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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조회수 | 2,634
작성일 | 06.11.23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연중 33주일과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1주일 사이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종말, 곧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또한 요한 묵시록에 계시된 대로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의 왕권을 전례 안에서 고백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세모의 끝자락에서 세상은 저마나 분주하고 화려하지만 교회는 조용히 한 해를 마감하고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 한 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있습니다.

시청 앞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길, 청계천을 따라 걷는 길 곁으로 들어선 건물들 앞에 서있는 키 작은 나무와 가로수 거기에 촘촘하게 켜져 있는 꼬마전구들이 한 해의 끝자락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반짝이며 색색으로 켜져 있는 크고 작은 꼬마전구들. 날이 추울수록 또 아무 한 일도 없이 한 해를 보냈다는 후회와 자책이 클수록 그 작은 빛들은 남루한 우리를 조용히 그리고 다정하게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오늘 독서의 말씀은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4)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인 예수 그리스도 …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묵시 1,4-5.7) 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초라하게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33)

예수님의 일생은 독서의 말씀이 암시하는 ‘영광과 권세의 임금’ 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베틀레헴에서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태어나셨고 극악무도한 사형수를 처형하는 형구인 십자가 위에서 인생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넘기신 그분께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요한 19,19)라는 조소 섞인 명칭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가시관을 쓰시고 피와 물을 몽땅 쏟으시는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의 계산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18.24-25)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자매님이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시(詩)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예수는 가난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에게는 자기 소유의 집도, 보험증서도, 사회보장제도 카드로, 은퇴 계획도 없었다. … 그러나 예수는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신뢰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죽도록 봉사했다. 예수에게는 하느님이 모든 것,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메시아, 임금 중에 임금이 전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런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 참 임금으로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최고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금전 만능주의 맘몬(Mammon)을 섬기면서 탐욕과 쾌락, 권력과 문란한 생활을 탐닉하여 명예와 긍지, 봉사와 희생 그리고 사랑의 실천 등이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해 버린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연약한 예수님께서 임금, 메시아, 주님이시라는 사실은 믿기 어려우면서도 놀랍기만 한, 그야말로 역설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메시아 임금으로 모시는 기준을 이미 말씀해 주셨고 당신 친히 몸소 실천에 옮기시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너무 뜻밖에 일로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시는”(에제 34,16) 참 목자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입니다(마태 25,31-46). 아주 거창하면서도 어려운 것을 요구하실 줄 알았던 성서학자들은 물론 신학자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쉬운 것을 그러나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임금, 최후 심판관, 절대 진리이신 그분을 뵙기 위해서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겸손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곁의 두 강도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하고 간청합니다. 마지막 숨을 넘기는 순간 지난 일생을 뉘우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했던 강도가 예수님의 왕권을 최초로 고백했다는 사실도 역설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최초의 왕권을 가시적으로 행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추운 겨울날 색색으로 빛나는 꼬마전구들의 작은 불빛은 연약하신 평화의 임금 예수님처럼 ‘평화와 위로, 화해와 용서, 신뢰와 사랑 …’으로 우리를 감싸주고 또한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

서울대교구 이기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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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제대 앞에 꽃꽂이가 참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도 이 꽃꽂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아시겠지요? 왕관을 멋지게 형상화해 놓았습니다. 이 모습만 보아도 바로 오늘이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는 것을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전례력상 올해의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34주일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선포하는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가르침처럼 과연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실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우리의 왕이시고 영원한 임금이십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왕으로 소개하는 말씀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루카 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하면서 바로 그 분이 왕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1,32-33)

또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메시아를 찾아와서는 헤로데 왕에게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2)하고 묻습니다. 깜짝 놀란 헤로데는 자기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태어났다는 말에 2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는 참상을 저지르지요.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2,16)

요한 복음에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이 예수님을 강제로라도 왕으로 모시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6,15)

