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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
조회수 | 2,213
작성일 | 06.10.11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다. 북쪽에 있는 것이 갈릴래아 호수이고, 남쪽에 있는 것이 사해이다. 이 두 호수의 공통점은 요르단 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갈릴래아 호수는 여러 갈래의 작은 강들로부터 물을 받아들여서 요르단 강으로 흘려보낸다. 물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계속 흐르니까 많은 물고기와 식물들이 잘 자란다.

반면에 남쪽의 사해는 해수면이 평균 해수면보다 낮아서 요르단 강뿐 아니라 다른 강들로부터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 고여있다. 그래서 사해에는 물고기나 식물 등 생물들이 서식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죽은 바다’인 것이다. 이곳은 물의 염분이 유난히 높아서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가라앉지 않는다. 이러한 사해를 ‘욕심쟁이의 본보기’라고 부른다. 사해는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살 수 없듯이, 욕심쟁이처럼 남에게 받는 것만 좋아하고 주는 것에 인색하다면 그 안에 아무것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주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의 육체도 먹기만 하고 밖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그 부작용으로 많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 복음은 부와 명예가 우선시되는 시대 속에서 미지근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한 부자가 어린이들을 축복하시고 길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부리나케 쫓아가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음을 던진다.

예수님의 대답은 십계명 중에서 단지 실질적 행동이 따라야 하는 이웃에 대한 계명만을 말씀하신다. 그러자 이 부자는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을 잘 지켜왔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열정을 대견해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부자에게 구원의 완전한 길을 가르쳐 주신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말씀에 부자는 슬퍼하며 떠나갔다.

삶의 안식을 얻고자 했던 부자의 슬픔은 예수님의 무리함이 느껴지는 요구자체가 아니라, 그 큰 희생을 감수할 수 없는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자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신앙은 삶의 결단의 연속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얻고자 열망했던 그 길이 눈앞에 놓여 있지만 잡지 못하고 자신의 소유욕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부자의 모습이, 곧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돈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과감한 결단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여행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 수원교구 한기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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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부를 추구하자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는 참된 부를 가지려면 주님께서 우리를 신앙의 선물을 통하여 부르시는 그 영광 속에서 추구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것을 희생하여야할 필요가 있다. 부자 청년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때,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떠나갔다”(22절). 즉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어떤 인간적 보장이나 확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의 지혜’가 이루어진다(시편 90,12-17 참조).

제1독서: 지혜 7,7-11: 지혜에 비교하면 재산은 아무 것도 아니다

1독서에서 솔로몬은 이 지혜를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도 낫게 여기고 주님께 그것을 청한다. 그 내용은 솔로몬이 왕국을 시작하면서 바치는 기도에 관한 것으로 생각된다(참조: 1열왕 3,6-13). 그러나 이 기도는 지혜서의 저자 자신이 기원전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권력과 재산과 아름다움과 육체적 건강, 생활의 즐거움 등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던 그리스 사람들의 거짓된 지혜에 현혹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나는 지혜를 홀과 왕좌보다 더 낫게 여겼고 지혜와 비교하면 재산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나는 건강이나 아름다움보다 지혜를 더 사랑하였으며 햇빛보다 지혜를 더 좋아하였으니 지혜의 빛은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는 나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주었으며 지혜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물이 있었다”(8.10-11절).

그러므로 참된 부는 이 세상의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위험스러운 요소들을 알게 해주는 지혜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전도가 오늘 복음에서 추구하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신앙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이 지혜는 바로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고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7절).

복음: 마르 10,17-30: 가진 것을 다 팔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오늘 복음에서도 참된 부는 이 세상의 재물을 포기할 줄 알고 또 끊어버릴 마음을 갖는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복음을 보면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그 주제는 모두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끊어버림”이다. 그러기에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이다.

첫째 부분에서는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청년은 처음과 마지막 태도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잘 지켜왔다고(20절) 하는데 예수께서도 감탄하시고 대견해 하셨다(21절)고 한다. 그런데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21절) 하였을 때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22절). 아마 제자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청년과 같이 이미 열심히 살아왔으면서 그 여정에 매력을 느끼고 원의를 가진 사람도 그 여정이 제시하는 요구를 철저히 따를 능력이 없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26절).

