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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회개의 삶, 나눔의 삶
조회수 | 1,908
작성일 | 08.12.05
이 땅에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두 번째 촛불을 켰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기다림의 설렘보다 유난히도 힘들 거라 예상되는 이번 겨울 걱정으로 가득한 듯합니다. 사람들마다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이 입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국민 10명 중 2명은 빈곤층인데 이번 겨울이 지나면 빈곤층이 10명 중 3명꼴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위기가 닥치면 가장 약한 사람들이 먼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화수동에서 노숙자들을 대접하는 민들레국수집 서영남씨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을부터 노숙자 손님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밥 한 끼 먹으려고 일부러 오는 노숙자들도 많아졌는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감세정책으로 삭감된 예산 대부분이 어려운 계층을 위한 복지예산인지라 노숙자를 위한 지원도 중단되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들레국수집은 벌써 5년 넘게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책과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민들레국수집은 거리의 노숙자들을 귀한 VIP 손님으로 모시는 곳입니다.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이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섬깁니다. 이곳은 후원회를 따로 조직하지도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쌀과 반찬들이 떨어지지 않는답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돕는 선한 이웃들, 폐지를 모아 겨우 몇 천원 받은 돈을 반찬사라고 내놓고 가는 가난한 이웃들, 어쩌다 한 막노동으로 힘들게 번 일당을 감사의 마음으로 내놓는 노숙자들의 나눔 덕분입니다. 민들레국수집 주인장 서영남씨는 일주일에 5일을 국수집을 운영하고, 쉬는 이틀은 죄를 지어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을 돌보아 줍니다. 1년 365일을 오로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민들레국수집에는 이런 글이 걸려 있습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 바로 소유로부터 자유롭고 나눔으로써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곧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먼저 정화하고 변화된 삶을 살도록 요청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변화된 삶에 대해 다른 공관복음을 살펴보면 두 개를 가진 사람은 하나를 없는 이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가 맡은 직분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것(루카 3, 11-14)이라고 세례자 요한은 말합니다. 회개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듯 욕심을 버리고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 쌀직불금을 수령한 공직자들이나 종부세 위헌 소송을 내서 결국 세금을 돌려받게 된 부자들을 보면 가진 자의 욕심은 참으로 끝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으로, 그것도 가장 낮고 미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가장 약한 이들의 벗이 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박한 나눔을 할 때, 우리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쁘게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성교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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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여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우리를 온전하게 해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평화를 빕니다. 우리들의 아기,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위해 어디로 오시는 걸까요? 그분께서는 바로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서 태어나시기 위해 오십니다.

“하느님과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여!”(베드로 행전 8장) 그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에 충실한 이들만이 아니라, 생활에 쫓겨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는 이들에게도 주님께서는 오십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은 가정생활에 지쳐 한숨을 쉬는 어머니들의 주님이시며, 대출 빚에 악몽을 꾸는 아버지들의 주님이십니다. 불투명한 고시 공부와 높은 등록금에 미안하기만 한 자녀의 주님이시며, 텅 빈 방 안에서 부모가 빨리 일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삶에 충실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이들이 여러분을 비웃는다 해도 주님께서는 여러분 편이고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 행복합니다. 하느님께 충실히 머무르는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들의 것입니다.
행복합니다.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삶에 지친 이들이여,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여. 이사야 예언자의 입술을 통해 위로를 주시는 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겨울이 가까이 왔다면 봄이 어이 멀리 있겠습니까! 봄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쁨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기쁨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도록 합시다. “기뻐하여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루카 1,28; 마태 17,7; 14,27)

김태영 요한 신부
  |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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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또 한 번의 탈출

오늘 세례자 요한은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굴종과 인고의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한 번의 탈출을 감행하도록 합니다. 그들이 묶여있었던 세 번째 유배지는 ‘죄성’과 그로인한 ‘악습’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배지에서 원래 왔던 곳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탈출시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사 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죄성에 굴복하며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을 유배지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 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나는 가망이 없어. 그러니 이곳에서 적응하며 살아야지.’ 하면서 유배지에 털썩 주저앉는 것만큼 견 디 기 힘든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한계를 체험하고 우리의 죄성을 느끼는 데는 어떤 노력이나 대단한 참 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마음을 꿰 뚫어 회심해야겠다고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끊임없이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어 줍니다. 이 사실이 바로 요한이 세례를 주러 온 이유가 아니었을까 묵상해봅니다. 요한의 외침은 모든 사람을 회개의 길 로 부르기 위한 것이면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회개의 삶으로 변화시켰고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큰 성과를 거둔 요한은 자기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청해도 전혀 거부감이나 어색함이 없었고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라고 착각할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루카 3,15)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 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 평 범해지기도 어려운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자신을 돌 이켜 보면, 평 범한 세례자 요한을 따라 제 가 갇혀있는 나름의 유배지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평 범한 사람이기 보다는 유배지에 눌러 앉으려는 특별한 사람이 되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 는 자기보다 뒤에 찾 아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던 세례자 요한의 일상을 묵상하며 오늘도 평 범한 여느 날처럼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곧 오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 인천교구 이진원 루치오 신부 - 2017년 12월 10일
  |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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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들어가서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있었는데, 제가 선택한 곳은 산악반이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 산이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는 일상 삶 안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에 보너스로 건강한 몸도 갖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험한 산, 오르기 힘든 산을 가는 것도 너무나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유격 훈련을 받을 때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워낙 좋아했던 산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때 오르는 산은 정말로 괴로웠습니다. 산에 빨리 오르지 않으면 알아서 하라는 조교들의 험악한 말을 들으면서 어쩔 수없이 강압적으로 오르게 된 산이었기 때문이지요.

똑같이 오르는 산이지만 이러한 차이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르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을 내가 선택한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어쩌면 고통과 시련이 주어지는 상황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무조건 괴롭고 힘든 고통과 시련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서 기쁨과 행복의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행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내 삶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 있는 행동은 바로 생각의 전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세례자 요한을 만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지요. 그래서 광야에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삽니다(마르 1,6 참조).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인간의 욕망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이 이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사제직에 있었던 즈카르야와 아론 가문의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지요. 이는 그가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살 수 있는 집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선택을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은 사명에 충실한 것이 바로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지 않고, 또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서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는 자신이 주님보다는 결코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

세례자 요한의 이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해 달라, 저것도 해 달라고 합니다. 마치 맡겨놓은 것을 되찾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잘 생각해보면 주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종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주님보다 절대로 높아질 수 없는데, 온갖 불평불만 속에서 주님 탓을 외치면서 마치 종을 대하듯 했던 것이 아닐까요? 결코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2베드 3,13 참조).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12월 10일
  |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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