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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계승해야 한다.
조회수 | 1,990
작성일 | 06.11.24
다니7,13-14 / 묵시1,5ㄱㄴㄹ-8 /  요한18,33ㄴ-37

묵상길잡이; 왕직(王職)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스리는 직분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크게 변화시킨 그분의 영향력은 어디서 나왔는가? 우선 진리 편에 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과 관용과 봉사를 할 때 진정한 리더십 즉 왕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1. 왕 중의 왕인 예수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 축일이다. 예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할 분」이심을 선언하는 주일이다 '왕'이란 말은 민주화를 부르짖는 요즘엔 거부감을 주는 용어임이 틀림없다. 왕이란 '주군(主君)' 또는 '주인(主人}'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들어 모심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주님의 뜻이 스며들어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의 완성임을 교회는 고백한다.

예수님은 '왕 중의 왕' 이시다. 왜 이렇게 말 할 수 있는가? 일찍이 아놀드 토인비라는 영국의 역사학자는 세상 모든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담은 '역사의 한 연구' 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집필하였다. 그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사건을, 첫째는 기독교, 둘째는 기계문명, 셋째는 공산주의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교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인류역사는 전혀 다른 역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예수그리스도는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역사를 바꾼 분이라는 말이다. 아무도 토인비의 이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대도 없었고, 점령한 영토도 없었으며, 방대한 조직을 구축한 적도 없었다. 다만 어부와 인간적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구성된 열 두 사도들을 모았을 뿐이었다. 그런 예수님은 어떻게 비할 데 없는 영향력으로 인류역사의 모습을 바꾼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었는가?

2. 우선 진리 편에서야 한다.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진리 편에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속담에 "( )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자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나무랄 때, 그 말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내 말이 힘이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진리 편에 서야한다. 흠 잡힐 데 없이 당당해야 한다. 이것이 첫째 조건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층 실세들이 하나같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래서야 어떻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와 부패를 척결할 수 있겠는가? 검찰로서도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면서 수사를 하는척하다가 그냥 덮어버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개혁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할 때 거기에는 어떤 힘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진리 편에서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진리 편에 서야함과 동시에 사랑과 봉사를 해야 한다.

진리 편에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몫을 똑 부러지게 하고 반듯하게 살며 매사에 당당한 사람이라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면도날처럼 규탄하기만 한다면, 그는 두려운 존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공동체에나 이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야! 저 아줌마에게 한번 걸려 씹히면 죽는다. 가자, 가! "하며 슬슬 피할 것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질문을 했다.(요한8,1-11)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을 던져라."(요한8,7)고 하시고,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하시며 돌려 보내셨다. 돌로 칠 자격으로 말한다면 예수님보다 더 자격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개인적인 허물에 대해서 무한히 관대하셨다. 수많은 죄인들을 관용으로 품으셨다. 또한 예수님은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6,3-4)하시며 숨은 봉사를 강조하셨다.

이렇게 진리 편에서는 당당함과 떳떳함 위에 사랑과 관용과 봉사의 덕(德)을 지님으로써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쳐 당신을 추종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역사를 변화시키시는 '왕 중의 왕'이 되셨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쉽이며, 여기에 지도자의 길이 있다.

우리 신자들은 먼저 진리 편에서는 자세로 당당함을 지님과 동시에, 남을 이해하고 허물을 용서하는 사랑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어떤 대가도 바람이 없이 순수히 봉사하는 자세로 살아감으로 진정으로 이 세상에 왕직을 수행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예비신자를 인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이런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생활 속에 받아들여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내 안에 왕 노릇하시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중심(왕)이 될 때, 내 가정도 이 사회도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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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왕은 누구인가?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칭한다. 우리는 흔히 ‘왕’이라고 하면 ‘최고’, ‘권력’, ‘힘’ 등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게서는 이런 왕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분은 최고가 되려고 하지도 않으셨으며 권력을 추구하신 것도 아니고 힘을 드러내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흔히 우리가 연상하는 왕과는 반대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왕의 왕관 대신 그분은 가시관을 쓰셨고, 화려한 궁궐 대신 ‘여우도 굴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어도’ 그분은 하늘을 이불삼아 유랑생활을 하셨다. 그리고 결국 아무 저항도 않으시고 붙잡히시어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분을 왕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분에게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왕으로서의 모습을 교회가 발견하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그분의 왕으로서의 면모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교회가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칭하는 것을 우리는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혹시 그분에게 숨겨진 왕으로서의 근엄하신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분에게 그런 모습을 덧씌워서는 안 된다.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교회는 그분의 삶을 우리 생의 최고의 가치로 삼고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오로지 하느님 나라의 의를 구하고자 하는 그분의 삶을 교회 역시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결코 세속적인 왕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한 구성원인 우리는 과연 교회의 신앙고백처럼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분을 얼마만큼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비록 우리가 그분의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그분을 우리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고 있기나 한 것일까?

