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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소유와 나눔
조회수 | 2,260
작성일 | 06.10.13
많은 분들이 몇 년 전에 있었던 소위 ‘로또열풍’을 기억하실 겁니다. 1번에서 45번 사이에 있는 번호 6개를 정해서 모두 맞추면 거액의 돈을 당첨금으로 가져갈 수 있는 복권이지요. 당첨금이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1등 당첨 예상금이 몇 백억이 넘는다고 하니 어른, 아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너도나도 복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열풍은 당첨자가 없어서 한 주 한 주 넘어가면서 더더욱 가열되었고 급기야 400억이 넘는 당첨금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몇 주 동안 로또 이외에는 다른 이야기들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당첨금을 탈 수 있는 방법, 당첨금을 이용해서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방법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돌았습니다. 제가 있던 본당에서도 이런 로또 열풍은 예외 없이 불었습니다. 어른들, 청년들, 교사들 할 것 없이 로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고 당첨되면 저에게도 돈을 나누어주겠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에 떠돌던 여러 이야기들을 읽고 사람들과 로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1등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고 집 안에는 온갖 비싼 기기들을 갖추어 놓고 그동안 가고 싶었던 세계일주도 하고 비싼 차도 사고 그 밖에 사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 갖추어 놓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난 것은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누리려면 사제로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호화로운 별장이 있어도 본당의 상주의무를 지켜야 하는 사제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아주 비싼 외제차는 사제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양복입고 갓 쓰는 것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주일을 껴서 휴가를 가기도 힘든 본당 신부에게 세계일주 여행은 그저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제 자신에게 부끄러웠던 것은 1등에 당첨되었다고 상상한 후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주교님께 1등에 당첨되었다고 말씀드려야 하나?’란 걱정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질 수도 없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눈이 흐려진 것이죠. 사지도 않은 복권 때문에 이렇게 부끄러운 생각을 하다니 아직도 내공이 한참 부족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사람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성실히 지켜온 모범적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하지 못합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선뜻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던 베드로를 포함한 12제자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한 것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사건입니다. ‘돈’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많은 유익함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더 좋은 집과 더 예쁜 옷가지들, 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은 ‘돈’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내 기도와 정성 뿐 아니라 ‘돈’도 있어야 합니다. ‘돈’ 자체는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우리가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의 부끄러운 고백에서도 밝혔지만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돈을 소유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는데 방해가 됩니다. 돈 혹은 재물은 ‘소유하고 있음’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그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재물은 그와 나를 온전히 하느님께로 다가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뛰어난 재능이나 많은 재산을 허락하셨다면 나 혼자 소유하려고 애쓰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보다는 기꺼이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써 언제든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신앙인이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의정부 교구 이석재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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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지혜로운 삶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승에서의 삶에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게 성공된 삶을 살기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오늘 독서들과 복음은 이야기해줍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에서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지혜 7,8)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는 “내가 기도하자”(지혜 7,7)라고 하여 지혜는 기도를 통해서, 즉 하느님에게서 나옴을 말합니다. 그리고 제2독서인 히브리서는 하느님 말씀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알려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하느님 말씀은 생동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속셈까지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지혜요, 하느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지혜로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부자청년에게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르 10,21)라고 하시며 재산에 집착하는 청년의 마음을 꿰뚫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의 지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셨음을 깨닫고 그것을 그분의 처분에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아주 큰 선물인 하느님 나라의 입장허가를 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와는 다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는 말은 하느님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성공의 길은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알아야 하고 거기에다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걸어갈 땐 차 욕하고, 운전할 땐 걷는 사람 욕하는 분’, ‘뉴스볼 때마다 세금올리는 정치인들이 서민들 다 죽인다면서 자기 집 세입자 월세 올리는 분’, ‘명품족 욕하다가 그걸 선물로 받으면 그렇게 고마워하는 분’ 등등.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축복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나열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 않는 지 성찰하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참된 지혜를 얻는 날들이시길 기원합니다.

▶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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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가을 기운이 완연해졌습니다. 저는 해마다 초겨울이 되면 신학교에서 보낸 첫해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신학교는 아주 심하게 춥지 않으면 난방을 해주지않기 때문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낯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저로서는 그해 가을이 유난히 싸늘하고외롭게 느껴졌습니다. 더운물도 안 나오는 추운 세면실에서 씻고, 몸으로 덥혀야 하는 얇은 이불 속으로 가기 전에 같은 학년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부방(연학실)을 향해 춥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야 했습니다. 추워지는 늦가을의 날씨를 느끼며 신학교 밖의 사람들은 힘든 군사정권의 강압아래에서 김장은 했는지, 또 연탄은 들여 놓았는지 궁금했지만 그런 것들은 훗날 사제가 된 후에 잘 사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현재의 공부에 전념을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속으로 부르던 생활성가의 가사가 요즘도 귓가에 맴돕니다.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 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
최근에야 그 노래가 이태석 신부님이 학생 때 작사 작곡한 노래 ‘묵상’이라는 것을 알고는 “역시” 세상에는 나랑 같은 고민을 하고 주님께 기도 드리는 형제들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힘을 얻을 수 있고 이 추위와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한 해 동안 온갖 풍파를 견디며 나무에게 양분을 충분히 만들어 주고 열매를 맺고 난 후에 “이젠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자기를 떨어뜨려 또다시 뿌리에게 양분으로 자기를 내어주려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가을이 되고 교회력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는 얼마나 열매를 맺고 살고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내년을 준비해야지요.

