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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15.6%
[마산] 기도의 보루(堡壘)로 진을 치자
조회수 | 2,271
작성일 | 06.10.05
묵상길잡이 :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47.38%에 이르렀다. 윤락에 종사하는 미성년자들의 70%이상은 이혼한 가정에서 가출한 아들이라 한다. 이혼은 부부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작은 교회이다. 기도하는 가정이 이혼을 하는 예는 0.1%에 불과하다. 가정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보루는 가정기도임을 깨닫자.

1. 이혼 선진국이 된 한국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모세법에 따라 이혼이 허락되었다. 어떤 율법학자들은 여자가 밥을 세 번 태워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6-9) 하시며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확고히 말씀하신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매일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갈라져 이혼율이 47.38%가 되었다.(이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등이다. 영국을 추월한 통계이다) 1980년대에는 이혼율이 평균 4.3%( 23쌍 중에 한 쌍)였다. 그러던 것이 1992년에는 12.7%( 7.9쌍 가운데 한 쌍), 97년에는 24.9%로 급증하였다. IMF를 거치면서 98-99년에 이르러서는 33.7%로 급상승하여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런데 2002년부터는 매년 결혼 건수와 이혼 건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거의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는 지경이다.

이혼은 가장 큰 사회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일생을 살면서 사람은 갖가지 충격을 받으며 산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이 배우자의 사망이나 이혼이라고 한다. 청소년 범죄문제도 이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 미아리 택사스 윤락가의 미성년자 매매춘을 근절시킨 유명한 여자 경찰서장이 TV에서 말하기를 윤락가에서 미성년 매매춘에 종사하는 이들의 70% 이상이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가출한 여자아이들이고,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허구한 날 부부 싸움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아이들이 12%, 나머지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들의 각종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 아이들과 친구를 잘못 사귀어 가출한 아이들이라 했다. 이렇게 볼 때 문제 청소년은 문제 어른들이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혼은 단순히 부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들의 성장과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참 사랑은 무엇인가?

어떤 본당에 있을 때 한 신자가 면담을 하러 왔다. 그는 결혼 7년차 되는 사람이었다. 󰡒신부님 저는 결혼하던 날, 결혼식 후에 집안사람들끼리 인사하는 소위 ‘폐백’ 드리는 시간이 너무 지겨웠습니다. 모든 절차를 빨리 끝내고 한시바삐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거든 예.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아내를 보면 여동생인가 어머니인가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왜 이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다방 아가씨들에게만 눈길이 가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한다. 말인즉, “아내를 봐도 아무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결혼을 할 무렵엔 함께 있으면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가고, 쳐다만 보아도 행복하고, 손만 잡아도 황홀하고, 헤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오기가 너무나 아쉽고, 어쩌다 한동안 못 보면 보고 싶어 아무 일도 안 되는 그런 감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는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하기가 어려운 것이 탈이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에릭. 프롬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정열󰡓이라고 했다. 이런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은 얼마 안 가서 식어버리게 마련이다.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이런 감정은 둘이서 함께 살 때 33개월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두 인격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느끼는 서로 끌리는 감정은 내분비 호르몬의 영향인데 30여 개월이 되면 서서히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살다보면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내 남편(아내)이 이런 저런 점만 고쳐주면 참 좋겠는데!󰡓싶은 결점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결코 그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고쳐지지 않는 크고 작은 결점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점과 함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힘으로 그 결점을 보완해 가는 것, 이것이 참 사랑이다.󰡒의지로 그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결심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4. 기도가 가정을 지키는 보루이다

미국의 평균 이혼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주(州)에 따라서는 50%가 훨씬 넘는 곳도 많다. 그런데 조사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 즉 주일 미사라도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경우 51쌍 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하고(2%정도),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가정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1011쌍 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하는(0,1%정도)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 같은 어려움을 당하고 같은 유혹을 받는데도 신앙의 유무에 따라, 신앙생활의 깊이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세대는 가정을 지키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자녀들의 신앙지도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다. 기도하지 않을 때 아무도 인간의 약점을 벗어날 수 없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기도의 보루로 진을 치자.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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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랑, 하느님 사랑

오늘 복음과 독서는 모두 혼인에 대해, 부부관계에 대해 말한다. 혼인생활에 대한 경험담이야 없지만, 그동안 많은 부부들을 보면서 느낀 공통점 몇 가지는 말할 수 있겠다.

