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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하느님과 함께라면
조회수 | 1,941
작성일 | 05.12.17
우리는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기다림의 절정인 대림시기의 마지막 주일이고 오늘 복음 말씀은 천사의 방문과 성탄예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란 천사의 인삿말에 성모님은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서를 통틀어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함께 있던 시기는 믿음의 삶을 살던 때이고, 하느님을 주군으로 모시며 이방의 우상에서 벗어난 삶을 살던 때인 반면, 하느님을 잊고 살던 때는 죄와 죽음으로 가득찬 불신앙의 때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저 했던 다윗왕은 첫 독서에서 처럼 하느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 계약의 궤를 모신 성전을 짓고저 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탄생하시는 이야기에서 성모님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갖고저 했던 하느님의 성전이 될 것이기에 마리아는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사색하였던 것입니다. 첫 여인인 하와가 하느님과 함께 있지 않음으로 인류가 죽음을 겪은 것에 반대로 새로운 하와인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즉 하느님이 거처하실 성전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처녀가 잉태한다는 불가능을 가능한 현실의 일로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안되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모 마리아의 믿음은 바로 구세주의 강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내 안에서 이룬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결과를 감수하겠다는 결심 하에 이루어진 결단이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함으로 오는 불이익을 다 덮어 쓰더라도 하느님을 모시겠다는 믿음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온 첫 단추가 된 것입니다.

대림의 막바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믿고 하느님을 내안에 모시도록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내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이룰 수 있도록 ‘제게 그대로 이루어 지소서’하는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합시다.

박제원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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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그들이 믿고 있던 바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대화를 녹취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고, 초기 신앙 공동체의 믿음을 이야기 안에 담은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성서 구절들을 가져다 짜깁기해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사실 보도라고 생각하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것은 처녀가 아이를 낳은 기적이고, 하느님이 마리아를 택한 것은 그가 처녀였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 탄생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 많이 있는 영웅 탄생 신화들 중의 하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나라 개국 신화들에도 기적적 탄생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모두 그런 신화의 주인공들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유대 묵시문학(다니 8,18)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메시지 전달자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여라’라고 인사합니다. 이것은 구약성서의 예언자 스바니아(3,14)가 예루살렘을 향해 한 인사입니다.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오기에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구원이 마리아에게서 온다는 뜻으로 기뻐하라고 인사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말은 엘리 제관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 한 말(1사무 1,17-18)을 상기시킵니다. 한나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가 그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수태할 것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복음서가 가브리엘 천사로 하여금 이 말을 하게 한 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예수를 수태하였다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신다’고 답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영이 내려 오셔서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1,2)에서 가져 왔습니다. 마리아가 수태하는 것은 성령이 새로운 생명 하나를 창조하신 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생명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엘리사벳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던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로써 천사의 말은 끝납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에 대한 구약성서의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늙은 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가 일 년 후에는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자, 사라가 그것을 엿듣고,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창세 18,14). 그때 천사가 하는 말이 ‘하느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 탄생 예고에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이 세 여인이 등장하였습니다. 한나와 사라는 구약성서가 언급하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이고, 엘리사벳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수태치 못하는 여인입니다. 이 세 여인들에게 공통된 것은 수태치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생산력이 없는 여인들입니다. 그들 모두는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수태하여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신앙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을 출산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오늘 복음의 내용은 수태치 못한 여인들의 이야기 전통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는 인류의 생산력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주신 구원의 인물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라는 말은 생리학적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신앙의 문서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라는 말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거나, 하느님이 처녀를 더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인류의 생산력에서 오지 않고,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산력이 긍정하는 것은 많이 벌어서 많이 가진 삶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실패자는 설자리가 없는 삶입니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은 모두 불행한 이들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런 삶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비를 배워서 자유롭게 실천하며 살아서 당신의 자녀가 될 것을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과 같이 베풀고 축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는,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베풀고 축복하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풀고 축복하는 하느님의 일을 죽기까지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은 인류역사에 나타난 새로운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처녀였다는 말은 인류의 생산력이 예수라는 생명을 출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 새롭게 창조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인류역사는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을 소중히 보지 않습니다. 경주의 석굴암,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세계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들이 어느 집권자의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기억해도, 그런 대 역사에 동원되었던 수많은 민초들이 겪었던 고통은 잊어버립니다. 그것이 인류역사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신앙은 인류역사가 외면한 그런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가게 합니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병든 이, 이런 이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들인 하느님 자녀의 시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가 해마다 기념하는 것은 인류의 생산력만을 최대의 보람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새로운 삶, 곧 하느님 자녀의 삶을 마음속에 새기고 몸짓으로 실천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인류 역사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생각합니다. 신앙은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가 모두 행복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역사 안에 이 새로움이 나타나는 계기였습니다. 신앙인은 이 새로움을 자기 삶 안에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서공석 신부
  |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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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오심─ 우리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이번 주간이 지나면 하느님의 거룩한 탄생을 전례 안에서 재현하며 기념하게 됩니다. 이날을 위해 내적, 외적으로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하느님의 거룩한 탄생의 경위를 들려주며 우리 신앙인들이 성탄을 맞이할 준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조용한 시골에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처녀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장면이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 안에는 인류를 위한 대단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오시는 모습인데, 그런데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거라는 소식을 전하는 분위기는 너무나 소박합니다. 한 나라의 후계자가 수태되어도 혹은 한 나라에 새로운 권력자가 취임을 해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온 우주,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오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조용하고, 비밀리에 오시려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화려한 것도, 장엄한 모습도, 놀랄만한 예식도 전혀 없는, 꿈을 꾼 것으로 넘어가도 될 정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분, 그분을 열 달 동안 태중에 품고 있을 여인도 자신을 통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생각이 전혀 없는 모습입니다. 그저 하느님 뜻이니 거룩한 뜻에 따를 뿐이라는 너무도 작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느님도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시고, 하느님의 어머님도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지만, 힘없고 작은 모습의 그분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은, 희망과 생명과 축복입니다. 인간이 감히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모든 선의 원천이요, 생명의 주인이신 바로 그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또 그분께서 우리 곁으로 직접 오신 것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큰 영광이며 축복입니다.

