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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조회수 | 1,948
작성일 | 06.11.25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모 습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 ‘끝’은 새로 운 ‘시작’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여 주기 때문이리 라.

연중 제일 마지막주일에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 는것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 니,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 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크게 다가 서는 것은, 당시에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의 역사적 공간 속에서, 또한 나치의 출현을 경 험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신앙고백은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만큼이나 중요하게 알아듣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특별히 가톨릭청년운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에서 그리스신화를 원용하여 “다스리는 일은 원래 사람의 몫이 아니다” 고 설파한 적이 있었다. 모자라게 되어 있는 사람은 제대로 다스릴 줄 모른다는 뜻이리라. 그런데도 다스리려고 하다 보니 엄청난 파열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것은 사실은 전체 전례력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오늘 연중 마지막 주일에 이것이 다시 한 번 장엄하게 요약되고, 부활축제의 광채가 다시 한 번 비춰져야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축일이 지칭하고 있는 “왕󰡓이라는 칭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 생애의 처음과 끝에서 만날 수 있다. 당신 생애의 처음에는 “유다의 왕”을 찾는 이들을 별이 구유로 인도해 주었었고, 당신 생애의 마지막에는 욕설로 십자가 위에 적혀 있었다.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 왕으로서는 별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예수께서 힘 있는 자들의 편에 가담하였더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아웃사이더들과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의 편에 섰기 때문에 돌아가셔야 했다. 약속된 왕에 대해 노래했던 이스라엘의 옛 노래가 이분께 적용되는 것이다: “그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가난에 사는 자들을 살려 주리이다.” (시편 72, 13)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축일의 그 왕이다. 우리가 이 왕을 따르려면 잘못된 왕의 환상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잘못한 이를 용서하시는 이 왕을 따르려는 이는 차츰차츰 스스로의 왕관의 마디들, 조각들을 부수기 시작해야 한다. 빈 손과 열려진 가슴으로 가시관을 쓰신 분을 만나는 이만이 참된 왕이신 그분으로부터 귀한 보석을 얻게 될 것이다.

교회가, 다시 말해서, 우리 스스로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오늘 우리가 지내고 있는 축일의 예수님께 대한 왕의 칭호는 널빤지에 쓰여서 ‘십자가’ 에 못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늘 스스로의 소리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말씀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시고, 진리이시며,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대구대교구 이경수 라파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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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닮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참 예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네.”(시편 19,8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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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을 전해줍니다. 이 만남은 창조로 시작되었고 마지막 날에 완결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그 안에 담아 두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영성(靈性)’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령한 본성’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세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졌다.(1,26-27; 5,1-3 참조)’고 전하는데, 우리 안에 있는 이 ‘하느님의 모상성(模像性)’이 바로 ‘영성’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존엄(尊嚴)의 근간(根幹)이 됩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닮기 위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알려주는 성경을 찾게 됩니다. 많은 영성의 대가들이 성경을 영성생활의 교본으로 제시하였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출간된 책이 성경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진 사람이 하느님을 닮아갈 수 있게끔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를 바라시면서 “하느님 말씀의 날”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는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인 연중 제34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더 많은 이들이 성경을 접하도록 안내하고 있는데, 올해 성서 주간의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네.”(시편 19,8ㄱ)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 담긴 완전하신 하느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생기를 주기를 바라며, 감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참 예쁘십니다.” “정말 예쁘십니다.” “당신은 하느님 닮으셨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당신을 닮게 만드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을 닮았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닮았다.’는 복음(福音)을 전하며 성서 주간을 보냅시다. 이웃에게 말해 봅시다. “당신, 하느님을 닮았네요!”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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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대교구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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