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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조회수 | 2,172
작성일 | 06.10.28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생시거든 어디 보자."  

이것은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는 극적인 장면에서 부르는 소리 한 대목입니다. 딸 심청이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는 극적인 장면이지요. 우리나라 심청전에서는 장님이 눈을 뜨는 장면이 이렇게 극적입니다만 서양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의 눈을 말씀 한 마디로 뜨게 해 주십니다. 바르티매오는 거지였습니다. 장님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참으로 힘든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직업이 거지라면 그 비참함이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거지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죽자살자 소리를 질러대지요. 예수님께서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물어보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10,51)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10,51)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간절히 매달렸을 것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10,52)
  
예수님의 이 한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 바르티매오는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내용이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것처럼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많은 양의 공양미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 소경의 믿음과 예수님의 권능, 이것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소경은 예수님을 만난 적도, 본적도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소문으로만 듣고도 소경은 자신의 아픈 삶을 치유해 달라고 예수님께 말하고자 염원했고, 또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조용히 하라고 야단치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소리 지르며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겉옷도 팽개친 채로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경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매달렸으며 예수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10,52)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바르타매오라는 거지 소경이 눈을 뜨는 장면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예수님을, 하늘을 움직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소경의 믿음과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우리는 나의 믿음은 어떠한지를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냉담을 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게으름 탓도 있지만, 집에서 혼자 신앙 생활을 하니 어렵습니다. 집안 일이 있으면 빠져야 하고, 또 남편의 눈치도 보아야 하니까요."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교우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으며 험담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냉담하게 된 것조차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신앙이 고르지 않고 내 노력이 부족한 것보다는 내 주변에 신자 생활을 하는 가족이 없다거나 또 신자들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서라든가 등으로 남의 탓을 하는 빈약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소경 바르티매오처럼,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단지 들어서 알뿐인데도 그것만 가지고 온갖 시련을 넘어 예수님께 달려드는 믿음, 바로 이런 믿음이 신앙을 성숙시키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볼 것은 누가 과연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바르티매오를 만나기 전에도 예수님 주위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예리코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고 구세주로 확신한 사람은 그 많은 사람 중에 장님 바르티매오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성한 눈을 가지고도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바르티매오는 장님이었지만 풍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두 눈을 가지고도 눈 뜬 장님보다 못하고, 또 두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귀머거리 보다 못하며, 입을 가졌어도 벙어리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남의 나쁜 점만 골라서 보고, 남의 험담에만 귀를 기울이며,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 돋친 말 만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좋은 것을 볼 줄 모르고 말할 줄 모르는 눈과 귀와 입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자신만이 불행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도 상처를 받고 불행해 집니다. 혹시라도 나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면 오늘 바르티매오처럼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으며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옛날에 사이가 나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지요. 이들은 서로가 만나는 사람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 흉을 보느라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 험담을 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만 아주 힘든 보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10번 씩 며느리를 칭찬하되 일주일간 계속하라는 신부님의 엄명이 내려진 것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며느리를 칭찬해야 하겠는데 시어머니는 통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이튿날 새벽에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하는 며느리를 만났습니다.
    
"피곤할 텐데 일찍도 일어났구나."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말을 걸어 봅니다. 그래도 그 소리만 듣고도 며느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또 밥을 먹다가 시어머니가 억지로 한 소리를 합니다.
󰡒오늘 아침 밥이 참 잘 되었구나. 며느리가 밥을 맛있게 했네.󰡓
  
칭찬하는 말이 입에서 잘 안나오지만 억지로라도 내뱉어 봅니다. 보속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어머니의 칭찬하는 소리에 며느리는 그만 감복을 하였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가슴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청소하는 며느리를 칭찬하고 빨래하는 며느리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칭찬을 하루에 10번도 넘게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고 시어머니 또한 마음이 조금씩 기뻐졌습니다. 그 날 밤에 이 두 사람은 둘 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했지만 이렇게 칭찬을 하고 보니 무척 기분이 좋았으므로 시어머니는 슬그머니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고생이 많은데 앞으로는 잘 해 주어야 되겠구나."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요.
    
"내일부터 잘해 드려야지."
  
이런 마음으로 두 사람 다 잠자리를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룬 것이지요.

좋게 보고 좋은 말을 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일줄 알면 삶이 달라집니다. 행복해지지요. 이는 고부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 사이도 똑같습니다. 형제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사이가 안 좋은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험담이나 비난은 서로를 상처 내고 관계를 파괴시키고 말지요.
  
