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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님의 탄생 예고
조회수 | 1,992
작성일 | 05.12.16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변화하고픈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하고 싶지 않은 욕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와 함께 비록 불편하더라도 지금 이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상담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변화하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변화를 위한 일들을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상담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변화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낯설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변화가 요청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의 말씀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변화의 과정을 깊이 묵상하게 해줍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마리아에게 전해주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이 인사말은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신앙의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와 목적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하는 문제는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천사가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영적진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영성생활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영성생활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분명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인사를 듣고 몹시 놀라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살이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영적진실을 깊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사는 영적인 삶의 모습을 배우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영적 진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놀랍고도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이 영적진실을 되새김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성장합니다. 천사는 이제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혀줍니다. 마리아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며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상의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뜻밖의 소식과 두려운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들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 속에 드리워진 하느님의 섭리가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전해진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전해 듣고 보이는 태도는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접할 때 우리 자신 안에 일어나는 반응을 보여줍니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영적여정에는 늘 놀라움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성장통을 겪듯이 영적인 삶 안에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를 위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또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도 때로는 뜻밖의 소식처럼 전해지는 하느님의 뜻과 변화해야 한다는 엄연한 요청 앞에서 마리아처럼 놀라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에게 ‘놀라움’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 안에서 기쁨으로 바뀌고, ‘두려움’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 안에서 신뢰로 바뀝니다.

놀랍고도 두려운 하느님의 뜻을 대하게 되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 길을 갈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으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었던 신비의 계시로 우리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로마 16, 25)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뜻 앞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고서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했듯이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뜻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다가오는 주님의 성탄을 기다립니다.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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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약의 문을 연 신약 최초의 신앙인 마리아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 마을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자연 질서와 충돌하는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며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예"라고 답한다.
 
어떤 사람이 '인간은 무엇이며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하는 답을 얻으려 깊은 생각에 잠겨 시골길을 산책했다. 그러다 큰 나무 그늘 아래 누웠는데, 높고 큰 나무에 달려 있는 작은 도토리들과 시들고 가느다란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호박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만약 내가 하느님이라면 공평하게 저 큰 도토리나무에는 호박처럼 큰 열매가, 가늘고 긴 줄기에는 작은 열매들이 달리게 할 텐데….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게 분명해"하고 생각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토리 한 알이 그의 콧등 위에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하느님 맙소사! 저렇게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게 도토리가 아니라 호박이었다면 내 코는 어떻게 됐을까?"하고 놀랐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존재를 받아들인다.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 저자 빅토르 위고가 하느님을 믿게 된 유명한 일화다.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총체적 구원 계획은 한 인간의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인 크고 작은 신앙체험, 즉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에서 시작된다. 이는 개인에게서 전체로 확장돼 간다. 하느님은 당신 구원사업에서 필요한 대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선택해 그들을 통해 당신이 의도하신 목적을 실행하신다.
 
빅토르 위고같이 일상생활을 통한 사소한 자연적 신앙체험도, 마리아의 초자연적 카리스마도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초대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 그를 초대했을 때 "예"하고 응답했다. 이 "예"라는 절대적 신앙심으로 새로운 구세사가 시작된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말씀',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 계획에 "이루어지소서", 곧 "예"하고 응답함으로써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이며 신약 최초의 신앙인이 되셨다. 하느님 은총을 받기 전 나자렛 처녀 마리아와는 영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하느님 뜻에 일치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작은 바늘 하나가 커다란 자석에 붙어 있는 동안에 그것은 이름만 바늘일 뿐이다. 바늘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석이 돼 쇠붙이를 끌어당긴다.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 사랑'이라는 자석에 붙은 바늘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마리아의 변모는 그리스도인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의 이념이나 세계관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하느님의 초대, 곧 구원을 "예"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 여정이 바로 마리아의 일생, 마리아의 길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터전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초대받고 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 초대에 "예"하고 응답한다. 사랑은 인간의 것이 아닌 하느님 속성이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또한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들었다. 또 내개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며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대림 마지막 주일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이 세상에서 천상의 삶을 미리 맛보게 하는 또 하나의 마리아가 돼야 한다. 우리 이웃에게 신앙의 모델이 돼야 한다. 정직하게 자신을 반성하는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향하고 곧 오실 우리 구세주를 "예"하며 기꺼이 맞이할 준비를 하자.

서광석 신부
  |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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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준비의 기다림 속에 어느덧 ‘대림 4주일’이 되었습니다. 제대 앞에는 주님의 탄생을 위해 네 개의 대림초가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지 그것을 준비하고 계획을 얼마나 잘 했는가에 따라 진정한 결과의 성과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쁜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약속과 인간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그 절정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구세주께서 오는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님께서 강림하심으로써 대림절은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만민을 구원하실 구세주께서 마리아라는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심으로써 기다림의 시대가 끝나고 환희의 새 시대가 개막되려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메시아를 잉태할 것을 알립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는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듣고 순명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으로 구원이 세상에 오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두 마디의 말 때문에 마리아는 두려움과 걱정을 물리치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사실 우리가 힘겨워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혼자라고 느끼며 외로움에 싸여 있을 때, 실패하여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고단한 삶에 지쳐 있을 때, 실패와 좌절로 절망 중에 있을 때, 큰 슬픔과 고통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송호석 실베스텔 신부
  |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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