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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랑의 의무를 지닌 신앙인
조회수 | 1,954
작성일 | 06.09.29
"신부님, 아무리 생각해도 세례성사를 받지 못하겠습니다. 신부님께서 교리시간에 어떠한 큰 죄라도 뉘우치고 용서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제가 지은 죄는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전에는 별로 죄의식이 없었는데, 성당에 다니면서 죄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 되자 저는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보좌 신부 때의 일입니다. 세례성사를 앞두고 예비신자들과 마지막 면담을 할 때에 한 자매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잇지 못하는 그분에게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한참 후, 그저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저도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 자주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주님, 저는 그분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다행히 며칠 후, 그분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세례성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마음의 변화 중 하나는 죄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즉 과거에는 종종 지나쳤던 말과 행동들이 바로 ‘죄’였음을 깨달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죄를 의식하고 깨닫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며, 교회는 죄인들이 용서를 체험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더더욱 주님과 교회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가끔 신앙인이 너무 독선적이고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인 스스로도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고고하게 사는 천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 앞에 죄인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 점을 깊이 깨우쳐 끊임없이 회개하는 행위입니다. 신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을 자신만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고 교회의 세례가 구원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결코 특권이나 권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끊임없이 독선과 아집, 질투와 시기심을 버리고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는 복음적인 삶에 대한 요청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하늘의 비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립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잘것없는 이웃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의무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 서울대교구 허영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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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단호하게,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오늘 복음은 죄 짓게 하는 사람은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고,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 버리며, 눈이 죄 짓게 하거든 눈을 빼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실천한다면 한 주가 지나지 않아서 애꾸눈이 된 사람, 손이나 발이 하나 둘씩 없어지는 사람이 꽤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떠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까요?
 
신라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김유신 장군입니다. 그런데 김유신이 젊었을 때 아끼던 말의 목을 내리친 사건이 있습니다. 15살 때 화랑이 된 김유신은 천관이라는 기녀를 알게 되었는데 이 기녀는 미모뿐 아니라 학식까지 뛰어나 말 그대로 재색을 겸비한 미인이었습니다. 천관녀에 반한 김유신은 그 집을 자주 찾았고 천관녀와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모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네가 장차 삼국통일의 큰 꿈을 천하에 펼칠 대장부란 말이냐?"
 
심한 꾸지람을 들은 김유신은 천관녀의 집에 두 번 다시 출입하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합니다. 어느 날 김유신은 술에 취한 채 말을 타고 집으로 오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유신을 태운 말이 습관적으로 천관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김유신이 눈을 떠보니 천관녀가 생긋 웃으며 "그럼 그렇지, 오실 수밖에 없지요"하고 반갑게 맞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김유신은 칼을 빼어 말의 목을 치고 그 길로 돌아서서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 후 재상에 오른 김유신은 천관녀가 자신에게 한을 품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천관사를 지어 혼을 달랬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결단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죄의 유혹 앞에서 바로 이러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는 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 죄짓는 일이 우리 주위에 참으로 많습니다. 남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가 하면 소문을 내고 헐뜯는 버릇이 습관적으로 배어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심한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분란에 빠뜨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남에 대한 말을 할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노력을 하고 남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하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주변에서 그런 그를 위해 아픈 충고라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오늘 예수님의 단호한 가르침입니다.
 
또 세상을 살면서 인색한 것도 큰 죄입니다. 부모 형제간에 불화가 끊이지 않고 왕래가 단절되며, 상처를 주고받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많은 경우 인색함에서 비롯됩니다.
 
어느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날 때 백발 노인이 어머니에게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답니다. 그 어머니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 아이가 모든 이에게 사랑 받는 아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하고 청했습니다. 어머니 소원대로 아이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는데 받는 데만 익숙해져서 버릇없는 이기적인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나눠줄 줄은 모르고 계속 의지한 채 받으려고만 하니 사람들이 하나 둘 주변에서 떠나고 삶 자체가 아주 고독해졌습니다. 한참 지나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백발 노인이 나타나 소원을 묻자 아이 어머니는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절히 청했다고 합니다.
 