반면에 칭찬과 격려는 일시에 상처를 치유해 주고 관계를 유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바른 것을 본다는 것은 남의 좋은 점을 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듣는다는 것은 남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말할 줄 안다는 것은 남을 격려하고 칭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눈과 귀와 입입니다. 이 중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약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 소경 바르티매오가 예수님께 청하였듯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귀를 열어 주십시오. 입을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바르티매오가 장님이었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큰 은혜를 받았듯이, 바른 눈과 귀와 입을 통해서 함께 사는 이웃의 좋은 면을 보고, 듣고, 말하기를 노력한다면 우리도 바르티매오가 받은 기적 못지 않은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더욱 풍성하게 확장되기를 바래봅니다.

▶ 이기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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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12년간 하혈하던 여인(마르 5,34)과 예리고의 소경 바르티매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군중에 둘러싸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큰 소리를 질러 예수님의 주의를 끈 인물들이다. 특히 바르티매오는 많은 이가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의 자비를 거듭 부르짖는 집요함을 보인다. 그의 태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느님에게까지 다다라서 마침내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출애굽 사건을 연상시킨다(탈출 3,7-10).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이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불굴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주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이다. 구경꾼의 호기심을 채워 주는 마법과 달리, 예수님의 기적은 수혜자의 강한 믿음과 인격적인 신뢰를 통해 실현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 간에는 본인의 믿음과 노력이 먼저 요청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유학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프랑스의 어느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때의 일이다. 그곳은 휴양지의 큰 본당이었기 때문에 단골 거지들이 미사 때마다 와서 성당 정문과 뒷문을 지키고 구걸하고 있었다. 뒷문 담당 거지들은 한 쌍의 남녀였는데 늘 술에 취해 주정을 했고,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마구 욕을 해대는 통에, 신자들은 가급적 뒷문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문 거지는 눈이 파랗고, 옷차림도 단정한 40세 전후의 말쑥한 신사(?)였다. 그는 날마다 깨끗하게 면도를 한 단정한 모습으로, 성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미사중에는 성당 마당을 청소하는 친절함까지 겸비하여, 많은 이들의 동정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한 번은 그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의 지나온 이야기들을 소상히 듣게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고아원에 버려졌다는 그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양부모님의 소망에 따라 ‘에메’(aime)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전기공의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실직 생활이 오래되자, 부인이 집을 나갔고, 결국 아는 사람에게 아들의 양육을 맡기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성당에서 구걸하는 것 외에도 식당에서 청소하여 번 돈으로 매달 아들의 양육비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 후, 에메는 길에서 만난 어느 노신사가 자신을 별장지기로 고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는 그 사이에 여자 친구가 생겨서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다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양육비를 벌기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그를 하늘도 반드시 도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저마다 영적인 장애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르티매오처럼 주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질긴 믿음이 요구되고 좌절과 시련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께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 백운철 신부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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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다시 볼 수 있게

보좌신부 시절 매달 다니는 봉성체 환자 중에 특별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기억하는 이유는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이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갑자기 중풍이 와 거동은 물론 말도 거의 못 하고, 한두 평 남짓한 움막 같은 집에 혼자 누워서 지냈습니다. 하루 세끼 으깬 감자를 물과 함께 먹으며 10년 가까이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딸은 평상시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방학 때면 항상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독일 유학을 가게 됐고, 제 교리반에서 교리 공부를 하셨던 의사 선생님에게 그 부녀를 돌봐 주십사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과, 가끔 그 집을 방문해서 환자를 돌봐주시고 가능하다면 요양 시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단단히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 부녀의 소식을 여쭈었습니다.

“신부님, 그 어린 딸이 아주 똑똑하고 대단한 아이예요. 좋은 상업고등학교를 들어가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했어요. 그리고 좋은 요양원 자리가 나서 환자를 거기로 모시려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모시겠다는 거예요.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소녀가 너무 단호해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병든 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겠다는 어린 소녀, 말 한마디부탁으로 몇 년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그 선생님, 모두 기적과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가끔은 궁금합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이 넘었을 그 소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예리코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되찾습니다.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용감하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처지였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우리 신앙인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눈이 먼 소경입니다. 육체적으로 결함이 없더라도 영적인 면에서는 소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깨닫고 이해한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욕심이나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습니다. 마음을 잘 닦아야 잘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오히려 눈을 감아야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다시 바르게 볼 수 있도록 간청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 : 2018년 10월 28일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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