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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행복한 기다림
조회수 | 2,332
작성일 | 05.12.15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여러분,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오랫동안 기다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있으시겠지요. 기다림을 생각하면 어릴 적에 소풍가는 날을 몇 일전부터 기다렸던 기억도 나고, 이웃집에 연도 드리러 간 할머니가 맛있는 것 싸들고 오기를 늦은 밤까지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또 서품 피정을 하면서 사제가 되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여러분들도 다들 각자 아주 애절한 기다림의 기억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누구를,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릴 사람이나 사건조차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복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오늘의 삶을 지탱해 내일로 향하게 할 원동력인 '기다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다림이 없을 때 사람은 스스로 절망하여 삶을 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오늘'에 그 뿌리를 내리고 '내일'을 지향하도록 합니다. 내일이 없으면 기다림도 없거니와 오늘이 없어도 기다림은 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내일'에 속한 사람을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이 지금 여기에 착실하면 그 기다림이 그를 살아있게 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의 속성상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기다림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늘'을 착실히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런데 잘못된 기다림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떠나, 있지도 않은 '내일'을 헤매게 함으로써 삶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한 때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휴거 소동을 벌이면서 가산을 처분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패가망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잘못된 내일을 기다린 것이지요. 오늘을 떠나 내일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오늘을 잘 보내는 사람만이 충만한 내일을 잘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깨어 있어라, 늘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자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성서 안에서 늘 깨어 준비하면서' 제대로 기다림을 충실히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세례자 요한도 그러했고 즈가리야나 엘리사벳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시므온과 안나도 그러했고 또 동방박사들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잉태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셨던 성모 마리아만큼 충실한 기다림을 보낸 분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올 모든 고난을 예견하면서도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과 사랑을 감지하고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치며 기다리셨던 성모님은 가히 우리들의 진정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 뿐만 아니라 기다림을 충실히 살았던 다른 이들도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대림 마지막 주일을 맞이해 기다림에 대해 묵상하면서 성모 마리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던 성서 속의 모든 인물들처럼 우리도 남아 있는 대림시기를 충실히 보내야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이 오실 길을 미리 빗질하는 심정으로 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예수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늘 정갈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자신과 이웃을 돌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처럼 밤낮 단식하고 기도하면서 회당을 떠나지 않는 열심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예수님을 두 눈으로 보고 감사와 찬미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구세주 예수님을 내 안에, 내 가정에 모시고 살면서 하루하루를 늘 기쁨과 감사와 찬미로 보내는 신앙인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인생의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면서 하루하루를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살아볼 수는 없을까요?  

주님을 간절히 기다렸던 이들의 하루는 바로 인생 전체였고 그 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그들은 희망 속에 인생 전체를 알차게 꾸미며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이 대림시기도 이제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일주일만이라도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아가는 제대로 된 기다림을 만들어 봅시다. 그러면 그 기다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인생이 언젠가는 주님을 만날 그 기다림 속에 사는 것이라면, 우리 인생 전체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희망 속에 기다리는 은총의 기간, 곧 '대림'이 되는 것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듯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때 언젠가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기쁘게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기다림이 진정 '행복한 기다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황재모 안셀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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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처럼 우리도 ‘뜻’을 세웁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내셨습니까? 12월 8일에 우리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그 날도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복음 말씀은 우리가 묵주 기도를 드릴 때 바치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를 계속 바쳐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 줍니다. 그 이유란 천사의 이 말씀이 우리 구원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히 천사가 알려준 하느님의 뜻에 마리아께서 하신 “예”라는 응답을 묵상하렵니다.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뜻’에 ‘예’함으로써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뜻’을 세우십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원의’나 ‘의지’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신혼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건강한 이 부부는 자녀를 낳을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능력이 있다고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낳을 ‘뜻’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눈을 가졌다 해도 보려는 ‘뜻’이 없으면 보지를 못합니다. ‘뜻’이 없으면 생명 없는 눈과 같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공부할 ‘뜻’이 없으면, 공부를 못합니다. 이렇듯이 ‘뜻’은 눈이 아니면서도 눈에게 생명을 줍니다. 아무리 손이 싱싱해도 손을 쓸 ‘뜻’이 없다면 있으나 마나 합니다. 튼튼한 발이 있어도 걷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걷지를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뜻을 두느냐 안 두느냐에 따라 생명력이 있든가 없든가 합니다. 뜻은 손도 발도 아니지만, 손과 발이 살아 움직이도록 생기를 넣어준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있어도 사랑할 ‘뜻’이 없으면 그 사랑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뜻’은 사랑이나 소망이나 감정이 아니지만, 사랑과 소망과 감정에 생명을 줍니다. 공소 예절에 올 만해도 올 뜻이 없으면 오지 않듯이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뜻’을 세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세상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 하시더라도, 그러실 뜻이 없으셨다면, 원하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창조되지 않았겠지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랑 안에서 비로소 나타납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의 뜻이 이룬 열매입니다. 에덴동산에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나라를 떠나면 하느님의 뜻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온갖 불행 속으로 추락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은 내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고향에서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에 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께 두신 큰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뜻이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께 알려지는 내용입니다. 천사는 이렇게 전해 줍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느님의 뜻을 전해들은 마리아는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그 신비를 곰곰이 묵상하십니다.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의 힘으로 그렇게 하시기로 뜻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천사의 설명은 들은 마리아는 망설임 없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뜻에 당신의 뜻을 내어드립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을 통해 알게 된 내용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모님의 이 뜻을 우리 삶의 출발점으로 삼읍시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뜻을 세웁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요. ‘하느님의 뜻이 제게 이루어지는 것이 제 뜻입니다.’ 라고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까?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이 에덴동산에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에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우리는 평화의 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잘 풀려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묾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주님의 탄생일을 직전에 두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시는 그분의 뜻에 나를 내어드리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드리기로 뜻을 세우시기를 권면합니다. 기쁨 넘치는 성탄 축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춘우 프란치스코 신부
  |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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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약속, 믿음, 겸손, 순종”

