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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1,884
작성일 | 08.12.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이사야서 61,1-2ㄱ.10-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5,16-24

형제 여러분, 16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22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요한 1,6-8.19-2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묵상

복음에서는 요한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요한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훌륭한 분이 오시는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분이 오실 거라는 요한의 답변입니다.

대림 첫 주일의 주제는 ‘깨어 기다림’이었습니다. 둘째 주일은 ‘회개’였고, 셋째 주일은 ‘희망’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기다림의 목표를 ‘소유하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힘겨운 인생에서 사랑과 감사를 ‘희망하는 것’의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인은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신덕과 망덕과 애덕입니다. 희망은 당당하게 세 덕목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 셋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칭찬하시며 은총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받는 우리가 실망하며 살고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은혜로 주심에도, 감사하며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숙제입니다.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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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황폐함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부족함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고통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힘겨움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목마름은 무엇인가?
나를 초라하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회 송봉모 신부님이 쓴 소책자 『광야에 선 인간』에서 묻는 질문입니다.

광야는 버려진 벌판, 외롭고 쓸쓸한 메마른 땅입니다. 우리 내면에도 바로 이런 자리가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 인생의 ‘광야’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핍된 존재이기에 누구나 광야를 안고 삽니다. ‘광야에 선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죽기 살기로 광야를 탈출하려고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모으고 더 챙깁니다. 그러면 우리의 광야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내면은 더 황폐해지고 우리 인생은 더욱 초라해지며 우리는 더 지쳐만 갑니다.

우리를 외롭게 하는 내면의 광야는 피할 수도, 다른 것으로 채울 수도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만나며 주님만이 희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비로소 우리의 목마름은 채워지고 우리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내면의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매우 소중한 장소입니다.

매일미사 2011년 12월호
  |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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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상머리에는 이런 글쪽지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최 요한 신부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2012년 2월 20일-3월 31일.”

처음으로 주임 신부로 발령받고 잠깐 피정하러 들어간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받을 때 고해 신부님께 받은 것입니다. 신부님은 보속과 훈계와 함께 직접 이 글을 써서 주셨는데,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 성구를 한 달 동안의 양식으로 삼기를 바라시는 배려였습니다. 저는 한 달이 아니라 언제나 기억하며 그렇게 살려고 이 작은 글쪽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주 잊고 사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눈에 띌 때마다 새삼스레 감동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오로 사도의 훈계이지만 살아갈수록 보석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합니다.

한 신학자가 대림 시기를 지내는 신앙인의 자세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큰 ‘도약’과 작지만 꾸준한 ‘발걸음’이 모두 필요하다고 합니다. 깨달음과 회개가 도약이라면,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이 발걸음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발걸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기뻐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는 사람의 일상은 빛이신 주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증언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매일미사 2014년 12월 14일>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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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이 파견한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정체를 묻습니다. 군중이 요르단강에 모여들어 그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는 종교 운동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우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에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단호히 고백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기 에, 요한은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그들의 둘째 질문은 “엘리야요?”입니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올 엘리야’라고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었지만 부인합니다. 겸손한 요한은 자신을 위대한 신앙의 영웅인 엘리야에 비기지 않습니다.

셋째 질문은 “그 예언자요?”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따라 모세가 예언한 그 메시아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요한은 역시 “아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넷째 질문은 “당신은 누구요?”입니다. 신원을 밝히라는 요구에 요한은, 이사야가 말한 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하고 대답합니다.

요한은 구세주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우리도 신앙인이 누구인지 자신에게 질문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이며, 그분을 충실히 따르면서 사람들을 그분께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갇힌 사람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자유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미사 2017년 12월 17일
  |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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