이 극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재산 때문에 비롯되는 치명적 위험이다. 그 청년은 용기 있게 결심하고 시작하였지만 예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왜냐하면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22절). 물질에 대한 애착이 참된 선(善)이신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처음에 당신을 선하다고 하는 것(18절)을 거절하시면서 ‘하느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상기시키신다. 그래서 유일한 선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선(善)들의 유혹이나 매력을 극복하여야 한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계명들은 제1계명에 의해 생기를 얻고 조명되지 않으면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바로 여기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 그의 모든 재산을 실질적으로 버리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음으로써 나오는 결과이지 다른 요구가 아니다. 그 청년에게는 하느님보다는 자기의 재산에 대한 집착이 컸으므로 하느님이신 주님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장면은 예수께서 비탄스럽게 재물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모든 시대의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에 하시는 권고의 말씀이다(23-27절 참조). 여기서 예수께서는 두 번씩이나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23.24절)고 하신다. 두 번 째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상징적인 표현을 덧붙이신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25절). 이 표현은 너무 강해서 좀 부드럽게 해석을 하려고 하지만, “눈 속에 들보”(마태 7,3)라는 표현을 생각한다면, 청년처럼 재산에 마음을 두고 자신을 구원하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이다.

제자들은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26절)하고 수군거린다. 구약에서는 재물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겼는데, 장애물로 말씀하셨고, 또 그 청년이 구원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낙담한 사람처럼 떠나갔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구원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27절). 이 표현은 구약에서 사라가 아들을 얻는 장면에서(창세 18,14), 마리아가 잉태하게 되는 것을 알리는 천사를 통해서 반복되고 있다(루가 1,37). 중요한 것은 구원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이 그 은총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부자청년과 정 반대되는 태도를 취한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28절). 여기서 베드로는 마태오 복음에서와 같이(19,27) 어떤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보상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의 결실이며 그 은총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29-30절). 여기서도 하느님 나라를 위해 끊어버리는 행위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끊어버리는 행위가 그 행위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29절) 끊어버리는 행위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가치를 소유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해도 자신을 보다 충만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즉 그 보상은 사도행전과 같은(참조: 사도 2,44-45; 4,32) 보편적 사랑과 형제애를 체험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세의 영원한 생명의 보증은(30절)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의 풍요함으로 자신이 부유해짐을 느낄 때 그것을 완성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박해’도 받게 된다고 하신다. 그 박해까지도 믿는 이에게는 영광과 행복을 더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 박해까지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이며 우리 믿음에 대한 보상의 한 형태라고 한다.

제2독서: 히브 4,12-13: 하느님의 말씀은 속셈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실현되리라고 확신하는 모습을 2독서에서 보여주고 있다. 히브리서는 그러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온유하게 들으라고 권고한다(12절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요구하는 과제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 생활의 모호한 점, 거짓, 주저함과 두려워하는 것을 심판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또 복음을 위해 사물들과 자기 자신 그리고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있는지 볼 수 있게끔 “모든 것이 드러나게 하는”(13절) 그 말씀에 의해 철저히 자신이 드러나도록 내 맡기는 것이 진정한 마음의 “지혜”이다.

가난함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만이 그 나라를 차지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우리 마음에 하느님과 재물이나 세상의 것들이 어떤 순서로 자리 잡고 있느냐에 따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독서의 말씀에 따라, 참된 부, 참된 지혜를 차지할 수 있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안에 더욱 풍요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은총으로 우리가 주님 안에 더 일치되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 조욱현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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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묻는 사람은 이야기의 흐름상 재산이 많은 부자인 것 같습니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는가’라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것을 봐서는 율법을 잘 아는 바리사이파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 많은 계명들을 잘 지키며 율법의 정신에 따라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율법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아무 걱정 없이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왜 사생결단의 자세로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묻는 것일까요? 그는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음을 아는 듯합니다. 하지만 의롭게 살며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부를 축적해 온 그의 귀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그것을 충분히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혜를 갈구하는 그 눈빛은 이내 사그라지고 얼굴은 울상이 되어 물러갑니다. 부자는 ‘뭔가를 얻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뭔가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물도 명예도 얻었으니 내친김에 영원한 생명까지도 소유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동안에 얻은 것을 다 버려야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엇을 쫓아 여기까지 왔나’하는 삶의 허무함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주님의 선물이고 은총이며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나눔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기에,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욕심이며 집착일 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하늘에 내 집을 짓는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 시간, 재능, 명예, 권력, 건강 등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봉사하기 위한 주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한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다짐과 노력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십니다(마르 10,21).

