화려한 조명 장식들과 캐롤, 선물을 사려고 거리를 나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먼저, 크리스마스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행의 차원으로 자신만의 즐거움보다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다 우리 모두 동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크리스마스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빠져있음을 주시해야 될 것입니다.

1995년 세계 청소년 대회가 필리핀에서 열렸을 때 그곳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학교 교실에서 숙식을 하던 어느날 우연히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실 뒷칠판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다음의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① 새옷을 사는 날이 아니고,
② 선물을 주고 받는 날도 아니고,
③ 크리스마스 추리 장식을 하는 날도 아니고,
④ 함께 모여 케익을 먹는 날도 아니고,
⑤ 캐롤송을 부르는 날도 아니고,
⑥ 25일 단 하루만의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사랑을 전하는 날입니다.”

짧은 글이였지만 저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는 곧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며, 또한 온 세상 모든 곳에 하느님 구원계획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의 희망을 얻게 되었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인간의 역할을 함께 요청하시며, 그 응답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였기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였고, 이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세례로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마리아처럼 하느님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불린 이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우리 자신을 마리아처럼 겸손되이 내놓지 않으면, 주님께서 단지 우리와 가까지 계시지만 진정 우리 마음 안에, 우리 곁에 오실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진실로 일어나는 하느님 구원 역사의 영광과 기쁨의 사건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놓은 구유 위에 놓여있는 조형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구원을 계시하시며, 당신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시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 구원의 기쁨과 영광, 환희에 동참하는 것은 결국 우리 각자 자신의 몫으로 하느님께서 남겨두시며, 매 순간 그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적인 의로움이나 노력이 아닌, 하느님의 뜻,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그분만을 믿으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당신의 영광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음을 오늘 마리아의 모범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이승엽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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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05년 여름, 제가 신학과 4학년 때 동성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였습니다. 수업 중에 제가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어떻게 했죠?” 그리자, 한 학생이 “낙태요!” 라고 대답을 해서 몹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학생의 관점에서 볼 때,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 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아마도 어느 한 병원에서 소문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세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실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께서 자발적인 겸손과 순명을 통해서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당대 처녀신분에 아기를 갖는 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성모님의 희생과 순명, 겸손을 통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날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태중의 아드님을 간절히 기다리셨듯이, 암사슴이 애타게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이, 또한 파수꾼이 들짐승과 산짐승들을 피해서 눈이 빠지도록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듯, 이 대림시기는 바로 모두가 그토록 염원하던 메시아가 탄생하는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갈망과 인고의 시간입니다. 이제 어느덧 대림 제4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환의 마지막 흰 촛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흰색은 바로 티없이 맑고 깨끗함과 순명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성모님을 닮았다는 것을 그분들의 신앙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멀리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성모님의 기도를 판에 박은 듯한 기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성모님은 잉태된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습니다. 이를 ‘무염시태(無染始胎)’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바로 순백과 같은 맑고 깨끗한 ‘무염시태’ 안에 당신의 탁월한 순명으로 예수님을 맞이하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성모님의 ‘무염시태’와 ‘순명’을 묵상하며, 우리의 깨끗한 마음과 정신, 영혼으로 성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 내게 응답을 주시지 않는 것일까? 하느님께서 응답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정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응답을 우리가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고통과 번뇌, 어둠,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의 응답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던 성모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랑 넘치는 성가정 안에서, 다가오는 성탄을 기다리는 뜻 깊은 대림 4주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아멘.

김동규 바오로 신부
  |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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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無後無한 인사

대림주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에는 마리아의 역할을 묵상하면 좋을 것입니다. 전에 본당에서 겪은 일입니다. 예비자 교리반에 타종교에 다니다가 온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가 묵주의 기도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 자매의 질문인즉, 주님의 기도의 횟수보다 성모송을 더 많이 하는 이유가 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가 성모송보다 더 중요하고 우월한 기도로 알고 있었는데 왜 천주교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황당한 질문 같았지만 생각해보면 틀린 질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자매는 내 답변에 실망해서 도중
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혼자서 오늘 복음 루카 1,1-50 성서를 묵상하면서 성모님께 전구의 기도를 했습니다. 즉시 성모님께서 알려주시는 듯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내 나름의 성모송에 관한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께 아룁니다. 대화 도중에 천사는 결정적인 답변을 합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감싸주실 것이다. 따라서 태어나실 그 아기의 이름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카 1,35)

저는 이 구절을 교우들에게 이야기 하면서 혹시 타종교 신자나, 마리아를 잘 모르는 이에게 꼭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합니다. 어느 한 여인에게 하느님께서 친히 이런 인사말씀을 들려주신 경우는 신·구약 성서 전체를 찾아봐도 하느님의 전달자
에게서 이런 인사를 받아본 인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 이외의 그 어떤 피조물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역사한 경우는 없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이 직결된 천사의 인사(아룀)인 것입니다.

천사의 아룀은 온 인류가 수 천년을 기다려온 첫 번째 구원송, 즉 첫 복음입니다. 천사는 하느님 말씀의 전달자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마리아는 최초로 온 인류를 대신해서 엄청난 희망의 말씀, 위로의 말씀을 들은 것이고, 곧
성령을 잉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의미가 담긴 메시지를 자주 반복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은혜아닙니까? 그때부터 저는 교우들에게 성모송을 가리켜서 온 인류의 구원송이라고 전하곤 했습니다.

성모송은 주님의 기도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기도가 아닐 뿐더러,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고 성모송은 온 인류의 구원이 직결된 천사의 인사이기 때문 입니다. 루카 1장 35절. 장, 절을 외우기도 쉽습니다.1,3,5,7로 나가거든요.

송영준 신부
  |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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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말씀과 성체

세 번째로 맞이하는 여름 성탄이지만, 아직까지 케이프타운에서의 성탄은 적응이 되지 않는 듯합니다. 늘 추운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고 맞이했던 성탄과 달리 여기는 가벼운 옷차림과 해변이 연상되는 여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계절과 공간을 초월해서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인 우리 모두에게 오십니다. 오늘 밤에 모든 공동체에서는 성탄 밤 미사를 봉헌하며 구유에 계신 아기예수님께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보고 싶으신지 올해의 대림 4주일은 단 하루만 지내고바로 예수 성탄 대축일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말씀하신‘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오늘 복음처럼 이제 곧 우리의기다림과 설렘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에 오심으로써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추상적이며 머리로만 이해하는 기쁨이아니라 참 기쁨이 되려면 성탄을 맞이하는 어떤 특별한 준비 과정이 있다면 더 좋을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케이프타운 한인 공동체는 참으로 기쁜 성탄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저를 포함한 많은 신자 분들이 성경을 365일로 나누어 매일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말씀 안에 계신 주님을 생각하며 말씀의 힘과 살아계심을 느꼈기에 이번 성탄은 더욱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

또한 이번 성탄을 맞아 두 명의 예쁜 친구들이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2017년의 성탄은 성체의 형상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모시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을 것입니다. 더불어 첫 영성체는 우리 모두에게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한 번 더 묵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에 이번 성탄은 더 피부에 와 닿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동안 많은 신자 분들이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기에 앞서 고해성사나 성경 읽기, 매일 미사 참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그 준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참 기쁨의 결실을 맺길 희망합니다.

대림 시기를 마무리 하고 성탄을 맞이하는 오늘, 말씀이신 예수님, 성체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전 세계 모든 신자들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지금, 사랑이시며 살아계신 주님을 깊게 묵상합니다.

▦ 의정부교구 하정호 안드레아 신부 : 2017년 12월 24일
  |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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