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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조회수 | 2,666
작성일 | 06.11.11
지난해 말 저희 수도원을 찾아오셨던 할머님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다들 싱글벙글한 얼굴이었습니다. 대표격되시는 할머님께서 뭔가를 슬쩍 제 손에 쥐어주시면서 어렵사리 이렇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신분님, 요거이 너무 적어서 부끄러운디요, 우리 노인네들이 여그, 불쌍한 아그들 생각하면서 매월 쪼깨씩 십시일반으로 모은건디, 요긴하게 써주시요."

참으로 고맙고도 송구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정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다들 넉넉한 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손자손녀들 용돈도 주셔야하고, 노인대학이나 계모임도 다니셔야 하고, 돈 쓰실 곳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일년 내내 아끼고 아껴 건네시는 그 '거금'을 도저히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할머님들, 그 예쁜 마음 제가 잘 접수했습니다. 받은 걸로 할 테니, 이 돈은 도로 집어 넣으시고 차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할머님들은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셨습니다. 천사 같은 할머님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절대로 헛된 곳에 돈 쓰지 말아야겠구나. 이런 훌륭한 분들 마음을 늘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구나.'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셨습니다. 이윽고 부자들이 헌금을 하고자 도착합니다. 큰 액수를 헌금하기에 당당합니다. 헌금 담당 사제의 눈앞에 수표를 흔들어 보이면서 '큰 것 한 장이요' 외쳤습니다. 자랑스럽게 헌금함에 돈을 넣었습니다.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그 시대에는 과부로 산다는 것은 최하위 계층의 삶을 산다고 보면 확실합니다. 과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래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살길이 막막했던 과부였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헌금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신앙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평소에 헌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하느님 앞에 무척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랜만에 작은 돈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오고갔습니다. '저 어린 것들, 그동안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는데, 이 돈을 아이들에게 용돈 쓰라고 줄까? 아니지, 오랜만에 고기라도 조금 사서 영양보충을 좀 할까?'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는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작은 돈, 그러나 과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큰 돈(동전 두 닢)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정성, 그의 삶 전체가 깃든 소중한 돈을 아주 정성껏,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러한 과부의 전적인 봉헌을 예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시며 극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가끔씩 봉헌행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자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마치 적선이라도 하듯이 봉헌금을 툭 던져놓고 돌아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주 경건한 얼굴로 정성껏 봉헌금을 바치는 분도 있습니다.

봉헌금 액수 역시 다양합니다. 봉헌금 정리하는 분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고액환 수표를 봉헌하시는 분 있는가 하면, 천주교가 1000주교인줄 아시는지, 아니면 천주교가 천원권의 고향인줄 아시는지 죽어도 천원짜리만 봉헌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린양께서 배춧잎 좋아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꼬박꼬박 만원짜리를 봉헌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떼구르르' 소리가 다 들리는 동전을 봉헌하는 분도 계십니다.

봉헌금 액수가 커야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봉헌금 액수가 살림 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집에 당장 먹을 양식이 없음에도 빌려서라도 봉헌금을 내려한다면 너무도 어색한 일일 것입니다.

봉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정성입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실 중에서 가장 값진 것, 내 인생, 내 젊음, 내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친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성의한 봉헌, 마지못한 봉헌, 습관적 봉헌, 의무감에 의한 봉헌이 아니라 자발적 봉헌, 잘 준비된 봉헌, 정성스런 봉헌, 사랑이 담긴 봉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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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 <또는 12,41-44>

<거짓 포장을 벗겨내며>

오늘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강하게 질타하시는 율법학자들의 처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찌 그리 제 모습과 닮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저만을 꼭 집어 야단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저희 사제들이 자주 입고 다니는 것이 긴 겉옷이지요. 저는 가끔 제가 과연 이런 과분한 제의(祭衣)를 입고 다니기에 합당한 사람인가 반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의를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입었던가? 돌아보니 그저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걸친 적이 많았습니다. 때로 폼도 잡았습니다.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지만, 점점 인사받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당연히 누군가가 먼저 인사하기를 기대합니다. 때로 누군가가 인사를 소홀히 하면 엄청 속상합니다. 어디 가나 주인공이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한번 찬밥신세가 된다든지, 냉대를 받게 되면 크게 분노합니다.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어디 가나 아래쪽보다는 위쪽을 힐끔거립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이, 제자의 길이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기를 씁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이 부분은 너무나 가슴을 ‘팍’ 찌르는 말씀이어서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그분들의 정성으로 수도회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전혀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하느님께 잘 보이려고 기를 써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이를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많이 포장했는지 모릅니다. 내 본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나’로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가증스럽게 여기실 것인지 두렵습니다.