이제 한 주만 지나면 우리 곁으로 오시는 그 하느님을 만날 겁니다. 비록 그 모습은 옆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모습이고, 하느님 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분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고 살아가도록 하며, 또 살리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는 겁니다. 우리는 이분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쁘게 성탄을 맞이하고 신앙 안에서 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고백성사와 반성, 나의 새로운 결심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우리는 했습니다. 성실히 준비한 만큼, 정성을 다하고 진심으로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만큼,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도정호 바오로 신부
  |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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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고백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짓는 일마저도
죽음을 향하는 영혼에게 마저도
호소하고 일깨울 뿐입니다.
스스로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굳은 생각을,
부수지 않는 고집을 말리지도 꺽지도 못하십니다.
‘내 마음’이
‘내 뜻대로’ 행하여 죄를 짓는
인간의 짓거리에 속수무책이신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죄의 값을 치루기로 작정하고 세상에 오십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성탄 때마다 듣는
흔하디 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 복음 말씀이야말로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신비는
이사야 예언자의 ‘처녀 수태 예언’이 있은 지
700여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이사 7,16 참조).
길어야 백년을 살 수 있는 인간에게
700년은 너무나 까마득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그 긴 세월동안 내내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묵살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하느님께서 700년 전에 예언된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한 인간에게 의중을 물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날처럼
오늘 우리에게
다가와 묻고 계신 것이라 싶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들려드린 답변이
하느님의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명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 때
무엇이라 답하십니까?
복음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맡기신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의 일을 맡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찾으신 세상의 단 한명,
그분께서 원하시는 깨끗하고 순수한 처녀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찾아내셔서
소명을 맡기는 사람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래아 지방,
그 안에서도 깡촌 나자렛에 살았던 순박한 처녀에 불과했습니다.
교회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세상의 힘이나 돈, 혹은 학력이나 능력이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처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이미
세상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꼼짝없이 매일만큼 중요한 직장이 있고
살림살이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할 일이 태산같은 상황이라는 뜻이 아닐까 짚어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할 일이 많은 나에게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고
능력도 모자라는 나에게 찾아와 물으십니다.
 
처녀가 잉태를 할 만큼 곤란한 상황,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그 처지야말로  
교회의 일을 맡기시는
하느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싶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
있을 수가 없는 일
정말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되는
그 일을 맡기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마라”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라는 말을 들려주십니다.
까딱없다하지 않으시고
굳이 “두려워 마라”고 말씀하신 걸 보니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겁이 날만큼
어렵고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택하신 것은
결코 
우리가 여유롭고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닌 것이지요.
여유나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만 교회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마리아의 순명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생각도 할 수 없이 황당한 일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일에
“예”라고 답을 드린 까닭에 돋보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이 막바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듣고 싶은 그 말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분께서 듣고 싶은 말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분께서는 
“예”라는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결코 마리아처럼 순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직 “주님의 종”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무조건 예합니다.
종은 주인의 지시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예하고
알 수 없어도 따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당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번 성탄에도
처녀같이 순결한 마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 분으로 성결해진 거룩한 마음을 만나서
함께 살으실 계획이십니다.
하느님의 일에 순명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모시는 지성소가 됩니다.
하느님의 일에 곧이 곧대로 따를 때
또 한 사람의 마리아가 되어
세상에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깊은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으신 까닭에
이제 우리에게 오십니다.
태어날 아기
거룩한 분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그 긴 시간동안
처녀의 순수로 단장하고
종의 몸으로 단련하며 기다렸습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장재봉 신부
  |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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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겸손한 여인 어머니 마리아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와는“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창세 3,5) 것이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그래서 땅이 저주를 받고 인간은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하느님은 뱀으로 상징되는 마귀와‘그 여자’인 하와 그리고‘그 여자’의 후손, 즉 하와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고, 하와의 후손은 마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마귀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 말씀은 대표적인‘그 여자’의 후손인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설명을 듣고 고백한다.“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자신을 하느님의 겸손한 종으로 표현하며 하느님의 말씀의 도구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이 겸손한 순종으로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구약의 말씀도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동정녀인 하와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역했지만 두 번째 동정녀인 마리아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성무일도 대림2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이레네오 성인) 그래서 마리아는 마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는 여인이 되었으며, 마리아 또한 영혼이 칼에 꿰 찔리는 아픔을 당하였다.(루카 2,35) 그러나 마리아의 순종으로, 이 세상은 하느님 나라를 얻었고, 인간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존재가 되었다.

대림절이 거의 지나간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1베드 5,5)고 하셨다. 마리아는 겸손하였기에 하느님의 일을 깨닫고, 체험하고, 목격하는 은총이 가득한 여인이 되었다. 우리도 이 대림절에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은총이 가득한 주님의 아들딸이 되자.

▦ 부산교구 윤준원 신부 : 2017년 12월 24일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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