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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단
조회수 | 1,829
작성일 | 06.09.29
오늘 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9, 38-41)는 어느 날 제자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한가지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 우리 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금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한의 배타적인 사고방식에 예수님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열린 마음, 공유하는 마음, 포용하는 마음'을 주문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9, 42-47)는 '손이, 발이,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버리고 빼어버려라.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가르침은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합니다. 이대로 실천하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서 우리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모두 외팔이나 절름발이 애꾸눈이 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세디즘 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강한 어법을 통해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일시적인 것을 잃고 버릴 수 있는 비장한 각오와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태리의 밀라노 대성당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왼쪽 문은 장미로 조각된 문인데 '모든 고생도 잠깐이다', 오른쪽 문은 십자가로 조각된 문인데 '모든 영화도 잠깐이다', 가운데 큰 현관문 위에는 '다만 중요한 것은 영원이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고생도 잠깐이요, 영화도 잠깐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영원히 살 것인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온 천하를 다 얻는다해도 자기 생명을 얻기 위해 칼날도 뜨거운 불도 사자의 이빨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교의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져갔습니다. 저들은 부귀도 영광도 명예도 재산도 배설물처럼 내버리는 결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는데 아픔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많은 것을 내버릴 수 있는 결단과 영원한 것을 위해 일시적인 것을 포기하는 융단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생활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를 위대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김창대 임마누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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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발과 눈이 죄짓게 하거든…

세상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며 실천해야 할 주님의 가르침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세상의 흐름에 우리의 삶을 유혹받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란 듯이 아주 직설적인 표현을 담아 냉혹한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은총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과 바람으로 신앙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 하느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얻어지는 것인 양 교만과 게으름과 착각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가끔씩 보게 된다. 하느님 구원 계획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다는 것을 마치 구원의 은총이 특정한 부류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 아닐까?

그 모습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요한 제자와 나눈 대화를 통해 들려주고 계신다.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저희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다”며 예수님께 자랑스럽게 말씀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 편에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면 하느님께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라 하시며 제자들의 인색하고 편협된 사고를 교정해 주신다. 그렇다면 과연 구원을 받는 길은 어디까지일까? 그 해답으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라는 말씀을 들려주신다.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과 발을 잘라 버리고, 그 눈을 빼 던져 버려라”하시며, 차라리 불구자, 절름발이, 외눈박이가 되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죄와 악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이끌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죄의 유혹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끊어버려야 한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유혹과 욕망을 끊어 버리고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구원의 선물이 나에게 거져 주어지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신동원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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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한 태도를 보이나 마음속은 단단하고 굳센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오늘 복음을 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가 싶다. 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았다는 요한의 옹졸함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이를 말리지 말라는 외유(外柔)의 태도를 보이신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며,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에게 보상까지 약속하신다. 타인에 대한 예수님의 한량없이 넓은 도량이다.

2000년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교회가 진즉 배웠어야 할 도량이 아니던가? 사실인즉, 우리 교회는 적어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타종교와 비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하여 단호한 외강(外剛)의 입장을 취하여 왔다. 우리 교회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철의 장벽을 치고 구원을 위한 말씀과 성사를 우리들만의 것으로 여겼고, 이에 대한 타인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헌장, 교회일치에 관한 교령,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등의 문헌을 통하여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기본공식을 수정하였다. 공의회는 우리 가톨릭교회밖에도 얼마든지 성화(聖化)의 요소가 발견되며, 타종교 안에도 하느님 "말씀의 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 신앙인은 그것을 "기쁨과 경의를 가지고 발견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천명하였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사람과 실제로 죄를 짓게 하는 신체의 일부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강(內剛)의 태도를 보이신다. 그것도 소름끼칠 정도로 단호하고 엄격한 차원이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죽는 편이 훨씬 낫다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인가. 그 뿐이 아니다. 손이 죄를 짓게 하면 그 손을 잘라버리고, 발이 죄를 짓게 하면 그 발을 찍어버리며, 눈이 죄를 짓게 하면 그 눈을 빼어버리라는 말씀은 실로 엄청난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듣지 않고 피해버리고 싶은 부분의 말씀이기도하다. 우리가 결코 지킬 수 없는 과장된 요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의 믿음에 책임이 있으며, 신체의 일부라 할지라도 그것이 죄를 유발시킨다면 몸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뿌리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손과 발과 눈은 어떤 것인가? 사람의 행동을 성취하고, 그 행동을 얼마든지 악행(惡行)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체의 기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 신체의 기관들이 악행의 도구가 될 바엔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말 그대로 따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매일 죄를 지으며 사는 수억 명의 신자들이 사지(四肢)가 멀쩡한 채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손과 발과 눈은 인간의 내적 지향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니 신체의 기관, 즉 도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내적 지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결론으로 오늘 복음의 말씀을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비록 과장되고 무리한 요구이긴 하지만, 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깨닫고,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들이 선행(善行)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박상대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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