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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님! 왕입니다요!
조회수 | 2,030
작성일 | 06.11.24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짧게 말하렴?
아이가 대답합니다. ‘주님 왕입니다요!’ .......
오늘 하루 맑고 깨끗한 어린아이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주님! 왕입니다요’ 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숨결이 느껴지도록 말입니다.  

이 시대에 왕을 호칭하는 표현들은 많습니다. 칭찬왕, 퀴즈왕, 요리왕, 미소왕, 개그왕, 순수왕, 댄스왕, 홈런왕, 봉사왕, 도움왕, 구원왕, 섬김왕.... 등등 우리 주변에서 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 으뜸이 된 이들을 부르는 표현들입니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매일 그런 기분이 들도록 가까운 이들에게 불러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각자가 왕으로 불리운 호칭대로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여기며 주어진 삶을 잘 살피고 자부심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더욱 더 값진 삶을 약속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되기를 바라고, 으뜸을 실현한 삶이 인생의 해답을 완성해주는 구원의 현실이 과연 될 수 있을까요?

인생의 기쁨도 느끼고 모든 영화로움을 맛보았던 이들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더 이상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사랑도.... 세상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칭호도 삶과 죽음의 진리 안에 비쳐진 생명의 길을 거스를 수 없으며 이내 떨어지는 낙엽들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뿐입니다.

인디언의 달력으로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위령성월, 모두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 아닌 것임을 신앙하는 교회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의 통공 안에서 영원한 삶의 희망을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간을 지내며 시작이요 마침이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며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또한 인생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야만 하는 인생의 자세를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모든 저무는 것들 안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주님!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저희에게 빛이시요 사랑이시며 생명이신 왕으로 오십시오
당신은 봉사와 사랑의 임금이시고, 당신의 나라는 봉사와 사랑의 나라입니다.
저희가 당신의 봉사와 사랑의 일꾼이 되게 하시고 하는 모든 일들에 지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 당신은 구원자이시며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왕이십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시인 : 구상)

의정부교구 이문환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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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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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미사 드리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자신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미사가 불편해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미사 드리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가정에 대한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갖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세어보니 미사 시간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말씀의 전례를 빼고도 거의 20번 가까이 나옵니다. 우리말 주님의 기도만 해도 네 번이나 나오지요. 게다가 복음과 신부 개인의 언어 습관에 따라 “아버지”라는 단어는 훨씬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처럼 아버지에 대한 체험이 폭력과 폭압, 거친 언어, 무서움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버지”라는 단어가 수없이 나오는 미사가 그들에게 있어 마음 편할 리 만무합니다. 어쩌면 몇몇 교우들은 이러한 이유로 냉담 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하느님은 (자신의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너무나 무서운 분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 안에서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신앙교육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를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 뜻을 이루어주시는 분, 곧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시는 나만의 꼭두각시 하느님을 조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마치 이상적인 하느님의 상이라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은안 계신다’로 결론을 내리고서 신앙과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느님, 진정한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모습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마태 20,25) 그런 왕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마태 20,28) 왕입니다. 이는 그동안의 오랜 통념을 깬 진정한 왕의 모습입니다. 그런 왕을 우리는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닮고자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또 다른 의미의 왕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세례를 통해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부여받는데, 그 가운데 왕직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 진정한 왕의 모습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자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양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에 속한 사람에게 들리는’(요한 18,37) 예수님의 목소리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로가 서로를 섬김으로써 ‘이 세상’이 ‘이미’ 하느님 나라가 되도록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나라의 왕은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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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양종석 베다 신부 : 2018년 11월 25일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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