오늘 복음에서도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18,33)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18,36)고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은 아니셨지만 분명 우리의 왕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한 옷을 입거나 번쩍이는 왕관을 쓰신 적이 없으십니다. 수난 후 예수님의 통옷을 사람들이 나누어 가졌듯이 옷이라곤 그 한 벌이 전부였고, 세상의 임금들이 왕관을 쓰며 권위를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조롱 섞인 가시관을 쓰신 분이셨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화려한 궁궐과 끝도 없는 영토를 지니고 호사를 누렸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8,20)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임금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축복과 환성 속에서 태어났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서 동물이나 태어나고 잠자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왕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고관대작들이 온갖 감언이설로 갖은 찬사와 산해진미를 바친 반면, 예수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천대 받는 죄인들만이 넘실거렸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권위로 백성을 억누르고 살았다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10,43)는 말씀처럼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셨고 최후만찬 석상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역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세상 모든 왕들의 명성과 업적은 다 사라졌지만 예수님은 우리 안에 길이 살아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은 성경으로 기록되어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생명의 책으로 남아 있으며,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을 넘어서 우리의 구원자이시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왕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가르치기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임금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왕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넓은 땅과 재산과 높은 권세를 차지하려 애쓰고 그것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밥을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쌀을 한 줌 떠놓고 밥을 하거나, 풍요로운 외식 자리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천 원, 이천 원을 따로 떼어놓는 삶을 삽니다. 사랑과 용서의 왕을 모시며 사는 신자들은 주변에 용서할 수 없고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사람이 있어도 성체를 모시면서 용서할 것을 결심하며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러한 생활이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신자들의 삶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참된 길임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우쳐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욕망과 이기적인 마음은 세상의 임금들처럼 권세를 부리며 살아가도록 유혹하는데 어떻게 남을 섬기면서, 더더군다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길이 기억되는 분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입니다. 어린 시절 링컨은 집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린 링컨에게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시면서 유일하게 링컨에게 남겨준 유물이 성경일 정도로 그 가정의 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링컨의 둘째 어머니 역시 성경을 해설하고 가르치는데 소홀함이 없었고, 성경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링컨은 책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책 속에서 지혜를 찾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은총을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7,1)는 말씀을 택했고 일생을 하느님 안에서 사신 분입니다. 수도 없는 시련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노예 해방 제도를 만들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역시 그를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만든 것은 성경대로 산 삶입니다.

링컨에게는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스탠턴은 당시 가장 유명한 변호사였는데 한 번은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맡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법정에 앉아 있던 스탠턴은 링컨을 보자마자 자리에게 벌떡 일어나 󰡒저 따위 시골뜨기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하라는 겁니까?󰡓하며 나가 버렸습니다. 이렇듯 스탠턴이 링컨을 얕잡아 보고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통령이 된 링컨은 내각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바로 스탠턴을 임명했습니다. 참모들은 이런 링컨의 결정에 놀랐습니다. 왜냐 하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스탠턴은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참모들이 재고를 건의하자 링컨은 󰡒나를 수백 번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국방부 장관을 하기에 충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스탠턴은 당신의 원수가 아닙니까? 원수를 없애 버려야지요!󰡓

참모들의 말에 링컨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수는 마음속에서 없애 버려야지요! 그것은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 스탠턴은 링컨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과연 링컨은 자기를 미워했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한 진정한 승리자였습니다. 링컨 박물관에는 링컨의 삶을 이끌었던 어머니의 유물인 성경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신자들은 링컨이 그랬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일생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리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연중 제34주일은 성경 주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고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그분의 삶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길은 성경 말씀을 읽고, 쓰고, 마음에 새길 때에 가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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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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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야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2014년 성인품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는 가톨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교황이라는 찬사가 늘 따라붙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선종한 후 불교와 이슬람사원뿐 아니라 유다인 회당에서도 그를 추도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지구촌이 그분의 죽음을 아쉬워했던 이유는 항상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서 평화와 공존, 용서와 화해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말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중동 성지를 방문하셨는데, 구부정한 어깨에 보기에도 안쓰러운 걸음으로 분쟁의 땅 곳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교황님은 3개의 그릇에 담긴 흙에 입을 맞추셨습니다. 이 그릇들은 각각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유다교 신자의 자녀 3명이 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3개의 종교가 화합하여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희망을 담아 각각의 흙에 입을 맞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는 유다인 랍비가 하는 양식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모두가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삶은 항상 지도자가 어떤 자세와 행동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교회는 세상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십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국민들을 통치하는 다른 왕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보통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립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세상에 우뚝 서신 이유는 사랑의 완전한 실천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모든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용서와 평화 그리고 겸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왕직을 받았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왕의 모범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한 마디로 봉사직입니다. 예수님자신도 그러한 삶을 사셨고 제자들에게 하신 가르침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왕으로 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사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면서 마침내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주는 가장 겸손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베풀고 용서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가장 높은 곳에서 영광을 받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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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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