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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 깡통
조회수 | 2,113
작성일 | 06.10.13
요즈음은 보기 힘든 일입니다. 한 30년 전만 해도 집집 마다 밥을 얻기 위해 깡통을 들고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 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라고는 오직 먹고살기 위한 도 구로 깡통 하나와 숟가락 하나 그리고 걸치고 다니는 옷뿐 이었습니다. 집도 없기에 겨울에는 눈보라, 여름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잠을 자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사람의 깡통을 차버리든지, 던져버리면 ‘내 깡통’ 이라고 소리치면서 그 깡통을 찾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다’ 라고 했다는 신학교 다닐 때의 교수 신부님 말씀이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그 깡통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느 해인지 세차하려고 세차장에 갔다가 재미난 광경을 봤습니다. 고급차인데 세차를 하고는 틈새에 있는 먼지는 종이를 접어서 닦아내고 발판은 흙이 묻는다고 신문지를 깔고는 운전기사분께 깨끗하게 타지 못한다고 꾸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기가 막혔습니다. 옆에 보고 있던 사람들이 ‘아예 차를 머리에 이고 다니지’ 하며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평생 그 차와 함께 살려는지... 아끼며 타는 것은 좋은데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면서 세상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에 하느님의 뜻은 멀리 가버리고 내 뜻만 남아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르 10,21).”

깡통도 고급차도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필요는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버릴 때에는 영원한 삶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세상이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으로 하느님 나라를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오늘 복음에 나타난 『어떤 사람』의 모습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살맛나는 모습이 되어진다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대구대교구 한재상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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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유명한 유치원 원아모집을 할 때 밤새 줄 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학등록을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마 ‘내 아이에게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과 정성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 말로는, 유치원에서 참 이쁘게 교육을 잘 시켜놨는데 그게 연장이 안 된다고 한다. 유치원에서는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놨는데, 집에 가면 엄마가 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집에서와는 다른 이중의 삶을 산다. 그래서 아이들이 헷갈리지 싶다. 유치원에서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길을 아무데서나 건너지 말고 횡단보도로 건너도록 배웠는데, 아빠는 차타고 가면서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버리고,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나란히 무단횡단을 하고. 배운 대로 살도록 해야지 안 헷갈리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부모가 모범은 안 보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시범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착하게 살라고 한다. 어떻게 사는 게 착하게 사는 것인지 헷갈리지 싶다.

실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부모님은 전혀 착한 어른이 아니다. 신앙의 전수자인 부모는 무엇으로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는가?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론은 이렇지만 실제는 안 그러니까 요령껏 살라고 가르쳐야 하나? 답답하다. 본당에서 교리교육과 신앙교육을 열심히 시켜놔도 막상 집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한다. 안 해도 부모들이 뭐라 하지 않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은 받기를 원하면서도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기도와 삶으로 인격적인 응답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십계명을 말씀하시는데, 그 부자는 잘 지켜왔다고 대답한다. 정말 그 부자는 잘 지켜 왔나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부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명령하신다. 먼저,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하신다. 하느님께 나아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방해되는 장애물인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시작이며, 영원한 생명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 다음 “와서 나를 따라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온전히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오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부자는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는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선택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재물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기 때문에 알고서도 버리지 못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래서 알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된다.

우리도 그저 아 는 것만으로 끝내지 말고 아 는것을 실천해야 하겠다. 생각으로만,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실천해야 하겠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겠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된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대구대교구 이기환 사무엘 신부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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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우리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 복음에 부자 청년이 등장합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잘 배운 것으로 보여 지고, 또 배운대로, 정해놓은 율법 규정대로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 고 전하는 것을 보면, 부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의 어떤 잘못됨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년 스스로는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자 청년은 스스로 더 해야 할 무엇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달려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답은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였습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부자 청년의 마음은 재물에 매여 있었습니다.‘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이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따라오라니...’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재물의 포기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는 재물과, 재물을 통해 누리는 사회로부터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떠나가게 됩니다.

재물은 분명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큰 도구가 될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지만, 재물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남는다면, 하느님과 이웃을 다 잊어버릴 정도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하는 문제를 얘기하고 싶으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자신도 모르게 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처럼 마음은 재물에 두고, 그저 계명을 지키는 삶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지하게, 큰 이상을 품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지만, 신앙의 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재물이 삶의 목표인양,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의 마음이 재물에 매여 있지 않고, 진정한 나눔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이길 청합니다.

► 대구대교구 김명섭 그레고리오 신부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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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먼저 손에 넣으면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키며 살아온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살인을 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으며, 도둑질도, 거짓 증언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계명을 지키며 살아온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묻습니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반, 그리고 예수님께 잘하고 있다고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반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이 청년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계명을 다 지키고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재산이 꽤 많았던 것으로 봐서는 부모님이 부자이거나 스스로가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는 풍족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풍족함을 포기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라는,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하라는 말씀으로 들렸기에 쉽게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가진 것을 손에서 놓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따르기만 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초대였습니다. 그렇게 가진 것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면 그 다음으로 마음에서도 놓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비워진 마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진리를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참 진리를 알게 되었다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지켜온 계명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금지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라는 초대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은 가진 것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슬퍼하며 떠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우리가 당장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슬퍼하며 그분을 떠나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조금씩 손에서 놓는 연습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꼭 쥐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손에서 놓게 되면, 마음에서도 놓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마음에서 놓게 되면 그렇게 비워진 곳에 예수님을 더 채울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연상모 루카 신부 : 2018년 10월 14일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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