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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그 놈의 돈이 뭐길래
조회수 | 2,465
작성일 | 06.10.13
「만약에 잭팟(Jackpot)이 터져서 6백만불을 거머쥐게 된다면?」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들어갈 때면 으례히 서로 약속을 한다.

첫째로 동전 한푼이라도 꿔주거나 받지 말 것. 왜냐하면 내가 꿔준 돈으로 횡재했으니 나와 반씩 나눠야 한다고 대들지 모르니까(실제로 그런 재판이 많다고 한다).

둘째는 내가 땄어도 너희들에겐 저녁 한끼 근사하게 낼테니까, 그 이후론 서로 안면몰수 할 것.

세째로 돈 땄을 때를 대비하여 미리 기자 인터뷰할 것을 생각해 둔다.

네째로 그 돈을 챙겨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한다. 돈 꿔달라는 사람이 많을 터이므로. 그리고 안갚을 것이 뻔하므로‥‥이젠 약속이 다되었다.

도시로 들어오니 후드드득! 후드드득! 돈 쏟아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덤벼본다. 그리고는? 웬걸, 몽땅 털리고 만다. 아까의 약속은 즐거운 헛소리일 뿐이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그렇게도 못가져 안달일까? 하긴 나에게 누가 1억쯤 거저 준다면(그럴리야 없겠지만) 정신이 산란할 것이다. 분심이 들 것이다. 이 돈을 어찌 해야하나? 어디다 써야하나?

이 하늘 높은 시월에, 웬 느닷없는 돈타령이냐고? 그러나 요즘 세상 돈 때문에 신세망치는 사람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뜻에서, 아니 정당하게 벌고, 제대로 돈을 쓸 줄 알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다. 돈 철학을 엉성하게나마 늘어놓으려 한다.

옛날 우리나라 동전은, 가운데 구멍은 사각형이고 겉은 동그랗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하늘은 둥글고 「천원(天圓)」, 땅은 네모나다「지방(地方)」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동양의 사고에 근거해서 동전 겉은 하늘을 뜻해서 둥글고, 안은 땅을 생각해서 네모구멍을 뚫은 것이다. 이것은 곧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온 천지 온 누리에 돈이 통용되라는 뜻이다.

그리고「돈」이란 말도, 돌고 돈다 해서 생긴 것이니 돈은 자꾸 돌려야 한다. 돈을 감추어두면 안 된다는 뜻이다. 선거자금이니 ,비자금이니, 안정기금이니, 떡값이니, 음성적 수입이니, 뭐니하고 돈을 감추면 썩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썩으면 윤리도 양심도 썩게 된다. 옛날 돈은 가운데 구멍을 뚫었으므로 그 돈을 눈앞에 바짝 갖다가 대어도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동전은 구멍이 없다. 그래서 막힌 동전을 눈앞에 바짝 갖다 대면 캄캄하다.

이렇듯 요즘 사람들은 돈을 눈앞에 두면 도덕이고, 윤리고, 철학이고 할것 없이 인격 전체가 캄캄해진다. 사람이 검어진다. 황금흑사심(黃金黑士心)이다. 그러므로 막힌 동전이라도 옛날 것처럼 뚫고 보는 지혜가 있어야 돈을 이기지, 돈에게 잡혀서는 검은 인생을 살게 된다. 감옥에 엮여 들어간 사람들의 인생이랄까.

옛날 동전은 그 이름이 상평통보(常平通寶)였다. 1633년 인조 11년 김육(金堉)이 건의하여 시작되었다. 상평(常平)이란 말을 풀이해 보자. 돈은 항상 잘 유통되어야 한다. 있을 때 저축하고 없을 때 활용해야 한다. 곡식도 마찬가지로 수확기에 많이 비축했다가 빈궁기에 풀어야 한다. 이래야 경제가 상시평준(常時平準)이 된다. 이 말을 줄여 상평(常平)이라 했다.

