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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혼인은 새로운 탄생
조회수 | 2,185
작성일 | 06.10.05
혼인은 각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탄생인 동시에 또한 두 인격이 하나의 인격으로 조화되는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아무렇게나 맞이해서는 안됩니다.

혼인 그 자체를 존경할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혼인은 동물의 짝짓기가 아닙니다. 아니, 동물의 짝짓기도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상대를 충분히 조율한 다음에 짝짓기를 하며 일단 부부가 되면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아주 성실히 이행합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먼저 하나가 되기 전에 서로 인격을 다듬고 새로운 출발에로의 준비를 성실히 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아담은 하와를 보고 그렇게 외쳤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둘이는 본래 하나였습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께선 그들을 점지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부부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면서 동시에 인간 자신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혼인은 신성한 것이면서 장엄한 것입니다. 아무도 이 혼인의 약속을 파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죽음만이 그들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혼인은 취소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어떤 생물이든지 한번 태어나면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영원히 못 돌아갑니다. 병아리는 다시 달걀 속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나비가 다시 애벌레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집니다. 이것은 한 번의 약속이면서 또한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평생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은 거룩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가 갈라선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가르는 것이요 부모를 가르는 것이며 또한 자식들까지도 가르는 엄청난 죄악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경솔하게 서둘러서 하면 실패합니다.

서로 선을 본 지 한 달도 안 돼서 혼인을 하는 예를 가끔 보게 됩니다. 신자들은 이런 식으로 혼인을 해서는 안됩니다. 부부가 한 두 달 살 것이 아니요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인데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서로 교제를 하며 검토를 해 보고 판단을 한 다음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리고 하느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혼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언젠가 시장에 나갔더니 몇 주일째 성당에 나오지 않는 자매를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물었더니 딸 시집보내는 준비 때문에 바빠서 못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딸도 신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은 뭐고 하느님은 또 뭡니까. 누가 도대체 그 딸의 행복을 줍니까. 그까짓 이불이나 냉장고가 행복을 줍니까? 그 혼인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복을 빌어 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중대한 일에 하느님을 외면합니다. 그러면 그 혼인이 뭐가 되겠습니까?

결혼 예식을 주례하다 보면 가끔 결혼 예물의 반지로서 단돈 천 원짜리 묵주반지를 내놓는 부부도 있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다이아 반지나 황금 반지는 나중에 팔아먹을 때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부모들이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누가 뭐래도 그 반지는 무덤에까지 끼고 가야 하는데 그 중요한 예물을 팔아먹을 것부터 가르칩니다. 그러니 그 가정이 뭐가 되겠습니까?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혼수를 장만하고 그리고 아무리 좋은 신랑과 신부를 얻는다 해도 그 가정 안에, 그 부부 안에 하느님이 머물지 않으시면 그들은 불행합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산해진미를 먹는 혼인이라 해도 그들의 혼인에 하느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혼인 그 자체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가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된 마리아와 요셉의 가정, 우리 모두도 그런 가정을 모델로 삼아 닮아야 합니다. 복은 예수님 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은 바로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가정은 하나지만 거기에는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엮어진 결합체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보배도 없으며 세상에 이보다 더 위대한 만남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 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인이 됩니다.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혼인은 새로운 탄생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인간이 소망하는 꿈의 보금자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혼인을 존경하고 가정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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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믿음을 가지고 희망의 씨앗을 뿌립시다.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연중 제 27주일이며 군 사목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을 나누는 군인주일입니다. 군종신부로 살아가면서 느끼고 깨닫게 된 군 사목의 중요성을 이렇게 주보강론을 통해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반 교우 사회에서는 군 사목에 대해서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훈련소 용사들에게 주는 세례식이 그러합니다.

저도 본당 신부로 살아갈 때만 해도 ‘군대에서 세례를 받고 와 아무것도 모른 채 성당에 나오는 청년들을 만나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와서 훈련병들과 함께하면서 그 짧은 만남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의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 속에 씨들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싹을 틔워 열매를 맺기에는 너무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씨 뿌리는 사람이 소출에만 욕심을 내어 기름진 땅에만 씨를 뿌렸다면, 길가와 돌 밭,가시덤불은 싹을 틔울 조그마한 희망도 없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굳은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만 복음이 전해진다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함께 할 희망마저 빼앗기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씨 뿌리는 사람, 하느님께서는 모든 곳에 모든 사람에게 씨앗을 당신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당선에게로 부르셨습니다.

비록 10명의 훈련병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할지라도 정작 부대 배치를 받고 성당을 나오는 용사들은 2 -3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2-3명의 용사들이 군복무 중 열심한 신앙생활로 누구보다도 멋진 신앙인이 되고, 제대를 하여 사회에서도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 뿌리신 그 신앙의 씨앗의 열매는 수십 수백 배로 불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신앙의 싹이 트이지 못해 당장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용사들도 언젠가는 그 싹이 트고 열매를 맺게 된다면 또 한 명의 신앙인 그리고 성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군종사제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보내어진 ‘한 명의 씨 뿌리는 사람’ 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군 종사제들을 부르셨고, 용사들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아직은 보잘 것 없고 작은 믿음의 씨앗이지만 끊임없는 사랑의 비로 함께 한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비를 저희 사제만이 아니라 군 사목을 후원회 주시는 신자 여러분 모두가 함께 해 주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신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전해주시는 젊은이 들을 향한 사랑을 결코 소홀함 없이 따뜻한 손길로 전하는 군종사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광주대교구 김대건 대건 안드레아 신부 : 2018년 10월 7일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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