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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최고의 기적
조회수 | 2,378
작성일 | 06.10.05
찬미 예수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너무나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책에서 말해주듯, 살아가는 방식이나 느끼는 감정,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등 모든 것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분명 틀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대로 남편이 아내를 대하고 또 아내가 남편을 대한다면 분명 그 사이에서는 다툼과 분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혼인할 때 우리는 검은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18~30개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랑으로 용서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발냄새도 사랑스러웠지만 지금은 씻지 않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에게 짝지어 주신 그 소중한 사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그 곳에서 믿음이 싹트고 그 믿음이 바로 부부의 사랑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인구는 약 65억입니다. 그 65억 중에 나와 결합된 단 한 사람. 이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시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혼인 생활을 하다보면 분명 여러 가지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위기 앞에서 서로의 잘못을 탓하기만 한다면 분명 둘 사이의 신뢰는 깨집니다. 그러나 그 위기에 대처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의지할 수 있다면, 그 위기는 오히려 부부 사랑의 더 큰 기회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신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는 말씀 속에 깃들여진 깊은 의미를 이 시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춘천교구 박재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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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도 나와 같이 소중히 여겨라

사랑안에 있는 부부

혼인미사 주례 때 저는 강론 끝에 꼭 이 같은 말을 합니다.

“태어날 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지만 이젠 같은 장소에 있을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하늘을 보고 태어났지만 앞으론 같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서로를 모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부모를 섬겼지만 이젠 한 부모를 섬기게 될 것이며, 이제껏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는 두 발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 첫 발걸음에 주님의 무한한 행복이 깃들길 기도드립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할 때 흔히 짐승만도 못하다는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는 암컷과 수컷의 부부애가 사람의 경우를 뛰어넘는 예가 자주 목격된다고 합니다. 특별히 물총새가 그러합니다. 물총새는 대양을 횡단할 때에 반드시 암컷과 수컷이 한 쌍이 되어 비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비행을 하다가 암컷이 지치면 수컷이 암컷을 업고 비행하며 체력을 회복한 암컷이 다시 수컷을 업고 비행하기를 반복하며 목적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에로의 비행은 부부중 어느 한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생의 짐을 서로가 함께 나누며 지고갈 때 사랑의 비행이 시작될 수 있고,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을 볼 때 놀라게 되는 것은 얼굴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한지붕 아래 한솥밥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성격을 맞추려다 보니 얼굴까지도 닮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둘 사이에는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여 서로가 만나게 되었고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결국 부부의 결합은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를 분명히 가르치고 계신것입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7-9)

제 탓입니다

에덴 동산에 홀로 있던 아담이 여자인 하와의 탄생을 보며 이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이는 기쁨의 환호성이었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

그랬던 아담이 하느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고 하느님의 추궁을 받자 자신의 탓을 고백하지 않고 하와에게 탓을 돌립니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고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정말 치사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원죄는 분명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였던 교만함의 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원죄는 죄의 탓을 남에게 전가시킨 것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안에서 고백의 기도 중에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를 반복하며 모든 잘못의 탓이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남의 탓이라 핏대를 세워 불행히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남편 탓이요, 아내 탓이고, 자식들 탓이요, 시댁 처갓집 탓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삶이 지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쁨이 없는 삶을 사니 그토록 이혼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 잘못을 제 탓으로 돌리며 사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모든 잘못의 탓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고치려 노력합니다. 그럴 때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보다는 장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서로를 진정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히브 2,11)

우리는 모두 거룩하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진정 죄 많은 우리 인간의 죄를 예수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때문에 우리 또한 타인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서로 거룩한 존재로 여겨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남을 탓하지 않고 귀하게 여겨 주는 데에서 출발 합니다.

▶배광하 신부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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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그 어떤 폭염도 우리의 푸르름을 꺾지 못하리라!

군종신부 생활 21년, 열사의 땅에 파병도 다녀왔지만 어느 곳이 가장 덥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대구의 대프리카(?) 날씨를 이야기하고 싶다. 사막의 날씨는 밤에 수면을 허락하지만 여기는 그 달콤한 수면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정말로 “참을 인(忍)”자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고 있다. 신부인 나도 땀띠가 날 정도이니 군복만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참 많이 덥다. 병사들에게 오늘은 어떤 말로 인사를 하고 위로를 할까 생각한다. “덥지? 수고해라”, “수고, 모기 조심”, “고마워, 오늘도 수고”, “야! 너 미남이다”등등. 땀에 젖어 있는 병사들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대견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쳐있고 힘들어하는 병사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짧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성호경을 가르쳐 준다. 일과를 시작할 때나 마칠 때, 근무나 임무에 투입되거나 철수할 때, 무엇인가 하거나 마칠 때,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불안하거나 심란할 때, 그 어떤 상황에서나 정성 들여 성호경을 그어보라고 가르친다. 자그마한 지향과 함께 그냥 성호경만 그으면 된다고 가르친다. 힘들어서 고백성사를 보러 온 병사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신기하게도 사목적인 경험으로 얻은 결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좋을 때든 힘들 때든 군종신부의 말대로 성호경을 그으면서 임무를 수행해보니 분명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일과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야 할 어려운 교리공부나 실천적인 행동강령을 이야기하느니 이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군인은 ‘반복·숙달’ 이라는 방법으로 행동화 훈련을 한다. 종교는 반복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수양하게 한다. 어쩌면 군인의 길은 수행의 길인 듯하다. 아무 때나 쉬거나 자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직업은 분명 아니다. 결국 자제하고 절제하는 삶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다. 그런 군인들에게 자신을 통제하고 인화 단결하도록 이끄는 것도 당연히 군종신부의 임무 중에 하나다. 이들에게 거창한 말로 다가가느니 자그마한 성호경 긋기 운동으로도 자신을 절제하고 자제하는 능력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이론과 기술도 반복하지 않으면 쓰임이 없어진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성호경이라도 하루에 수십 번 정성 들여 긋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수행하는 좋은 방법이다. 오늘도 자신의 푸르름을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더위에 담금질하는 병사들에게 나는 반복 숙달을 가르친다. “힘들지? 나랑 성호경 한 번 그어볼래?”라고.

▦ 춘천교구 현광섭 프란치스코 신부 : 2018년 10월 7일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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