▶ 박현성(레오)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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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교황님의 가르침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 담겨 있는 오래된 가르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소비 능력이 점차 늘어나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모든 것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못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든 실재 앞에서 차분히 머무르는 행위는 우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완성에 이르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검소함은 우리가 작은 것들의 진가를 차근차근 알아볼수 있게 하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들에 감사하면서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탄식하지도 않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지배의 논리를 피하고 단순히 쾌락을 쌓는 일을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회칙 「찬미받으소서」, 222항).

우리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분한 태도로 살아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누군가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으며, 순간순간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겨 충만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에 핀 나리꽃과 하늘의 새들을 바라보라고 권유하셨을 때나, 당신께 질문하는 부자 청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마르 10,21)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자세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과 피조물과 온전히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피상적이고 공격적이며 충동적인 소비자로 만드는 병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회칙 「찬미받으소서」, 226항).

식사 전후에 잠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이러한 태도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저는 모든 신자가 이 소중한 관습을 다시 받아들여 내면화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짧지만 이러한 축복받은 시간은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피조물을 선물하신 것에 대하여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해 주고, 노동을 통하여 이 음식을 우리에게 마련해 준 이들을 떠올리게 하며, 가장 궁핍한 이들과의 연대를 재확인시켜 줍니다(회칙 「찬미받으소서」, 227항).

►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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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려면

‘아이언 맨’은 전 세계가 좋아하는 슈퍼 영웅입니다. 아이언 맨은 돈 많은 과학자가 하늘을 나는 기계 슈트를 만들어 어려운 사람도 돕고 지구도 지킨다는 좀 황당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삶을 대변해주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언 맨’의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테슬라’라고 하는 전기자동차회사를 만든 사람인데 ‘일론 머스크’라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아이언 맨 영화에도 깜짝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전기자동차의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충전시킬 생각을 해서태양광 회사(솔라시티)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성에 인류를 살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스페이스 엑스라는 로케트 회사도 만들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처음 로케트 세 대의 발사가 모두 실패하여 엄청난 손해를 보았을 때 포기할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혀요. 저는 포기를 모릅니다. 제가 죽거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지 않다면 말이죠.”

그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본래부터 실패의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그는 본래 돈이 없었습니다. 당장 가진 돈 가지고는 그런 일을 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투자는 항상 무일푼이 되거나 빚쟁이가 되어야하는 위험부담이 있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투자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1달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돈이 있었는데도 그랬던 것이 아니고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의 동생과 첫 인터넷 사업을 하며 창업을 할 때 하루에 1달러만 쓰고 한 달을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한 것입니다. 그는 마트에 가서 30달러를 주고 한 달 동안 먹을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만 한 달을 살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견딜 만 했습니다.

컴퓨터 한 대와 30달러로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안 돼도 한 달에 30달러는 벌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모든 사람이 말리는 일에 투자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성공시킨 사업이 결국 우주 산업까지 뛰어들 수 있게 자금을 만들어준 최초의 인터넷 금융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입니다.

