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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 세상 왕이 아니다
조회수 | 2,064
작성일 | 06.11.25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1년이라는 기간 안에 질서있게 배치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이것을 전례주년 이라고 하는데 대림절부터 시작하여 성탄절로 이어지고 그리고 연중 시기가 얼마쯤 계속되다가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을 맞이하게 되고 이어서 부활절로 연결이 됩니다.

부활절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긴 연중 시기가 다음 대림 전까지 계속됩니다. 대림 첫 주일은 교회로 봐서는 새해 첫 날인 셈이며 연중 마지막 주일은 이를테면 섣달 그믐 주일인 셈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특히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여 마지막에 왕으로 오실 주님을 기립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지금도 왕이시며 그리고 끝날에 왕으로 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1독서에서 봉독되는 다니엘서는 기원 전 2세기 경에 시리아의 박해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내용은 박해자들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언젠가는 다 망하게 되리라는 것과 오로지 하느님의 지배, 하느님의 왕국만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독서에서는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과 그가 마지막 심판자요 왕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분만이 영원한 왕이요 지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왕들은 다 지나갔습니다. 왕권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국만이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서에는 예수님을 자주 왕으로 묘사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예수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루가 1,33).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헤로데를 찾았을 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하고 물음으로써 헤로데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나타나엘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요한 1,49)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왕이시라는 사실에는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세속의 왕이 되는 것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빵 다섯 개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을 때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피하셨습니다(요한 6,15 참조). 그들이 현세적인 왕으로만 예수께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문제가 됩니다. 갈등이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심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그 왕국이 이 세상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도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분은 왕관을 쓰신 적도 없으며 궁전도 군대나 영토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난 곳이 마구간이었고 평생을 가난하고 비천하게 사셨으며 마지막 3년의 전도생활 중에는 병들고 죄많은 인생들과 어울려 지내시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치신 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예수와 같은 가난하고 슬픈 왕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저 고난받는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에서 그분의 삶의 모습을 바라봐야 합니다. 답답한 현실,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이 아픔 속에서 그분은 왕이시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빌고 또 빌어도 세상 일이 안 풀리고 눈물과 쓰라림으로 얼룩이 진다 해도 우리의 왕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엄연한 사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것이라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요 또 존재한다 해도 권력과 재물을 가진 자만이 떵떵거릴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속이고 등쳐먹는 인생들이 판을 칠 것입니다. 힘있고 잘난 사람만이 행세를 할 수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 것이라면 우리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그분을 다시 한번 죽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원한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슬프지만 그 슬픔 때문에 위로받는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괴롭지만 그 고통 때문에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예수께서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닙니다. 특히 어려운 이들에게 큰 기쁨의 상이 주어지는 나랍니다. 따라서 그 나라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해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법대로 용기있게 살도록 합시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거기에 우리의 참 희망이 있습니다.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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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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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상의 삶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조금은 여유로웠으면, 좀 더 편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기뻐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기뻐하자고 행복해하자고 끊임없이 되뇌어 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삶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매일 책상 앞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고 또 하나의 일을 끝내기 위해 오늘도 저는 성경을 읽어내려 갑니다. 또 하나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성경을 묵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 아무런 기쁨도 행복도 가져다주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 고 있습니다.

제34회 성서 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네."(시편19,8)라는 시편의 성구로 이 주간을 기념합니다. 시편기도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심을, 그래서 기쁨과 행복의 생기를 북돋아 주심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말씀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저는 생기가 떨어집니다. 말씀 속에서,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아마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죽음의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글로써 받아들였기에 그분을 만나지 못했나봅니다.

우리 모두도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을 매일 듣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성경 공부에 참여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기 위해 성경을 매일 써 가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시작했던 그 삶들이 지금은 부담과 의무감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기쁘기도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갔다는 자신만의 자부심으로, 오늘은 조금 더 가까이 갔다는 만족감으로 위로하며 그 의무를 해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우리에게 생기를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지치게 만들 것이고 기쁨을, 생명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에겐 ‘쉼’ 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해 자신만의 만족함을 충족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보다 그분을 만나함께 울고 웃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는 감사하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읽고 써 내려가야 합니다. 복음 선포를 하고 돌아와 지쳐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 라." (마르 6,31)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의무감과 책임감에 지쳐 있는 우리에겐 쉼이 펼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쉴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쉼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그분을 만나 조용히 둘만의 대화를 나누는 쉼을 가져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생기를 얻기 위하여, 말씀을 통해 생명을 찾기 위하여 쉬어야 합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생각이 멈출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그분과의 쉼을 이루 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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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 :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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