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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
조회수 | 2,055
작성일 | 06.10.27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와 그를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눈먼 거지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큰소리로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르며 자비를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소경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오늘 치유 사화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향한 소경의 절대적인 매달림입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둠의 삶, 가진 것 없는 절망의 삶을 살았던 눈먼 거지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며 꾸짖었지만,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러한 소경의 외침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그의 절대적 신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경의 회개의 자세입니다. 소경은 예수님께 먼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용서를 청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자비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복음서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소경이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즉 전에는 볼 수 있었으나 어떤 이유로 못 보게 되었고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자신이 못 보게 된 것을 통하여 소경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그분께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가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의 청을 드릴 때,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 성현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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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철든 구경꾼이 아닙니까?

헬렌 켈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장님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 시력은 있으되 꿈이 없는 사람이다.” 꿈은 마음의 눈이 열려 있는 사람이 갖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닫힌 사람은 꿈을 갖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많은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저것 이루고 싶은 꿈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눈이 열려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만큼 꿈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꿈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쉽게 꿈을 갖지 않습니다. 슬프게도 마음의 눈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면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몸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의 눈이 열린 소경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간절히 부르며 자비를 청합니다.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가는 철이든 반듯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구경꾼이 되어 따라다닐 뿐입니다.

혹시 당신은 철든 구경꾼이 아닙니까? 이웃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구경꾼, 고통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구경꾼, 사랑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구경꾼, 성체의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구경꾼, 말씀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구경꾼은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이 닫힌 눈 먼 소경임을 인정하고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주님께 간절하게 외쳐봅시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씀하시듯 “위로하며 이끌어 주시는 분”께 믿음을 가지고 외쳐봅시다. 제2독서 히브리서가 고백하듯 “영원한 대사제”이신 주님께 머리 굴리지 말고 단순한 믿음으로 외쳐봅시다. 다시 제대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사람을 사람답게, 자연을 자연답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외쳐봅시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 이금재 마르코 신부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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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다시 보게 되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

티매오의 아들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외칩니다. 어둠 가운데 머물던 그에게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절박함으로 마지막희망을 붙든 채, 군중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을 향해 힘껏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으며 예수님과 그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그들의 방해에도 그는 다시 한번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십니다.

다른 이들이 귀 막고 입 막았던 그 소리를 주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누구도 귀 기울이거나 말 걸지 않았던 눈먼 거지에게 주님께서는 길을 내어주십니다.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난 티매오의 아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과 바르티매오 사이에는 긴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눈먼 이는 곧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보았기에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마태 4,16)에게 세상의 빛(요한9,5)이 되어 주십니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을 하며(마태 2,18 참조) 고통과 좌절 가운데 아파하는 이들의 부르짖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만나주십니다. 십자가의 길에서마저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을(루카 23,27 참조)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의마지막 부분입니다.예루살렘을 향한 길은 곧 십자가를 향한 길입니다. 눈먼 이가 눈을 뜨고 보게 된 것은 지상에서의 영광이 아니라 다윗의 아들이며 스승이신 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며 지내던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분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세상을 보는 눈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뵐 수 있는 눈을 뜨도록 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제가 다시 볼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 10,51)

▦ 전주교구 박상운 토마스 신부 : 2018년 10월 28일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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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마르 10,46ㄴ-52)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의 눈을 고쳐 주신 이야기는 겉으로만 보면 다른 치유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었고, 청했고, 은총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이 이야기는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만 매여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고, 새 인생을 얻었는데, 그가 선택한 인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입니다.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길로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로 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눈이 치유된 이야기는 부수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니면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사람이 예수님 덕분에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 이야기는 어부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사는 일에만 매여 있던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실제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음서 저자가 그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다(마르 10,46ㄴ-48).”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이미 들었던 것 같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즉 자기를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일반적으로 거지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몇 푼의 돈을 달라고 청하는 것인데, 뒤의 51절을 보면, 바르티매오가 청하는 것은 몇 푼의 돈이 아니라‘다시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치기 시작하였다.’ 라는 말과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라는 말은, 그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그를 꾸짖은 것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을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랬거나, 아니면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여기서 ‘사람들’은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가로막는‘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이 말씀에서 ‘어린이’는 가난하고 힘없는 소외 계층 사람들, 가진 것이 없어서 하느님만 찾고 하느님에게만 의지하는 사람들로 해석됩니다.(하느님 나라는 그렇게 하느님만 찾고 하느님에게만 의지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마르 10,49-50).”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를 직접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를 불러오라고 사람들에게 시키신 것은, ‘어린이 같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신 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어린이 같은 사람들과 당신 사이를 막지 말라고 꾸짖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여기서 바르티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진 일은, 그가 ‘새 인생’을 희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당시에 거지들은 겉옷을 자기 앞에 펼쳐 놓고 거기에 돈을 받았습니다.)

바르티매오가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고 표현되어 있는 데, 이 말은 그가 예수님을 향해서 곧장 갔다는 뜻입니다. 앞을 못 보는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향해서 곧장 갈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아서 인도해 주었을까? 아니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 방향으로 간 것일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1-52).”

여기서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번역되어 있긴 한데, 원문을 보면, 바르티매오의 시각 장애가 선천적인 것이었는지, 후천적인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시각 장애가 후천적인 것이라면 그만큼 더 절실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이고, 눈을 뜬 다음에는 ‘새 인생’을 사는 것인데, 그가 바라는 ‘새 인생’은, 그의 시각 장애가 후천적인 것이라면, 시력을 잃기 전의 인생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생입니다.

“가거라.” 라는 말씀은, “새 인생을 향해서 가라.” 라는 뜻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말씀인데,

“믿음으로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라는 말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볼 수 있게 된 그가 새롭게 선택한 인생은, 돈을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인생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 2018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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