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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그리스도의 왕권은 어디로부터?
조회수 | 2,155
작성일 | 06.11.24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능력과 영예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묵시 5,12). 오늘의 입당송은 오늘 대축일의 의미를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전권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그러나 그분의 주권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즉 그리스도의 나약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된 어린양’이라는 상징을 통해 나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권이란 패배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구원능력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구원의 은혜는 바로 사랑에서 나왔으며 그 사랑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그분의 왕권은 사랑과 봉헌과 봉사와 겸손과 화해 그리고 그분을 희생제물로 만든 모든 불의와 폭력에 대한 항거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랑의 왕국을 원한다. 그러나 너무 이상적이고 어려워 보여서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1독서: 다니 7,13-14: 그의 주권은 영원히 갈 것이다

1독서는 영적인 ‘왕권’보다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듯한 신비스러운 ‘사람의 아들’ 모습을 한 이가 나타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리스 왕 안티오쿠스 치하에서 혹독한 고통을 당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알려주며 메시아, 사람의 아들이 주권과 영광을 가지고 찾아와 새로운 나라를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여기에 이 새로운 나라는 수난과 고통의 결실로서 얻어지게 된다고 나타나고 있다. 주권과 나라와 영화가 사람의 아들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리라고 한다. 그의 주권은 영원할 것이고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의 아들은 우리의 왕이 될 것이다. 그 왕권은 모든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지배권이 될 것이다.

복음: 요한 18,33b-37: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왕국이 이 세상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표명하신다. 빌라도의 첫 번째 질문은 신원에 관한 것이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33b).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34). 교활하고 경멸적인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라고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면서, 재판에 회부한 책임을 “너의 동족과 대사제들”(35절)에게 돌렸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왕권을 표명하신다. 그분의 왕국은 천상적인 것이라고 하신다. 만일 세상의 것이라면, 그분의 부하들이 싸워서 그분을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왕국은 이 지상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36절). 인간의 왕국은 그러기에 게릴라들이 봉기하였을 것이고 이들이 그들의 수장을 보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라는 어떤 세속적 정치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빌라도는 빈정대는 말투로 “아무튼 네가 왕이냐?”(37a). 예수께서 답하신다: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37b). 그러나 빌라도는 왕이 무슨 의미에서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기”(37절) 위하여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셨다(참조: 요한 1,1-18). 로마에게 있어서도 진정한 왕이시며, 또한 유다인들에게 그만큼 사랑 받은 “진리”, 즉 무엇보다도 유다인들에게 먼저 천상적 가르침을 가져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왕권은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맡기신 “진리를 증언하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있었다. 어떠한 유혹도 협박도 이해관계도 그분을 물러서게 하지 못한다. 그분은 철저히 당신 자신과 모든 사건을 지배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오만불손하지 않으며, 아버지 하느님께 자유롭게 충실하신 분이시다. 여기에서 그분의 왕권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절대 진리이시다(참조: 요한 14,6).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구별이 있다. 하느님에게서 나서 하느님의 진리를 사는 사람은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받아들이고 따른다고 하신다(37c). 즉 타협이나 양보를 하지 않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상 진리 편에 서는 것이다. 그 왕국은 진리의 왕국이고 영원히 실현되고 있고, 성령 안에서 십자가 위에서, 진실된 증언에 있는 피와 물(19,30.34.35-37)에서 실현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왕권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왕권이다. 그러나 언제나 빌라도들이 진리를 밀어내고 있다.

제2독서: 묵시 1,5-8: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2독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당신 자신과 세상의 진리에 대해 보여주시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권은 묵시록에서 구원된 모든 이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또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6절).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공통적 왕권을 재인식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증거하신 사랑과 진리의 모습으로 사회구조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그 왕직을 실행하도록 초대하고 있다(교회 36).

이 왕권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실행하는 것도 더 어렵게 느껴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봉사함으로써 다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수성’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리스도의 이 태도로 미루어 본다면 ‘왕이 된다’는 것은 ‘종이 됨’으로써만 가능하며, ‘종이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영적 성숙을 요하는 일이다. 보람있고 효과적으로 남에게 봉사하려면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제어를 가능케 하는 덕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왕다운 사명 즉, 그분의 ‘왕다운 직분’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스도교 윤리와 인간 윤리의 모든 분야와 밀접히 연관된다”(인간의 구원자 21항).

