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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장 큰 계명
조회수 | 1,812
작성일 | 06.11.03
하느님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전파가 시작되면서 순교의 역사는 함께 따라 다녔습니다. 순교자들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순교자들이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은 물론, 노예로부터 시작하여 왕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계층을 초월한 이 같은 하느님 사랑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신앙이 놀라울 뿐더러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 아니 미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신앙은 진정 인생의 소중한 결단이며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과 신분의 차이에도 불과하고 모든 순교자들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공통점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 가르침과 똑같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

그리고 그분들은 이 말씀에 따라 살면서 결코 죽음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이 그리도 기뻤기에 생명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따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거친 바다에 아무도 도와 줄 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풍랑 속에서도 주님만은 다가오시어 내 손을 붙잡아 건져 주신다는 희망의 믿음이 있었기에 진정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2천 년 교회의 역사에서 그 같은 확실한 증표의 모습을 사셨던 순교자들의 삶을 보고 배웠던 우리들이 세상 풍랑에서 하느님 사랑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일 때, 주님께서는 풍랑을 가라앉히셨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꾸짖으실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 40)

또한 베드로 사도에게 하셨던 같은 꾸중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 31)

다시금 혼돈의 신앙과 믿음이 아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님께 향한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는 사랑의 믿음이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 사랑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히틀러에 반대하다 처형당한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쿠바의 독일인 공동체에서 ‘약속의 땅’을 보았지만 들어가지는 못했던 ‘모세’에 관하여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엄청난 실업자들과 전 세계에 걸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중국의 기근, 인도의 억압받는 이들, 그리고 우리의 불행한 조국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자기 혼자 태연하고도 무관심하게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그는 또한 나치 독일에 의해 수없이 희생당하고 있는 유다인들을 위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유다인들을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를 자격이 있다.”

그가 가장 크게 외친 말은 ‘싸구려 은총’이었습니다. 1937년 출판된 ‘제자됨의 의미’란 책에서 그는 ‘싸구려 은총’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싸구려 은총이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 은총이 싸구려 행상인의 물건인양 시장에서 팔리고, 죄의 용서라는 것도 할인된 가격으로 내다 팔고… 가치 없는 은총, 노력 없이 은총만을… 그러한 교회가 있는 사회는 죄를 손쉽게 은폐해 버린다.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진실된 의지도 없다. 은총이면 만사 해결이라 떠들며… 그래서 모든 것은 현상유지 될 수 있게 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데, 그들에 대한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무시한 채 열심한 신앙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착각, 그것이 싸구려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지, 그렇지 않고서 어찌 천국을 꿈꿀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세상의 온갖 안락을 누리다가 죽어서는 천국의 한 자리까지 차지하려는 신앙, 그것이 싸구려 은총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이 같은 싸구려 은총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양다리 걸치기 식의 신앙,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바라는 ‘싸구려 은총’이 말입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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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신·구약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5).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1요한 4,20).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25,40).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함을 또한 경험으로 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요한 4,16)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무수한 은혜를 진심으로 깊이 알기를 구한다” (영신 233항).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하여 심사숙고한다면, 모든 것이 선물임을 쉽게 의식할 수 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까?” (1코린 4,7)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 지를 생각해 보자. 해에서 햇살, 샘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모든 좋은 것이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지를 헤아려 보자. 산, 나무, 눈, 구름, 해, 달, 별, 바람, 흙, 물, 잡초, 낙엽, 모래 등….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성당만이 거룩한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평범한 삶의 자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늘과 땅’ 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산책을 한다.

오늘날에도 사랑의 기적이 가능하다. 가난한 집의 아이처럼(요한 6,9), 먼저 내어 놓는 일이 중요하다.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주님의 손을 거치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다. 보리빵 다섯 개를 선뜻 내어 놓은 아이의 마음이 장정 오천 명의 마음을 움직였다(요한 6,1-15). 감동시켰다. 장정들이 너도 나도 내어놓는 일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감사의 기도로 화답하셨다. 그래서 모두 배불리 먹었다. 장정만 오천 명이니, 그 숫자가 2만여 명은 족히 될법하다.

점심을 굶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이 2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도 굶고 있는 이웃에게 국밥 한 그릇, 국수 한 그릇 대접해야 한다. 가난한 집 아이와 같은 마음만 있으면 된다. 사랑만 있으면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다고만 하지 말자. “있습니다. 저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라고 주님께 말씀드리자. 그리하여 우리 모두 사랑의 기적, 나눔의 도구가 되어 드리자.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 (마태 25,35).

춘천교구 박우성 신부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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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진정한 번제물

일부 학자들은 "번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올라가는 제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적절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번제물을 바칠 때 잡은 동물을 제단에서 태우면 향기로운 냄새, 즉 평온하게 하는 향기가 하늘을 향해 하느님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번제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동물의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린 후에 그 동물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이러한 번제물에 대해, 정확히 말하자면 번제물을 바치는 히브리인들의 태도에 대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제물만 바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치는 순간뿐이지, 그 시간이 지나면 바쳤던 제물에 등 돌리고 다시 이전과 같은 죄에 물든 삶을 살아 갔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최고의 희생 제사를 매일의 삶 속에서 바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그 매일의 미사 속에서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면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미사를 드리는 그 순간 만큼은 고해성사를 통해 깨끗해진 영혼과 함께 경건하고 진지하고 거룩한 자세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번제물을 드렸던 히브리인들처럼 미사가 끝나고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그 마음은 금새 사라지고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며 기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자신의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미사를 드리고 성당 문을 나선 후에도 미사 중에 가졌던 그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대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나라에서 진정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 춘천교구 김상혁 신부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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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영특한 사람, 하나는 살짝 빼 먹네

예전에 어떤 신자와 같이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시골길이라 차도 많지 않아 기분 좋게 달리던 중에 신호등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 불이 붉은 색으로 막 바뀌었는데 운전을 하던 그 신자는 그냥 휙 하고 지나가는 것 이었습니다. 아마 잠시라도 정차하기가 귀찮았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 신자에게 “빨간 불인데 지나가면 안되지않느냐?”고 말을 하니. 그 신자가 하는 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신부님 빨간 불은 빨리 지나가라는 겁니다.” 운전을 하는 그 신자의 재치 있는 말에 허허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참 자기 편하고 유익한 대로 해석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의 표현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가 나의 잘못이나 약점을 지적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화를 내기까지 하며 이런 말로 되받아 치기도 합니다. “그래 너 잘났다. 너나 잘하세요.”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남의 단점이나 약점은 잘 보면서 자기의 단점이나 약점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 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 7,3; 루카 7,41)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주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 율법학자는 참으로 영특하고 약았습니다. 자기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것은(목숨을 다하여) 살짝 빼먹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학자를 누가 비난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아니 나의 모습이니까 말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자신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자기를 위해서는 뭐든지 합리화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는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인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즉시 나의 영특함과 합리화를 꼭 집어 질책하지 않으시고 모른 척 넘어가시며 그 정도만 해도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고 말씀하시 면서 구원의 손길을 펼쳐 주시는 대자 대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우리 주님께 항상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춘천교구 정귀철 베네딕토 신부 : 2018년 11월 4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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