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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그리스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조회수 | 2,040
작성일 | 06.11.24
형제 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축복 속에서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은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이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왕권, 예수님이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고 바로 우리의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속되었고 세상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왕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면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야훼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주셨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셨으며 정의로 다스리시고 당신 백성을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 외에 다른 외세의 힘이나 이방신을 섬기면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만을 믿고 따를 때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새로운 왕권이 표현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친구의 모습으로, 목자의 모습으로, 봉사자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주시는 분, 무한한 자비로 죄인들을 용서해주시는 분,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광야에 놓아둔 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섬김을 통해 완성됩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붙여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과 명예와 재물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14). 사랑의 봉사와 섬김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처럼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이며, 누룩처럼 세상을 부풀게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세상을 주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로 가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삶을 감사하는 마음, 봉사하는 삶, 나누는 삶으로 가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가꾸기 위해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복지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하고, 지난날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오늘을 불행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에 감사할 때 내일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이웃에게 봉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우리의 작은 정성과 노력을 통한 봉사활동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고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싹트게 할 것입니다. 사랑 가득한 봉사는 나에게 보람과 기쁨이 될 것이요 이웃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고 하느님께 되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오 6,19-20).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이웃과 나눌 때 우리는 나눔과 섬김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삶을 꾸려갑시다. 봉사하는 만큼, 나눔을 실천하는 만큼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왕 우리의 주님을 모시고 참된 행복의 나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가는 우리 삶이 되도록 합시다.
                                
안동교구 최숭근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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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섬김과 용서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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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께 바쳐진 왕이라는 이 칭호는 그분의 전 생애 중 시작과 마지막에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유다인의 왕을 찾는 박사들을 외양간으로 인도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 달아 둔 조소의 명패에 이 칭호가 나타납니다. 외양간에서 십자가로, 왕에게 어울리지 않는 참 기이한 경력입니다.

러시아에서 내려오는 성탄절 전설 중에 <넷째 왕의 전설>이 있습니다. 이 전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멜키올(Melchior), 발타살(Balthassar), 가스팔(Caspar) 외에 다른 한 왕의 삶을 보여 주면서 외양간에서 십자가까지의 길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황금이나 유황 또는 몰약이 아닌 귀한 보석 3가지 선물을 가지고 넷째 왕은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 왕은 길가의 쓰레기 더미에서 다섯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서 다 죽어가는 한 어린 아기를 발견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를 안고 마을을 찾아 데려가서는 자기가 가진 3가지 보석 중 하나를 주고는 아이를 건강하게 잘 보살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또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왕은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가 남편의 주검 뒤를 따라가는 장례 행렬을 만났습니다. 죽은 남편은 많은 빚을 떠안은 채 죽었기에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가야만 될 처지였습니다. 이것을 본 왕은 또 하나의 보석으로 그 빚을 다 갚아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왕에게는 하나의 보석만 남았습니다. 왕은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마을에 들렸는데 그 마을은 군인들에게 점령되어서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갈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왕은 이들을 살리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귀한 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말 한 필뿐이었습니다. 왕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계속 가다가 그 왕은 어떤 노예를 만났습니다. 그 노예는 자기 주인의 뜻에 불순종하다 부인과 아이들을 버려둔 채 큰 배의 노 젓는 노예로 팔려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본 왕은 자기 말을 넘겨주고 그자를 대신해서 노 젖는 노예로 배에 올랐습니다. 세월은 한참 흘렀습니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왕의 머리는 벌써 반백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외국 땅에서 사형집행을 지켜보기 위해 도시로 몰려드는 군중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형 날 이었습니다. 못 박히신 분의 눈길이 자기를 내려다 보았을 때 왕은 불현듯 거의 전 생애 동안 순례했던 목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께 자기의 빈손을 뻗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린 왕의 뻗쳐진 손에 세 방울의 피가 떨어졌습니다. 세 방울의 피는 자기가 가졌던 세 가지의 보석보다도 더 빛났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는 성경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일깨워 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왕은 역사 속의 일반적인 왕과도 전혀 다른 왕이시며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왕의 모습과는 하나도 닮지 않은 그런 왕이십니다. 이 왕이 이룩하려는 왕국 또한 결코 이 세상이 생각하는 그런 왕국이 아닙니다. 세상의 왕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힘으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아픈 사람을 고쳐 주고, 소외 받고 보잘 것 없고 죄인 취급받는 이들을 벗으로 대접하는 독특한 방법 즉 사랑의 방법, 섬김의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면서 축일을 지내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왕이 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섬김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는 삶을 사는 왕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실천하고, 남을 섬기는 그리스도와 같은 왕이 되라는 겁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면서까지 자신을 죽인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셨던 그리스도와 같은 용서의 왕이 되라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분과 같이 사랑과 섬김과 용서의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러시아의 <넷째 왕의 전설>에 나오는 그 왕처럼 참 왕이신 그리스도의 손에서 떨어지는 보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안동교구 김시영 베드로 신부 : 2018년 11월 25일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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