찬미예수님!
우리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성탄절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이 뜁니다. 이번 성탄절은 어떤 일들이 생길까요? 어떤 이는 ‘올 성탄절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성탄 전야제 행사 준비로 바쁩니다. 학생들은 밤샘 파티 계획에 분주한 마음이고, 꼬마 친구들은 성탄 때 받을 선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잊고 지낸 친척이나 은인, 친구들에 보낼 성탄카드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탄절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고 모두가 똑같습니다.

성탄절에 무슨 약속이 있으십니까?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애인을 만나야지.’, 아니면 ‘누구랑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를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지인들끼리 식사 등의 약속이 있든지, 아니면 대부분의 신자 분들은 ‘성당에 가서 성탄미사 드리는 것 말고는 약속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약속했던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약속이란 우리들의 개인적인 그런 약속들이 아니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 탄생은 그저 갑자기 준비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에서 미리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한다는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이보다 더 엄청난 일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기의 모습으로,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은 대림 4주일입니다. 제대 앞에 대림초도 이제 4개가 다 켜졌습니다. 오늘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 31)라고 하며, 잉태 소식을 전합니다. 마리아는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하며, 겸손한 마음과 굳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대림 시기는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기다려야 할까요? 신앙은 본질적으로 순종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믿음과 순종을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오시도록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이 오시도록 그분의 자리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비우고 그분이 내 안에 오시도록 나를 기꺼이 그분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매년 그분의 오심을 상징적으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매년 똑같이 그냥 흘러가는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느낌으로 오는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성탄절은 “기다림, 약속, 믿음, 겸손, 순종”으로 가능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곧 임박 했습니다. 내 마음의 포대기를 펼쳐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시다. 아멘.

이태균 스테파노 신부
  |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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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의 마지막 주간, 여러분들의 일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을 통한 약속

오늘 1독서에서는 다윗이 하느님께 좋은 집을 지어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의 마음만을 받으시고 오히려 다윗의 가문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즉 다윗의 후손 하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 국권을 튼튼히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하느님께 대한 지극한 마음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의 가문을 위대하게 이끌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마리아를 통한 구원 역사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이 인사에 몹시 당황합니다. 하지만 그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0-31) 하고 그 신비를 일깨워 줍니다. 천사의 설명을 들은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당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천사에게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가르침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신비는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새로운 시작이자 정점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오늘 우리는 대림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을 통해 새롭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곧 만날 것입니다. 때로는 터무니없는 상황들이 우리들 앞에 들이닥쳐, 삶을 힘겹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삶을 통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와 함께 계시는 그분을 따라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분을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고백한 말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안동교구 김기현 모이세 신부
  |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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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주님의 종이오니

오늘 주일로 대림시기가 끝나고, 오늘 밤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봉헌합니다. 제대 앞에 켜져 있는 4개의 대림초는 구세주를 기다려 온 인류의 오랜 기다림을 나타냅니다. 그동안 성탄을 준비하느라고 여러 가지로 바빴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죽음에 다다른 인류에게, 하느님께서는 구원계획을 예고하시며,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1독서에서 다윗 임금은 하느님께 영원한 왕좌를 약속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왕좌를 차지할 다윗 가문의 메시아를 약속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왕국의 분열과 멸망을 보면서도, 약속된 메시아는 모든 민족을 구원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민족들은 믿음의 순종을 통해 이 신비를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오랜 세월 감추어 있던 구원의 신비가 주님 성탄으로 온 세상에 환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주님 성탄의 신비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주님의 성탄을 예고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구세주의 탄생이 이 세상에 실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모님의 순종을 본받아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구원에 이르도록 초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아룀으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받아들여,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순명합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탄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으로 인류는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삶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 가장 확실한 징표입니다.

그동안 성탄을 잘 준비하느라고 성탄 트리와 구유도 만들고, 죄의 용서를 위해 고해성사도 받고, 이웃에게 따뜻한 도움도 주고, 여러 가지로 분주했습니다. 늘 이와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주님은 이제 우리 주위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분들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굳은 신앙을 갖고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 안동교구 전장호 프란치스코 신부 : 2017년 12월 24일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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