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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한 카리스마
조회수 | 2,375
작성일 | 06.11.10
우리는 삶 안에서 많은 직책과 그에 맞는 책임을 받게 됩니다. 가정 안에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름대로 직책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선행이나 봉사는 직책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행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그 공을 하느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남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로서 예수님의 말씀-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마태 6,3),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서(마태 6,6)-에 따라 선행을 남 모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로부터는 존경을 받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는 신랄한 비판을 받습니다. 그들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를 즐기고, 과부의 가산을 등쳐먹고, 보이려고 기도(마르12,38-40)한 것은 하느님보다 자신을 자랑하는 지도자였고, 겸손의 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적은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 특히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교회의 봉사자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경고 메시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내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카리스마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인데, 칭찬받고,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공로(功勞)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쓴 말씀을 듣고 자신을 비워서 겸손한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의 헌금-렙톤 두 닢-을 보시고 ‘저들 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렙톤은 당시 화폐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으로, 그 가치는 그 당시 하루 임금인 한 데나리온의 1/128로 여겨집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눈에는 돈의 절대적인 액수보다는 개개인의 상대적인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모습은 제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를 만난 사렙타 마을의 과부를 연상시킵니다. 밀가루 한 줌과 기름 몇 방울로 마지막 끼니를 때우고나서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한 그녀가 그 음식마저 엘리야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때 돌아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생명까지 우리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위해 바치셨고, 그래서 구원의 완성인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느님의 영광과 구원사업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컴퓨터가 종종 다운되고 오류가 생기듯이, 삶과 신앙에 열을 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겸손 대신 교만과 신앙의 오류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점검을 하고, 새롭게 마음과 삶을 정비하면서 잘된 것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잘못된 것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겸손한 삶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의정부교구 김학수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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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은 아무나 하나

대중가요 제목 중에 비슷한 것이 있다. 노래의 반복되는 가사에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하는 노랫말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고, 무덤덤해질 만큼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노랫말처럼 어느 누구도 쉽게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봉헌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 복음에서는 렙톤 두 닢을 봉헌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부자들이 큰돈을 봉헌함에 넣은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돈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예수님의 설명처럼 풍족한데서 얼마를 떼어 봉헌한 것이 아니라, 궁핍한 가운데 생활비를 모두 다 봉헌하였다.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실 것인지 걱정이 되련만, 그녀는 자신의 일상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모두 맡기는 온전한 봉헌의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릴 수 있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우리보다 더 굳건한 믿음을 가졌던 것일까? 그녀는 우리와 똑같이 가난하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홀로 남겨진 과부일 뿐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가난하고 힘겹게 살면서도 내어 드리는 자유와 봉헌의 기쁨을 맛본 것은 아닐까?

마태오 복음 6장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 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께 모두 바치고 자신의 삶을 맡겨드리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강렬하게 체험했기에 온전한 봉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녀는 내 것을 떼어놓고 남는 것 중에서 일부를 하느님께 드린 것이 아니다. 모두 드린 것이다. 모두 드려도 들풀보다 더 잘 입혀주신다는 것을 생활에서 체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아무나 하지 못하듯, 봉헌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드린다고 할 때, 엄밀하게 따져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세상 모두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나의 생명마저 지으셨으니 모두가 하느님의 것 아닌가? 그렇다면 봉헌이 아니라 돌려드리는 것은 아닐까? 오늘 복음의 과부는 자신의 것을 모두 드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돌려드리는 마음으로 봉헌을 한 것은 아닐까?

사랑을 해 본 사람은 그 기쁨과 축복과 은총을 알기에 사랑 할 수밖에 없다. 온전히 봉헌을 해 본 사람도 마찬가지로 축복과 은총과 의탁을 알기에 모두를 바칠 수 있는 것이다. 봉헌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란 노랫말이 흥얼거려진다.