사랑은 부메랑 같은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면 없어지는 것 같지만 다시 더 큰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과 배려, 나눔은 세상의 죄를 없애는 지름길이며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지도 말고 또 남을 죄짓게 하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작은 언행이 남을 아프게 하거나 죄 짓게 한다면 고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색함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면 나누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풍요로워지는 지름길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게,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살아갈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기양 신부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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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

바늘과 실이 사이좋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에서는 콧노래도 흘러나옵니다. 가다 쉬다 하면서 바늘과 실은 하나의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가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이기에 더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가위가 바늘과 실의 우애가 샘이 났는지 한마디 합니다.

“저 옷에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봐. 그게 누구의 것인지 확인해 보면 누가 저 옷의 진짜 주인인지 알게 될 거야! ”

이 말에 바늘은 옷의 구석구석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흔적이라곤 실밖에 없었습니다. 실망한 바늘은 실을 떠납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공로는 언제나 실에게 돌아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지요. 이제 바늘은 혼자서 일을 합니다. 실을 위해 언제나 비워 두었던 바늘귀도 막아버렸고 저번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옷을 감격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때 바람이 불었고 완성된 줄 알았던 옷은 천 조각들이 되어 떨어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바늘은 그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든 바늘은 실과 함께 했던 때의 행복한 추억을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위의 한마디 말에 실을 떠났던 자신이 바보 같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실을 찾아갔습니다. 실은 반갑게 바늘을 맞아 주었고 다시는 우열을 따지는 어리석은 일로 헤어지지 않기로 다짐하며 새로운 옷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막아 놓았던 바늘귀를 다시 뚫고 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바늘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은총이며 섭리입니다. 바늘귀는 하느님을 위해 비워 놓은 우리 마음의 공간을 뜻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내어 드릴 때 하느님은 기꺼이 그 공간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거둔 열매인 아름다운 옷을 끝까지 지켜 주는 것은 바늘인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며 우리와 함께 해주신 실인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가 보면 자신의 딸과 아들을 죽음에서 생명에로 이끌기 위해 간절히 호소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유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지옥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로 꼭 들어가야 한다고 절규하시는 아버지이신 하느님. 제발 육신의 완전함을 지키기 위해 죄를 선택하기보다 참된 생명을 선택하라고, 잠시의 쾌락보다 영원한 것을 위해 아낌없이 버리고 포기하라고 눈물로 호소하시는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집중하면 하느님보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돈이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처음엔 우리에 대한 경고로 들리던 복음말씀이 자꾸 읽다 보니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로 다가옵니다. 바늘과 실이 하나여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가끔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 그런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장광재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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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끊어버림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익숙해졌을 때, 미사 집전, 환자 방문, 고해성사 등을 통해 신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신자들을 만나며 놀란 것 중 하나는 많은 분들이 술을 마셨다는 것, 담배를 피웠다는 것, 춤을 추고 음악을 들었다는 것에 대해 죄라 여기고 고민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를 남용함으로써 수많은 유혹과 죄로 빠지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맥주 한 캔 마신 것, 요란한 음악을 들은 것 그 자체를 죄라고 인식하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남용으로 인해 폭력을 일으키고 유혹에 빠져 죄를 지었다면, 그 부분을 꼭 고해 성사때 고백하시라고 말씀을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신자들의 삶을 바라보며 문득오늘 복음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손, 발, 눈 그 자체가 당연히 죄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죄를 짓게 된다면 그것을 단호히 잘라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분들이 그동안 가지고 살아왔던 죄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워낙 소박한 삶의 문화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마약을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에 그 자체를 죄라고 생각했고, 또한 술을 마시고 본인의 통제력을 잃은 채 가정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자, 술 자체를 죄라고 여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술 한 잔, 담배 한 대, 디스코 음악 그 자체가 결코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폭력과 방종, 무분별한 생활로 이어진다면, 그래서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면, 마을신자들처럼 애초에 그 자체를 끊어 버리는 것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키는데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손을 사용하는 것,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손이 계속해서 죄를 짓는 데만 사용된다면, 우리의 눈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무관심으로 외면한다면, 그것은 분명 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아갈 때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차라리 그것들을 잘라버리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일반 세상의 삶과는 다른 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위한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합니다. 혹시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달란트가 나의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잘못 사용되고 있다면, 그래서 내가 그러한 도구들에 얽매여 살아간다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그 도구 자체를 끊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끊어 버림’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의 도구를 용기 있게 끊어버릴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대교구 김현진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 2018년 9월 30일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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