지상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의 형편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언젠가는 그분을 우리 삶의 왕으로 삼고 그분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왕 만세!

마산교구 이재영(바실리오)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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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왕국은 세상 것이 아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왕 축일이다. 그분이 어떤 의미의 왕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왕은 최고의 힘을 지닌 자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누구도 거역해선 안되었기에 두려움의 존재였다. 예수님을 그런 왕으로 생각해야 되는가. 빌라도 앞에 서셨던 예수님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당신 나라가 이 세상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 개념으로 그분을 생각해선 안된다.

그러므로 왕이신 예수님은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 무엇의 주인이신가. 시간과 운명의 주인이시다. 시간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아신다. 우리의 운명도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실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하며 맡긴다. 교회 달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는 공적으로 이 믿음을 드러낸다. 그분을 왕으로 고백하며 시간과 운명의 주인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불안을 느낀다. 고통스런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들이다. 이 갑작스런 시련 앞에서 누군가 지켜주고 보호하여 준다면 아무라도 그를 의지할 것이다. 아니 왕으로 모실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부적을 지니고 굿을 하며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스도 왕 축일은 이러한 사람들의 방황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답변이다. 왕이신 예수님이 인간사 모든 희노애락의 주인이기에 그 분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이것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면 그분을 왕으로 모시는 행위가 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그분이 우리의 앞날을 책임지고 있다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시련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좌우하고 계시는 주님을 느낀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의 앞날을 책임지고 계심을 믿지 않고 있었다면 오늘은 믿는다고 고백해야 한다. 주님께서 나의 운명을 지켜주고 계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오늘은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해야 한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신다. 불안한 이 세상에서 두려움을 넘어 희망과 용기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신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이러한 예수님의 힘을 느끼고 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체험하기에 의심 없이 왕으로 섬기고 있다. 그분을 왕으로 섬기면 그분 또한 우리의 운명 속에 들어오시어 왕이 되어주신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이러한 믿음에 어울리게 사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기도와 선행이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기초적이며 힘있는 신앙행위인 것이다.

최근 사람들은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다. 평생을 살아왔던 말년이 치매 때문에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노년이 다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노년도 주님께서 주셔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니 맡겨야 한다.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생활이다. 그리스도 왕 축일을 맞으면서 다시 맡기는 기도를 시작하자. 그분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왕이 되어주실 것이다.

마산교구 신은근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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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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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교회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전례력을 닫습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임금이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민중의 고통과 괴로움을 외면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으셨던’(마태 8,20) 예수님께서는 굶주리고 목마른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굶주림과 목마름을 겪으심으로(마르 10,12 요한 4,7) 당신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가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셨다.”(다니 7,13)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사용하신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신 백성을 위하여! 당신 백성 때문에! 낮아지셨고 가난하게 되셨고 아프셨고 죽음 당하신 임금이신 주님. 이렇듯 다니엘 예언자는 당신 백성을 섬기는 임금님의 영원한 통치를 이야기합니다.

제2독서 묵시록은 예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고 모든 것이 존재하기 전에 계셨던 분도 예수님이시며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후 마지막에 오실 분도 예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마태 28,18) 예수님께서는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신’(묵시 1,5) 너그러운 임금님으로서 당신의 소유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서 당신 사랑의 많은 증거를 보여주셨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백성의 은인으로 자처하는, 강제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세상의 임금이 존재하는(루카 22,25) 그런 나라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나라는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라는 말씀처럼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나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볼 때, 지상의 어떠한 통치자도 예수님처럼 당신 백성을 위해주지 않았음을, 그리고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그분만이 영원히 지속될 권능을 지니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권과 권능과 능력을 지니신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며 이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왕국의 백성으로서, 우리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나눔과 봉사의 삶을 충실히 살아서 그분 안에 충실히 머물러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분 안에 속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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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교구 박태정 토마스 신부 : 2018년 11월 25일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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