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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의 계명
조회수 | 1,546
작성일 | 06.11.04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 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 시, 음악 등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사랑을 체험하고 말 하고 갖은 학문과 예술을 통하여 표현한다고 할지라도 부 족한 표현이요 부분적 체험이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 니다. 그 이유는 사랑은 인간의 특전이요 최고의 가치일 뿐 아니라 사랑은 바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신 성경 말씀대로 사랑은 하느님의 본질인 동시에 하느님 모습을 닮은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존엄하고 고귀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고 하십니다.

사랑은 어떤 조건도, 이유도, 변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를 아낌없이 줌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아픔이며 희생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안에 새겨진 인간의 참모습을 깨닫고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동시에 사랑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계명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길이며 생명의 길이요 마침내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알베드 카뮈는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느냐를 놓고 심판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함은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봉사하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심스럽게 신앙인은 죄를 덜 짓기 위함으로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지만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몸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그 넉넉한 마음이 우리네가 살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 같은 삶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어질 때 그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사랑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자신들의 삶을 더 값진 알곡으로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이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임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하느님과 함께 이미 이승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내 가족과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 모두 묵상해 봅시다.

대구대교구 이상락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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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 찬미예수님!
오 늘 복 음에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오 늘 복 음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웃 안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바로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용서, 배려, 친절, 관용, 자비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에 속하는 자기 사랑은 단순히 이기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자기 사랑은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참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됩니다. 이는 바로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며 닮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이로써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범이신 주 예수님 사랑의 절정은 성체성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수난을 원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모든 이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누가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죄인들을 친구로 삼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2-13)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대구대교구 서동완 신부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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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랑의 방법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가는 계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정신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방법이 바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명 한 명을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그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나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사실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먼저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잘난 부분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잘하든 못하든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장점도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부족한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를 사랑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사랑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존중하듯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를 인정하듯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목하고 있는 병원에서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고, 자기 가족,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가족들과 이웃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습니까?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나중에 할 수 있겠지.’ ‘표현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바로 지금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우리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하고 빛나게 할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정진섭 도미니코 신부 : 2018년 11월 4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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