여기에 우리의 자세가 중요하다. 진리를 밀어내는 빌라도의 모습인가? 아니면 그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자의 모습인가? 그리스도의 왕권은 그분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진리를 끝까지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증거한 것에서 획득된 것이라고 했다. 그 왕권을 들어 높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왕권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과 봉사로 실행하여 세상에 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알지만, 그 왕권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의 진리 안에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체험하며, 그리스도 왕께 찬미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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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왕은 누구십니까?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요한 복음사가가 알린 것처럼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빌라도가 거듭해서 질문한 ‘당신이 유다인의 임금이오?’라는 말에서처럼 예수님은 ‘유다인의 임금’이라는 죄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도 임금으로 반기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유다인의 임금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인의 임금이십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은 유다인의 임금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인의 임금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만의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는 안 될 분이셨습니다. 어찌 바닷물이 작은 항아리에 담겨질 수 있단 말입니까? 유다인들은 억지로 바닷물을 퍼다가 항아리에 담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바닷물은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한 물로 ‘거기’, 바다에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오늘 이분을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항아리로는 담아낼 수 없는 분이 스스로를 낮추어 오셨고,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이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그분을 우리의 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신은 저희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에게 예수님은 왕이십니까?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실 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값이 올라가고 땅값이 올라가는 꿈을 실현해 줄 그런 예수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사람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 행복해지려하지 마십시오. 돈이 있는 한 예수님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명예나 권력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의 눈을 멀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자신들에게 필요한 예수님만 찾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만 구원하는 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항아리에 바닷물을 다 담으려는 사람들, 자신의 항아리만 채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고,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나라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미워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자신 안에 갇혀계신 예수님을 놓아드림으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김형중(그레고리오)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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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왕의 백성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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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 라후나탄 교수의 ‘왜 똑똑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란 책은최고의 석학들의 명강의 모음 ‘코세라’에서 1,700만 회원이 뽑은 인생 최고의 강의 내용입니다.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쓰이고 검증된 세계에서가장 훌륭한 책 중 하나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을 갉아먹는 7가지 죄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7가지 솔루션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들입니다.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평생을 걸쳐 연구해 온 것들이 그리스도의 단순한 가르침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역사상 가장 완전한 진리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세상 행복을 쫓다보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돈과 명예, 쾌락 등을 행복이라 여겨 추구하면 참 행복을 잃는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책은 또 우월해지려고 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높아지려하면 낮아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월해지려는 마음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자기만족이기 때문에 겸손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랑을 갈구하면 불행해진다고 말합니다. 욕망이 고통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려면 부모나 형제, 아내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애정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애정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내가 아프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책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지나치게 자신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과 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믿지 말라고 책은 말합니다. 예수님도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믿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아를 끊는 방법은 몰입니다. 어떤 것에 집중할 때 생각이 사라지고 단순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보다 감사와 사랑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게 행복의 수준이 하느님 자녀가 되는 행복의 수준까지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은 그 잠깐의 경험은 평생을 행복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에게 왕은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것을 볼 때 물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 생각만 하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대로만 해야 합니다.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배우는 것, 이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해가 마무리됩니다. 그리스도 왕의 시민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다면 베드로 사도처럼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그대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왕이 다스리는 왕국의 신민이 되려면 그분만이 참 진리임을 믿어야합니다. 세상 모든 학자들의 연구를 다 모아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 없음을 믿어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당신은 ‘왕’이시라고 말씀하시면서도‘진리’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그러니까 당신은 진리의 왕이시고 당신이 증언하는 진리를 따르는 이들이 당신의 백성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에 속한다는 말은 당신이 가르치는 것을 진리로 믿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목소리에 따라 살아가며 그래서 그분이 지배하는 나라, 곧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백종원 씨의 골목식당에서 홍탁집 아들이 워낙 백종원 씨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백종원 씨가 크게 분노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를 봐서 도와주려 했는데 아들이 전혀 백종원 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방송은 그것으로 중단이 되고 그 집의 방송분은 더 이상 방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 며칠 그 집이 다시 매스컴에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홍탁집 아들이 완전히 바뀌어 자신이 백종원 씨가 가르쳐 준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 집을 촬영하기 위해 쓴 돈을 몇 배로 갚겠다는 각서를 내걸었고 실제로 맛까지도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다시 방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홍탁집 아들은 처음엔 백종원 씨의 솔루션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백종원 씨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저도 나름 사제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제 솔루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솔루션을 따라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참 보람을 느낍니다.

예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솔루션은 오직 ‘사랑’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면 다 해결됩니다.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자신만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벽돌로 지어진 성당에 들어가서 미사 한다고 그분이 나의 왕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야 그분의 시민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빌리도처럼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묻기는 하는데 관심이 없어듣지도 않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진리에 관심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도 하루에 성경을 한 줄도 안 읽는다거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5분도 할애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왕이든 아니든 상관없소. 나는 지금 내 일에 바쁘오.”라고 말하는 빌라도와 같습니다. 그분 진리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고 더 알려고 노력해야 그분 나라의 시민이 됩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그분이 가르치러 오신 것이 진리임을 믿고 그 진리를 알기를 원하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인간이 되기 위해 똑 같은 과정을 겪어온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가 진리임을 알고 부모의 가르침을 믿고 그대로 살려고 해서두 발로 걷고 말을 하며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가 두 발로 걷는지 네 발로 걷는지 관심이 없다면 부모가 진리임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온전한 자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진리는 알려하지 않으면 그 진리의 가치가 없어집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알고 싶은 것이 그 사람에겐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려고 시간을 투자합니까, 아니면 세상 것을 알려고 투자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까?이것이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한 시민인지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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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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