외형보다는 내면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느님, 겉치레보다는 실속 있는 것을 즐겨하시는 하느님, 형식보다 진실한 마음을 더 높이 평가하시는 하느님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 고액권 수표를 자랑스럽게 높이 들고 의기양양하게 봉헌하는 부자들보다, 작지만 온 정성과 생활 전체가 담긴 ‘작은 봉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해야하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무엇도 속일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쓸데없이 나를 감싸고 있는 거짓 포장들을 벗겨내야 합니다. 가식적인 나를 벗어버리고 그저 나약하고 가련한 한 인간으로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야 말로 그분의 사랑을 듬뿍 받기 위한 노력이고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구원받기 위한 노력입니다.

작은 것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대단한 그 무엇, 크게 한건이 아니라 작은 사랑의 실천, 작은 봉헌, 일상 안에서의 작은 나눔, 그러나 정성과 마음이 담긴 사랑의 실천을 이행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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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it’s 2015” - “2015년 이잖아요!”-

오늘 강론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제 감동적인, 신선한 충격의 기쁜 소식을 듣고 지체없이 강론 제목을 택했습니다. ‘한국판 트뤼도는 어디에 있나?’라는 제하의 기사(프레시안)에 이어 경향신문(2015.11.7.27면) 사설 첫째 부문은 ‘캐나다의 성평등, 다문화, 소수자 내각이 전하는 메시지’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길다 싶지만 너무 반가워 사설 전반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 지구반대편 캐나다에서 들려온 소식이 신선하다. 지난 4일 취임한 저스틴 트뤼도(43세) 총리가 캐나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15명씩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난민 출신과 이민자, 원주민과 장애인을 장관으로 발탁했다. 연령을 30-60대로 다양하게 구성했고, 10개주와 3개 준주 출신 인사를 모두 망라하여 지역 안배를 이뤘다. 트뤼도 총리는 ’다문화 사회 캐나다를 닮은 내각’이라 표현했다. 개방과 관용, 다양성에 기초한’드림 내각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트뤼도 내각의 참신함을 상징하는 인사는 민주개혁부를 맡게된 여성 장관 매리엄 몬세프다. 30세로 최연소인 그는 아프카니스탄 난민 출신이다. 20년전 어머니와 함께 파키스탄, 요르단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난민 소녀가 장관에 오른 것이다. 하지트 싱 사잔 국방부 장관은 터번을 쓰고 긴 수염을 기른 시크교도이다. 5세때 인도에서 이민 온 그를 비롯해 시크교도 여러 명이 내각에 포함됐다.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된 여성 조디 윌슨-레이보울도는 캐나다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장관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켄트헤르 국가보훈부 장관등 2명은 장애인이다. 트뤼도 총리는 성평등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묻자 “Because it’s 2015!(2015년 이잖아요!)”답했다고 한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놀라운, 꿈같은 기적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축복받은 캐나다 국민입니다. 온세계에 하느님의 놀라운 꿈을, 희망을, 비전을 선사한 캐나다 국민입니다. 제 강론에 사설을 길게 인용하기는 처음입니다. 전세계에 전하는 하느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의 꿈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마침내 예언자들 통해 선포된 만인 평등 사회가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참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 지구촌의 현실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미래와 과거가, 빛과 어둠이, 희망과 절망이,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캐나다 국민의 쾌거입니다. 아마 전 지구로 희망의 빛이 되어 서서히 퍼져나갈 것이며, 누룩이 되어 지구촌을 점차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 희소식이지만 기쁜 마음에 저절로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과 시편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라, 알렐루야!”

