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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아는 것과 사는 것
조회수 | 1,770
작성일 | 06.11.03
+ 찬미 예수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괴상한 논리를 내세우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일깨워 주며 물리치시자 이번에는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하고 떠보듯이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근본 계명을 말씀하시고, 여기에 대해 율법학자는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그를 칭찬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곧 이어서 사람들에게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2,38-40)”하고 비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신명기에 의한 제1독서의 말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라는 이 계명은 이집트 탈출사건 이래로 유다인이라면 누구나 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던 가장 큰 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녀들에게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야 하며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야 할 계명(신명 6,7-8)계명’이었습니다. 또한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라는 계명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만 열면 모세의 율법을 앞세우는 율법학자가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예수님께 무엇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질문하는 그 자체가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말로만 하느님의 계명을 내세우고 하느님보다는 조상들의 전통을 앞세우면서 사람들을 율법의 좁은 테두리 속에 얽어 놓고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아버지의 뜻을 받들면서 몸으로 아버지가 사랑하시던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면서 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며 순명하셨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 빵을 주셨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이 맞아주셨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으로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똑 부러지게 대답을 잘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하고 말씀하시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하고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단순히 안다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과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로써가 아니라, 아는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써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걸어 가셨고 그래서 걸어서 따라 오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길, 그 좁고 낮고 그렇지만 향기로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 우리 모두 손잡고 함께 걸어갑시다. 아멘.

마산교구 조정제(오딜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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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은 규칙이다. 하느님을 섬기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어떤 것이 첫번째에 해당될까. 율법학자 한사람?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규칙에 무슨 우열이 있겠는가.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꾸중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예수님은 소박하게 답하신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며 다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겠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동일시하였다.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 그대로 하느님을 충실히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계명은 곧 율법이다. 그러니 율법 준수는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척도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율법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 준수는 하느님 사랑의 부분적 표현이지 전부가 아님을 지적하신다.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율법 준수를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깝다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마음과 목숨과 생각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렇게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웃인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배우자일 수 있고 부모님일 수 있고 형제나 친구일 수 있다.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함께 하고 가까이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런 일은 마음먹고 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생을 노력해도 될까말까 하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삶의 방향을 그렇게 설정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다. 그래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말하길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웃이 싫어지더라도 하느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고 이웃이 나를 싫어하더라도 하느님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사랑을 통한 하느님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한편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생각과 힘을 다한다는 것은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두라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의 위치에 둔 것이 무엇이었든 이제는 그것을 제2의 위치, 두 번째 자리에 두고 첫 자리엔 하느님을 모시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마음과 목숨과 생각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의 시작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하느님은 받아주신다. 질문하는 율법학자를 받아주셨듯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은총으로 함께 하신다. 그러니 제일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일들을 이제는 주님 다음으로 여겨야 한다.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소중한 것이 되고 주님께서 주셔야 내 것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도 이제는 주님 다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남과 인연 역시도 주님께서 허락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분이 맡겨주신 일과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기억하자.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와 수용의 자세로 사랑의 길을 걸어간다면 주님께서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복음말씀은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마산교구 신은근 신부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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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묵상길잡이: 어떤 사람과 깊은 친교를 나누려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분을 이해하고 그분을 닮아가야 한다. 하느님과 깊은 우정을, 사랑을 나누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이신 주님을 닮아야 한다.

1. 어디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면 “하느님이 정말 있기는 있나?”하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느님을 보여주면 믿겠다는 말이다.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는 있다. 어디서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8)고 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이신 하느님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상호수여:相互授與)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시는 사랑의 하느님이 십니다. 셋이 사랑의 일치로 하나가 되는 분이 하느님이 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사랑을 체험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신앙 안에 서로 위해주고 서로를 아껴주는 “성가정(聖家庭)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삼위일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진한 사랑의 흐름이 있는 가정은, 참으로 하느님의 생명이 숨 쉬는 가정인 것이다. 그런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체험하는 그 가정의 식구들은 참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구원을 체험할 것이다. 살맛이 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사는 데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2. 사랑의 계명이 왜 가장 큰 계명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이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계명인가? 첫째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30)고 가르쳐 주신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랑의 이중계명(二重誡命)이다.

왜 이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구원이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이다.”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나무와 가지처럼 어떻게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참기름 병에 물을 넣고 아무리 잘 흔들어도 물과 기름은 완전히 섞이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해 배려하고 참고 희생하는 사랑이 없이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그런 사랑을 할 때만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가장 완전한 행복을 체험하는 것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랑의 계명을 사는데 참 행복이 있다.

3. 나 아닌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해보는 체험이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으로 태어난 존엄성은, 하느님의 참 생명, 진정한 행복, 구원에 초대되었다는 데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결코 서로 다fms 두 가지가 아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000 때문에 사랑하는 꼬리표 달린 조건부 사랑이나, 자기 과시적인 사랑에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광신(狂信)에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만이 본능적인 사랑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참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죽기 전에 꼭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나 아닌 누군가를 나 전부를 바쳐 진정으로 사랑해보는 체험이다”. 그래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바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체험할 것이다. 부부의 관계나 부모 자식, 형제자매의 천륜이나, 우리의 이웃들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도록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인연임을 깨닫자.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성호를 그을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사랑으로 하나 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살도록 다짐하며 은총을 구하자.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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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그 사랑, 오래된 미래의 실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마음을 다 바치고 정신을 다 바치고 힘을 다 바치고 더 이상 바칠 무엇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바치는 것이 목숨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 마음도 몽땅 내어주고 온 힘도 쏟아 붓고 급기야 당신이 걸친 옷가지마저 다 내어주고 그렇게 벌거벗은 맨몸이 되어 마지막에 목숨마저 바치셨습니다. 이웃을 향해 다 내어 준 사랑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길 바래봅니다.

나의 마지막 자리가 물리적인 시간이 다하여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바칠 것 다 바치고 더 이상 바칠 무엇이 없어 마침내 목숨을 다하는 시간이 오기를 희망하고 구합니다.

그때가 오면 지니고 있는 것이 아까워 미련을 두고 미적대기보다 지닌 것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이 우리의 미래이길 청하는 하루입니다.

▦ 마산교구 전주홍 요셉 신부 : 2018년 11월 4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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