지금은 땅굴을 파서 차들이 막힐 때 지하도로로 들어가 자동주행을 통해 목적지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회사(땅 파는 회사)를 ‘정말’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땅굴을 파는 기계를 만들어 땅을 파고 있습니다. 그는 땅 속으로 그리고 우주 밖으로 나아가는 좀 비현실적인 회사를 만들며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대부분은 돈이 없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을 시스템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업이 실패하지는 않을까, 직장에서 해고당하지는 않을까, 자녀가 이혼하지는 않을까 등의 고민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만약 일론 모스크도 그랬다면 지금의 혁신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모든 재산을 자신의 꿈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두려움에 직면하여 보고 얻은 결과물입니다. 거지와 다름없이 가난하게 살아봤지만 크게 나쁠 거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예수님께 달려와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가 율법은 다 잘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그가 열심히 살아온 것을 아시자 사랑스럽게 바라보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시며, 그 일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화성으로 가고 싶어서 모든 것을 투자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누리는 하늘나라를 가기 위해 무엇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가진 것을 다 바칠 만큼 간절히 원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항상 투자에는 위험부담이 따름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마치 밭에 묻힌 보물과 같아서 가진 것을 다 팔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투자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별로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는 5만원만 투자하고 화성보다 더 살기 좋은 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사람과 같습니다. 화성까지 가는데도 완전히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데,영원히 살 곳을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투자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1달러 프로젝트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좋아졌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서 편지를 기다리는데 한 통도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7개월 만에 휴가를 나올 때까지 온갖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그런데 그 여자는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를 떠나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때문에 혼자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는 그 사람이 없으면 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져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씁니다. 이것이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이 떠나가도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 자유롭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크게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뜨거운 사우나를 한 번 하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두려움은 항상 자신 안에서 현실보다 부풀려져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의 숫자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두려움의 실재는 별거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현실보다 훨씬 크게 두려워합니다. 우리 자아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일론 머스크처럼 그 최악의 상황을 한 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신학교 들어가서도 ‘쫓겨나서 신부 못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쫓겨나면 프란치스코처럼 거지로 살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오히려 사제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던 어떤 신학생들은 그 두려움을 스스로 사제가 되지 않으며 극복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살로 극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다보면 그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야 맙니다.이 세상 모든 것을 잃는 두려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존재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울증을 겪을 때 우주로 나가고 싶다는 젊었을 때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해지는 두려움을 극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별거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인생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꿈을 펼쳐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밭에 묻힌 보물인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주님께서 알려주신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십일조’인데도 그것 조차도 내지 못하면 진정 그 뒤에 따라오는 삶을 맛볼 수 없습니다.

정녕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돈인지 천국인지 결정해야합니다. 돈을 잃는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면 바늘귀 앞에서 망설이는 낙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려면 가진 것을 모두 잃는 두려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2018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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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어떤 사람이 구원 받는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얻는 것은 ‘정신적 풍요로움’이라고 부르는 것에 일시적 영향만을 준다고 한다. 즉, 새로운 물건을 샀을 때의 최초의 만족감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행복은 재빠르게 예전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상당한 재력을 지닌 부자들을 꽤 많이 만나보았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삶이 매우 불만족스럽고 불행하다고 고백했다. 부(富)는 사람들 주변에 일종의 보호막을 만들며, 이것은 종종 외로움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부는 많은 괴로움도 가져오는 ‘신뢰할 수 없는 친구’이다. ‘물질적 부’는 많은 스트레스와 불행의 근원이 될 수 있지만, 사랑과 자비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부’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어떤 부를 추구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물질적 부는 매우 오래 지속되는 일종의 안전과 만족감을 준다고. 아마도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부가 실제로 얼마나 견고할 수 있을까?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우리가 느끼는 물질적 안전이 실상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일깨워준다(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참조).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 복음은 재물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한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어느 부자의 질문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마르 10,19)고 이르신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계명을 철저하게 지켜왔다고 확언하는 그 남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한 가지를 지적해주신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르 10,21).

하늘의 보물은 다른 이의 생명이나 재물에 손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행위와 노력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의 보물은 선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주는 ‘적극적인 길’에서 얻어진다고 가르친다.

끝으로,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 “하느님 아버지를 그대의 빚쟁이로 만드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느라 사용한 재물은 빚쟁이가 선한 채권자에게 하듯이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드님을 그대의 빚쟁이로 만드십시오. 그분께서는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나에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나를 맞아들였고, 내가 헐벗을 때에 나를 덮어주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당신께 해 드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수원교구 박정배 베네딕토 신부 : 2018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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