“주님은 소경의 눈을 열어 주시며, 주님은 억눌린 이 일으켜 주시며, 주님은 의로운 이를 사랑하시며, 주님은 나그네를 지켜주신다.”(시편146,8-9ㄱ)

주님은 의로운 트뤼도 총리를 사랑하시며, 그를 통해 억눌린 이를 일으켜 주시고 나그네를 지켜 주시어 보잘것 없는 이들을 장관들로 기용하셨습니다. 장애인복지 장관은 시각 장애인이고, 국방부 장관은 지체 장애인이고, 몇몇 장관은 난민에 원주민 출신들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선한 꿈같은 복음인지요! 어제 저녁성무일도 성모 후렴에 이은 아침 성무일도 즈가리야 후렴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그 과부는 구차한 중에도 있는 것을 다 바쳤으니, 다른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이로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가난한 과부입니다. “Because it’s 2015!(2015년 이잖아요!)” 강론 제목처럼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가난하지만 역설적으로 내적 부요의 가난한 과부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을 ‘가난한 대통령(poor president)’이라 불렀다지만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산상수훈 중 진복팔단의 덕목중 둘이 그대로 가난한 과부에게 해당되니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아, 이런 이들이 진정 부자며 행복한 복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조롱을 받는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가난한 과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뚜렷한 두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도대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인간의 전형입니다. 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외적인간, 육적인간, 속이 텅 빈 허영과교만한 인간입니다. 자기안에 갇힌 인색하고 편협한 부자유의 인간입니다. 남을 의식한, 자기 중심의 참 공허한 착각과 환상속의 삶입니다. 진실과 겸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업보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어야 할 율법학자들의 이런 모습이 참 불가사의입니다.

부자인 듯 하나 내적 가난의 사람이요, 많은 신학적 지식을 지녔어도 삶과는 유리된 쓸모없는 지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 가난한 과부나 1독서의 엘리야 예언자와 사렙타의 과부는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하느님 중심의 참 너그럽고 넉넉하고 자유로운 영혼, 가난한 과부입니다. 내적인간이자 영적인간이요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 가난한 과부입니다. 참으로 주님만으로 행복한 부자富者요 복자福者요 자유인自由人, 가난한 과부입니다. “2015년 이잖아요!” 캐나다 트뤼도 총리의 말은 바로 이런 가난한 과부로 대변되는 참 좋은 인간상을 회복하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우리을 구원하시려고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십니다. 주님은 당신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 복음의 가난한 과부처럼 하느님 중심의 내적인간, 넉넉하고 너그럽고 자유로운 인간, 진실하고 겸손한 인간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시편23,1-2). 아멘.

▥ 2015년 11월 8일
▥ 분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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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지혜로움

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내면의 의미를 파악하고 올바로 사는 길을 말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할 말 안 할 말을 선택하여 말하고 힘없는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 무명인도 사람답게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 주님은 돈을 많이 봉헌하는 사람보다 적은 봉헌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시며 부자나 이름 있는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면서 겸손한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지혜로운 판단이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지혜는 예리한 내면의 모습을 관찰하고 본 모습을 용기 있게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 사고에서 나오고 많은 경험에서 자연적으로 분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신의 얄팍한 지식에서, 바람처럼 지나가는 소리나 번개처럼 번쩍이는 빛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고자 합니다. 저는 역사를 쓰는 사람이 경험과 체험을 통해 아니라 전해들은 말을 듣고 쓴 사람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살아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단편적 지식으로는 올바른 역사관이나 삶의 지혜가 정리되지 못합니다.

6,25 사변을 몸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전쟁의 사항을 역사적 의미를 바로 말하기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서울 가본 사람 보다 서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말이 더 많이 하면 참 보다 거짓이 많습니다. 왜관 수도원의 역사를 살아보지 않고 어제 들어온 사람이 기록만 보고 말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저는 1952년 시작한 수도원의 역사 속에 1954년부터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원의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보고 체험 하여 조금 더 수도원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철학자 칸트가 “ 과학은 정리된 지식이고 지혜는 정리된 인생이다” 함 같이 정리된 지식이나 정리된 인생을 지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주님의 말씀이 내 입에 달고 꿀보다도 더 하게 입맛이 들어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 2015년 11월 8일 / 성 베네딕도회 : 이석진(그레고리오) 신부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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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나누는 나눔의 참된 역설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오히려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나누는 헌신입니다.

아낌없이 희망하는 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삶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이란 아픔이 없는 희망이 아닙니다. 아픔 가운데서도 봉헌되는 희망이 참된 희망입니다. 봉헌은 삶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과부의 믿음이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의 고통스런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매순간 모든 것을 바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믿음의 삶을 살았던 이는 율법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하는 은총의 주일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믿음의 힘이 삶을 감당하게 하는 거룩한 봉헌이기 때문입니다.

▥ 2015년 11월 8일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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