첫째, 결혼하기 이전은 물론이고 결혼한 후에도 모두 장님이 된다. 결혼하기 이전에는 상대방의 단점을 못 보다가, 결혼 후 몇 년 만 지나면 배우자의 장점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남의 배우자와 자기 배우자를 비교한다. 설령, 남의 배우자가 잘나 보인다 한들, 그 잘나 보이는 사람하고 같이 사는 배우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둘째, 결혼만 하면,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린다. 크기가 비슷한 삼각형 물건을 사각형 그릇에 담을 수 없고, 원형 그릇에 사각형 물건을 담을 수 없다는 진리. 이런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사각형으로 생긴 배우자를 삼각형으로 생긴 자기 안에 구겨 넣으려 한다. 그 결과는 두 가지 뿐이다. 그릇이 깨어지든가, 상대방이 상하든가하는 둘 중의 한 가지 결과밖에 없다.
셋째, 결혼만 하면 모두 게을러지는지, 손 안대고 코풀려고 한다. 자기는 꼼짝도 않으면서 상대방이 바뀌지 않는다고 투정이다. 집안 분위기나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한 이유는, 상대가 너무 고집불통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저 인간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되는데, 도대체 못된 성질을 바꿀 생각을 않는다’는 생각을 쉬 접지 못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부간에 갈등을 겪게 되는 원인은 대체로 앞의 세 가지가 제일 비중이 커 보인다.

성직자 · 수도자처럼 혼자 사는 것도 은총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금 당장 마음 기댈 곳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축복이다. 부부사랑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하느님과 우리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독서들도 단지 부부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부부가 필요 없는 고집과 교만과 자만심 혹은 당치 않는 자존심 때문에 그 큰 복을 발로 차는 일 없이 잘 살아주는 것이 신앙을 잘 사는 길이기도 하다.

평신도가 성직자 · 수도자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듯이, 성직자, 수도자는 부부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과 교회와의 사랑을 목격하고 힘과 용기를 얻는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태초부터 하느님이 축복하신 결혼생활을 하느님 뜻에 잘 맞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시기를..

▶ 송재훈(라파엘) 신부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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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오늘 복음에는 두 가지 가르침이 들어있다. 부부관계에 대한 말씀과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라는 교훈이다. 상관없는 듯한 말씀이지만 두 가르침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연관된 말씀이라는 점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남성 위주였다. 자녀는 물론 아내도 남편의 소유물이었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심한 경우에는 물건처럼 매매가 이루어졌고 법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시대상을 질책하시며 혼인을 하느님의 법으로 다시 선포하신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면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대등한 결합을 원하셨고 그것이 바로 창조질서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의 대등한 결합을 원하셨는가. 교리적 해설을 하자면 우리에게 창조능력을 주시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해 부부관계를 만드셨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 창조하라고 하셨을까.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행복을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고 행복을 만들며 살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이는 어른이 있어야 편안해진다. 어른도 어린이가 있어야 평화스럽다. 삶의 행복은 이렇듯 조화에 있다. 그 중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조화가 으뜸이다. 혼인에 관한 주님의 말씀은 이런 각도에서 다시 묵상해야 할 것이다.