의정부교구 박명기 신부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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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헌금함 앞의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에게 한바탕 독설을 퍼부으십니다. 대접받기만 좋아하고, 윗자리만 찾는 놈들, 과부 등쳐먹으면서 가증스럽게 기도하는 못된 놈들. 그리고는 헌금함 맞은 편에 쭈그려 앉아 헌금하는 사람들을 관찰하십니다. 얼마를 봉헌하고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찬찬히 살피십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내며 우쭐거립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마음도 담겨 있지 않은 봉헌금을 내고 돌아섭니다. 어떤 과부가 삶이 묻어 있는 봉헌금을 수줍게 함에 넣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보입니다. 삶이 담겨 있는 헌금과 삶과 상관없이 내는 돈의 무게가 가늠됩니다. 그동안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예수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십니다. 동전 두 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고단한 삶 중에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주일의 삶을 살고,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에 왔습니다. 오늘도 미사 중에 봉헌을 하겠지요. 예수님은 봉헌함 맞은 편에 앉아 우리를 관찰하십니다. 무엇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계십니다. ‘지난 한 주간, 또 정신없이 지낸 한 주였습니다. 누구 때문에 무슨 일 때문에 힘든 한 주였고, 또한 기분 좋은 한 주였습니다. 기쁨과 행복, 속상함과 외로움의 한 주를 살아 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주를 살게 해 주심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당신께 봉헌합니다.’ 이런 마음이 담긴 봉헌을 기대하시며 예수님께서는 헌금함 앞에 앉아 계십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되지만, 그 물질적인 것 안에는 내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뿐 아니라 삶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지난 일주일 중에서 어떤 삶을 주님께 봉헌하시렵니까? 어떤 마음과 어떤 행위를 그분께 드리겠습니까? 봉헌금을 내지 않는 저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무엇을 봉헌하니? 봉헌을 하기는 하니?’ 율법학자들에게 하신 질책이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받기만 좋아하는 놈, 나와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그런 척하며 사는 놈, 그래서 내놓을 것이 없는 놈’ 다음 주에는 좀 더 진짜인 삶, 진실한 마음을 봉헌하기 위해 한 주 잘 살아야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합니다. <2015년 11월 8일>

▥ 의정부교구 박병주 세례자 요한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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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율법 학자들을 조심 하여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사랑하는 나의 사제에게

사랑하는 나의 사제여!
그대가 사제가 되기 전에 내가 그대를 뽑았음을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기억하고 감사하여라. 내 뒤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를 닮지 않는다면 그대는 아무 것도 아님을 언제나 마음 깊이 새겨라. 그대의 사제복이 아니라 그대에게 부여된 호칭이 아니라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이 나의 사제임을 드러내게 하여라. 섬기러 사람이 된 나를 닮아 하느님 손길 닿은 온 세상 모든 선한 존재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그대 앞에선 벗들에게 한 걸음 먼저 겸손하게 다가가 밝은 웃음과 따뜻한 손길로 벗들을 정성껏 품어주어라.

그대가 있어야 할 자리는 다른 이들 들어 높여야 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이니 기꺼이 그곳에 자리하여라. 하느님의 돌봄 없이 살 수 없는 가난하고 약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그들의 벗인 나를 대신하여 정답고 든든한 벗이 되어주어라. 다른 이에게 보이려고 거룩한 체 하지 말고 진정 나와 함께 함으로써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그대를 위한 몫을 감추고 나머지 무엇으로 생색내지 말고 그대 삶의 모든 것을 나와 벗들을 위해 봉헌하여라. 언제나 그대 안에 내가 있듯 언제나 내 안에 그대 머물러 나와 갈림 없는 하나 이루어 / 살아도 죽어도 내 사제이거라.
사랑하는 나의 사제여!

▥ 2015년 11월 8일 / 의정부교구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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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과부의 올인

찬미예수님! 연중 제32주일이자 평신도 주일인 오늘 제1독서와 복음 말씀에서는, ‘두 명의 과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사렙타 지역에 살던 한 과부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과 병에 들어 있던 약간의 기름을 내어,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야 예언자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리고 회당에 있던 과부 한 사람은 당시 자신이 지니고 있던 유일한 재산인 렙톤 두 닢, 오늘날로 환산하면 천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을 헌금함에 넣습니다. 우리 눈에는 참으로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가난한 두 과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남성 위주의 사회였습니다. 따라서남편 없이 홀로 살아가는 과부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무시와 차별을 받으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과부들은 절망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타난 두 과부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며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해야 할 처지였지만,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놓은 것입니다. 이처럼, 비록 몸은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축복과 자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두 과부에 관한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도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능력이 뛰어나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부족함을 느끼며,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집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은총을 베풀어주셨지만, 우리는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 대신 오히려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알면서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많은 재물을 바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고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어느덧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를 걱정하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나눔의 실천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아멘.

▦ 의정부교구 곽준영 유스티노 신부 : 2018년 11월 11일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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