오늘 가난해도 내일 부자가 될 수 있고, 오늘 부자였다가 내일 가난해질 수도 있다. 정신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상시평준이 상평이고, 이런 유통이 되는 보물이 통보(通寶)라면 자연스럽게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바로 상평일 것이다. 특히 자선사업에 쓰는 돈은 어느 면에서 상평통보이다. 그러므로 내게 재산이 있다고 움켜쥐기만 하고 내놓지 아니하고 주지아니하는 사람은 유무상통(有無相通), 상하평준(上下平準)의 자세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돈을 잘 써보자. 잘 쓰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모든 정치가들이 권력을 잡을 당시에는 국민들에게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사회복지를 위해 괄목할만하게 해놓은 게 무엇인가? 별로 없다. 노인문제를 해결했나, 장애인이 자긍심 갖고 살도록 해결했나? 가난한 자에게 혜택을 제대로 주었나, 수입이 많았으면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나, 도로 표지판이라도 제대로 해서 사고를 줄이려 했나, 도대체 상평(常平)위해 노력한 흔적이 안 보인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부(富)와 재물(財物)에 대해 훈계하신다. 어느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이 청년이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 중에 떠나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이는 부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 구원의 방해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지혜이신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내걸고 결단을 내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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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화는 하느님의 것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부자로서 그의 재산이 약 500억 달러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약 50조원이나 된다. 그는 이미 사회 복지 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며 가족들 몫으로 1000만 달러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원해왔다. 제2위 부자는 투자의 귀재라 불리우는 워런 터핏 회장이다. 그는 지난 6월 자기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약 37조원)를 빌 게이츠 자선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 했다. 아시아에서 최고 부자인 홍콩의 리카싱 청쿵 그룹 회장인데 세계부회 10번째로 선정 되었으며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어 왔으며 지난 8월 자기 재산의 3분의 1 (약 6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갑부들은 편법을 써서라도 자식들에게 상속 및 증여를 하려고 애를 쓴다. 최근에 어느 재벌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 및 증여세를 납부하면서 모든 지분을 두 자녀에게 상속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갑부들에게 언제쯤 기부문화가 정착 될 수 있을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 에 들어가는 것보자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는 재화는 창조주이신 하느니므이 것이고 우리는 관리인에 불과하다. 죽을 때 모두 다 놓고 가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받아 관리하는 동안 하느님의 뜻대로 잘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나누는 삶, 베부는 삶을 살아갈 때 부자도 바늘귀를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재물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그렇다고 세상살이 하는데 재물은 있어야 되겠고,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잠언 30장 7-9절에 잘 나와 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산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림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도 재물을 청하기보다 솔로몬처럼 참다운 지혜를 청하면서 살아야겠다.

▶ 이광근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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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계명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어

오늘 복음에서 어떤 젊은이가 주님께 달려와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주님께서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하시며 십계명 가운데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4~10계명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주님은 그 젊은이가 하지 말라는 금지 계명을 알고 있지만 계명의 정신을 알지 못하며 이웃과 구체적으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신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한 마디를 건네신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계명을 외면하는 듯하다. 의무로 부가된 규칙과 명령을 지키기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과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예의 없는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에게 한마디 하면 부모가 기를 죽인다며 면박을 준다.

시편 119장은 말한다.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불의를 저지르지 아니하고 그분의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을 찾아온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갈 길을 깨끗이 보존할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영성가들은 하느님 계명을 밤하늘의 별에 비유한다. 배가 밤바다를 항해할 때 별은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항해사가 실수하지 않고 항구에 잘 도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교회 역사에서도 개혁 수도자들에겐 '규칙의 지킴이'라는 말이 붙어다녔다. 이들은 규칙의 근본을 고수하면서 전통 계명을 지킨 사람들이다. 새 수도복을 제안해도 옛것을 고수한다. 이렇듯 하느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계명은 삶의 뿌리다. 계명의 정신에서 힘을 얻고 맑고 순수한 삶을 살고자 보존한다.