복음의 젊은이는 계명을 잘 지키고 충실히 산 후에도 또다시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삶이라는 행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간 일들에 만족하거나 못다한 일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따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중심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복음대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면 제가 떠올리는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오(2디모 2,8)”

의정부교구 김종원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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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청년이 갑작스레 면담을 요청했다. 자신은 사제가 되고 싶고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 청년은 본격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를 설명하자 조금 당황해했다. 결국 그 청년은 신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얼마 뒤 또 다른 청년도 흥분한 얼굴로 찾아와 자신은 사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청년 역시 사제란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을 헌신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실제로 신학교에 지원하기까지의 구체적 인 일정을 소개하자 뭔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신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사제가 되겠다고 결정하면 그냥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건 뭔가 자유가 없어지는 것 같고 심지어 재미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어떤 돈 많은 부자가 예수님을 뵙고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질문을 했다. 그는 예수님에 관 한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흥분되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평생의 질문이었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 고자 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아첨(?)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울상이 되어 예수님을 떠나간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고 전혀 놓을 마음도 없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옵션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했던 것일까?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분은 나의 이 참으로 아름다운 생각과 흥분을 유지시켜줄 것이다’라는 뭐 그런 분쯤으로 여 긴 것이다. 자기 딴에는 왠지 멋진 것 같은 가짜 주님을 이미 마음속에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현대의 우리 역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고, 선하신 주님, 자비로우신 주님, 사랑이 넘치시며 등등 여러 가지 아름다운 말로 주님을 찬양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중요 한 계명을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온갖 미사 여구로 주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그치거나 나의 만족감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세례 때의 고백대로 신앙이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고, 그 신앙은 사랑을 실천하는 살아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 의정부교구 홍석정 가시미로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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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부족한 것”

한 신자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가서 보니 놀랍게도 이 세상과 똑같은 모습인 겁니다. 어느 동네는 호화주택에 고급승용차에 마트, 병원 등도 최고급이었습니다. 그러나 옆 동네는 기울어진 판자집에 낡은 자전거, 구멍가게, 옛날약방들만 즐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문을 지키는 베드로 사도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이 어떻게 속세보다 못합니까?”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대답했습니다. “살아생전에 헌금을 많이 낸 사람들은 천국에서도 부자로 산다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기서도 가난하지” 그러자 그는 분노하며 따졌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롭고 자비하시며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까? 어떻게 돈 하나 때문에 이리 사람을 차별하십니까? 여기가 정녕 천국이 맞단 말입니까?”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달래며 말했습니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 보게나”

이윽고 밤이 왔습니다. 그러자 부자동네 쪽은 캄캄하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낮에도 거리에 사람 하나 없던 곳인데 밤이 되자 아예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옆 동네는 달랐습니다. 집집마다 불이 환히 켜졌고, 사람들은 음식을 차려놓고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도 모두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저들은 화려한 곳에 살기는 하지만 전기도, 가스도, 기름도, 심지어 마트에 물건도 거의 없다네. 헌금은 많이 냈지만 사랑은 별로 실천하지 않은 결과지. 반면 이들은 비록 누추한 곳에 살긴 하지만 전기도 가스도 기름도 넉넉하고, 가게에 물건들도 많다네. 헌금은 적게 냈어도 사랑을 늘 실천하며 살았던 게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욕망에 속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그 사람이 계명을 잘 지켰던 이유도 하느님의 자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칭송받고 싶은 숨겨진 욕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켜 복을 받아서 부자까지 되었으니, 사람들이 자신을 칭송할 것이라는 우월감에 차 있었던 것이지요. 거기다 구원까지 얻게 된다면 ‘저들이 얼마나 나를 부러워할까?’ 내심 기대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노력해서 얻은명예나 권력, 심지어 계명의 실천으로 받은 보상까지, 사실은 모두 구원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재물입니다. 재물은 그 깨달음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나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어 그분을 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재물이란 무엇인가?’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낙타 같은 내가 바늘귀 같은 천국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느님께 간절히 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장세훈 시몬 신부 : 2018년 10월 14일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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