복음의 끝 부분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며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하라고 하신다. 어떤 것이 어린이의 마음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그런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하며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이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에겐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려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다. 그 때의 마음은 우리 영혼 안에 있지 어디로 달아난 것이 아니다. 그때의 그 마음을 되찾아 주님께도 보여드려야 한다. 그래야 행복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은총으로 받을 수 있다.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된다.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된다. 한 몸이라는 이 말씀이 복음의 핵심 내용이다. 말씀은 간단하지만 의미는 쉽지 않다. 두 몸이 한 몸으로 바뀐다는 것은 두 사람의 운명이 하나의 운명으로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운명과 그대의 운명이 같아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도 무서운 일인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니 하나된 운명을 바꾸려는 생각보다 좋게 하려는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토록 소중한 인연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쉽게 만나고 쉽게 떠나려 한다. 인생은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 모습이다. 두 사람의 운명이 하나의 운명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어렵지 않으랴. 예수님도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룩하셨다. 나의 한 쪽이 고통을 주더라도 내가 올바로 걸어간다면 운명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반복되는 매일의 삶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이 한 주간을 보내자

▶ 신은근 신부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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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과 내 아내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남녀의 평등 창조와 부부의 혼인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일수록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듣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남자 우월주의 사상에 젖어 여자를 낮게 여기고 때로는 소유물로 여겼던 시절을 오래도록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변했어도 사회나 가정에서 여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아직도 존재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없잖아 있습니다. 매 맞는 남편, 쫓겨나는 남편, 가족들에게 왕따(?) 당하는 남편도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는 부부 서로 간에 존중하는 마음과 평등사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는 상하관계도 아니고 소유관계도 아닌 동등한 지위의 협력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그렇다면 남자가 먼저 만들어 졌고,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만들어졌으니, 여자가 더 열등한 존재가 아니냐 하지만, 어찌보면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자가 더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독서에서 보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인간 모두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희생을 통해 영광스럽게 할 정도의 귀한 존재입니다.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형제라고 높이셨습니까? 바로 형제라고 불려지는 유일한 피조물은 인간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남편, 내 아내를 귀하게 여기시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대하게 되면 내 아내와 내 남편을 다른 사람들이 더욱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합니다.

아프리카 사람과 내가 원수 될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에스키모인과 내가 원수 될 일이 있습니까? 원수가 되는 제1조건은 ‘자주 만난다’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지 않는 데 원수 될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루카 6,27; 3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자주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은 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족, 내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여라”의 또 다른 표현은 ‘네 남편을 사랑하여라’, ‘네 아내를 사랑하여라’, ‘네 가족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남편, 내 아내는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부부로 맺어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1독서에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부부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고 부족해 보일 때가 있는 것은 서로 보완할 기회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기회를 내가 힘들어서, 귀찮아서, 노력하기 싫어서 포기한다면 난 하느님 자녀로 단련 받을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교회는 혼인 불가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교회는 사정에 따라 교회 판단에 의해 혼인 무효소송을 할 수가 있고, 바오로 특전, 신앙특전 등을 베풀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본당 신부님과 상담을 통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남편 내 아내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임해원 안토니오 신부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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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당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던진 물음의 의도입니다. 모세의 권위를 등에 업은 그들의 입장에서 이혼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 당연함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시험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당연함이 오히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고, 그 잘못된 당연함의 결과가 그들의 완고함에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는 것,그리고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창세 2,24) 그 자체로 혼인은 이미 당연한 것인데,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그 당연함을 깬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어린이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분에게로 향하는 누군가를 막아 세울 당연함은 없고, 다가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연한 것이기에 어린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 곁을 지키는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든 당연함’대로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입니다.

오늘날 군에 있는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높아진 월급, 줄어든 복무 기간, 안락해진 근무조건 등 달라진 환경만큼이나 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역시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 역시도 제 군 복무 시절과 비교하여 달라진 요즘 세대의 반응들을 보며 당혹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는 ‘기도와 관심’이 절실했던 이전의 당연함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기도와 관심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군’이라는 자리는 힘든 삶의 자리일 수밖에 없고, 구조상 항상 사고의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느끼는 평화는 당연히 국가의 부름을 받아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덕德이 분명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환경과 여러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군인들에게 당연히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와 관심’입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당연함이 요구되는 오늘날입니다. 군인 주일을 맞아 당연하게 그들이 받아야 할 사랑이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여전한 많은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마산교구 김용 토마스 아퀴나스 : 2018년 10월 7일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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