모든 기계, 특히 자동차는 규칙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차량운행을 위한 기본 계명을 철저히 지킬 때 오래 잘 달릴 수 있다. 그리스도 계명도 목적이 같다. 우리 역시 자신의 삶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의롭게 살아갈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주님은 오늘 복음 속 젊은이에게 부족한 것을 지적하신다. 그렇다면 맑고 순수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하느님 계명은 무엇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약의 완전한 사람은 의로운 자다. 의로운 사람은 모든 율법 계명을 지키는 요셉과 같은 인물이다(마태 1,19). 의로운 자는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지키는 자다.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이도 그랬다. 예수님은 그 젊은이를 사랑하지만 한 가지를 실천하라고 덧붙인다. 계명 속 정신과 사랑의 나눔, 자기 소유의 나눔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계명과 그 정신인 최고 완덕을 구별해 말하고 있다. 계명은 지키거나 지키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계명의 영적 관점은 의로워야 한다고 교부들은 말한다. 영적으로 말하는 계명과 완덕의 충고들 사이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은 화성학을 공부해야 한다. 화성학은 음악의 선율과 조화의 규칙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배웠다고 곧바로 작곡할 수는 없다. 작곡 지망생이 창조적인 새 음악을 만들어 표현하려면 화성학을 배우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성생활도 비슷하다. 기록된 계명에 단순히 머물지 말고 그것을 넘어 계명의 정신을 살아가야 한다. 사랑은 계명 의무의 한계를 넘어 그 정신을 실천하게 한다.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이에게 부족했던 점은 계명 자체에 머문 것이었다.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 사랑이 필요하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랑으로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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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느님과 재물

오늘 지혜서는 지혜가 왕홀과 왕좌보다도 좋고 세상의 어떤 귀한 재화보다 좋다고 가르칩니다. 지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도 좋습니다. 그러나 송구스럽게도 돈이 하느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돈은 우리 신앙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도전이요 갈등입니다.

돈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갖고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사람을 슬프게도 합니다.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과 재물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재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항변하는 이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돈을 위해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큰 걱정을 안겨 줍니다. 왜냐하면 재물을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빈손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오늘 성당에 오면서 금반지를 손에 끼고 온 사람은 날라리 신자이거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거지가 되라는 말씀일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남에게 주면 이제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되어, 내가 살아가려면 이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지신세가 됩니다. 거지신세가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고 그리스도를 따를 자격이 있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분만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을 따르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재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재물이 하느님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재물이 하느님보다 못하다는 행동을 보이기 힘듭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된다면, 하느님을 믿는 데 재물이 방해가 된다면 팔아서 가난한 이에게 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큰 보석을 사놓고 도둑 맞을까봐 성당에도 못 나오고 집을 지킨다면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TV 때문에 저녁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렇다면TV는 나와 하느님 관계를 떼어놓는 재물입니다. 아예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나에게 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다 팔아 가난한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아멘

► 대전교구 권태웅 안셀모 신부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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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뉴스 때마다 아름답게 물들은 산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의 고통은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버리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많은 것을 얻은 자가 아니라, 의미 없는 것을 버린 자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새는 반짝이는 것은 무엇이든 주워 모으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주워온 쇳조각들로 둥지가 엉망이 되어도 말입니다. 아무리 수려한 샹들리에로 집을 꾸며도 그 샹들리에 위에 쓰레기가 얹혀 있다면 쓰레기집이 됩니다. 빛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버려야 할 쓰레기를 걸치고 품고 다니면 쓰레기 인생이 됩니다.

버리면 자유와 여백이 생깁니다. 쫓기는 이유는 버리지 못해서인 것입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열성 가득한 젊은이에게 부족한 한 가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구원, 곧 신앙의 열매는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는 맹수의 이빨에 갈려 깨끗한 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을 비롯하여, 주님을 위해 의사로서의 삶을 버리고 사도들의 동반자로 선교활동에 나셨으며, 주님의 기쁜 소식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루카 복음사가를 기억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성인들처럼 우리 마음에 주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기도합니다.

▦ 대전교구 민병섭 바오로 신부 : 2018년 10월 14일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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