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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님의 손
조회수 | 2,161
작성일 | 08.12.13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3주일은 성탄이 가까워졌음을 희망하고 기뻐하는 장미주일입니다. 동시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자선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행위를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행위로 여기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폭격으로 파괴되어 버린 성전은 깨어진 벽돌 더미와 유리조각만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절망과 상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새로운 성전을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매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도하며 성전공사를 시작하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벽돌과 유리 조각 더미 속에서 성전에 모셔져 있었던 큰 십자가가 발견된 것입니다. 두 손만 떨어져 나갔을 뿐 다른 곳은 상처 하나 없이 침묵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안배에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신자들은 다시 복구된 성전 중앙에 두 손이 없는 십자가를 그대로 모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조각가 한 사람이 성전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두 손이 없는 예수님께 새로운 손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손이 없는 그 십자가를 그대로 모셔두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손이 잘린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손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 소년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등등. 실의에 빠져 있는 많은 이들에게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지만 지금 당장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손이 되어 보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오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손이 되라고 자선 주일로 정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예수님의 손”이 되어야겠습니다.

배상희 마르첼리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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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사는 방법 - 기도와 감사

오늘은 대림 제 3주일, 기쁨 주일입니다. 사제도 이 날 기쁨의 색인 장미색 제의를 입습니다. 물론 없어서 못 입는 사제들도 있지만…. 대림초의 색과 비슷한 색이지요. 보랏빛에서 점점 밝아집니다. 예수님의 오심, 성탄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준비의 대림시기를 지내면서 기쁜 마음으로 나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모두들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며 불평도 많고 불만도 많지요. 무지 많습니다. 그리고 허무해하기도 하고요. 괴로운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요. 기쁨 주일이라고 하고 성탄을 기뻐하라고 하는데 매년 치르는 연례적인 행사일 뿐 별 의미도 없습니다. 어색한 기쁨만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기쁨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기쁠까 다들 잘 모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 5,16-18)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기쁩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이사야 61.10)”라고 전합니다. 주님 안에 사는 방법, 그것은 바로 기도와 감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쁘게 살려면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쁘게 살 수가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아쉬울 때만 기도 아닌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께 청하고 구하는 것만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입니다. 큰 문제입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내가 알아차리려고 하는 일이 기도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족들이 모여 기도합시다. 일주일에 한 번도 좋습니다. 5분도 좋습니다. 물론 개인은 매일매일 기도해야 하겠지요.

또 기쁘게 살려면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래도 찾으면 있습니다. 큰 감사거리를 찾지 말고 작은 것부터 찾으면 술술 생깁니다. 지나간 시간도 후회와 아쉬움이 아니라 감사와 행복으로 기억해야지요. 그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뇌의 화학구조와 호르몬이 바뀐답니다. 기쁜 성탄 기쁘게 준비합시다! 세례자 요한처럼!!!

이경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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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오늘은 대림 제3주일로 교회는 이날을 기쁨 주일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 독서들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은 기쁩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돈이라도 많이 벌게 해주시면 기뻐하겠는데…”, “내 몸이 건강해지면 기뻐하겠는데…”, “우리 아들이 그럴듯한 곳에 취직만 되어도 행복하겠는데…”, “우리 노처녀 딸이 시집이나 가면 기쁘겠는데….”

그런데 모두 기쁨과 행복의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이 하느님의 도구로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기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살았지만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습니다. 요한은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이미 와 계신다고 알려주었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메시아를 알아보고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세례자요한과 같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나아왔지만, 내로라하던 종교지도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유에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예수님만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만일 우리가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을 지닌다면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큰 은총을 우리 각자에게 주셨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든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도 항상 기뻐할 수가 있고,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일할 수 있는 건강을 하느님께서 주셨고 나의 노력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풍성한 결실을 허락해 주셨다는 하느님 자녀다운 생각을 지닐 때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는 분은 내 것을 이웃에게 나눠주십시오. 그래서 교회는 기쁨 주일인 오늘을 자선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듯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기쁩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면서 성탄을 맞이한다면 먼저 내가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믿지 않는 이웃들도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라 기쁨 가득한 성탄절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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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입니다. 벌써 대림환에 초가 세 개나 켜졌고, 초 색깔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 구원의 빛이신 주님의 성탄이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지요.

오늘 복음은 이천 년 전 유대 광야에서 주님의 오심을 증언했던 요한에게로 우리를 이끕니다. 일상과는 거리를 둔 곳,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났던 바로 그 광야에서, 요한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오심을 사자후와 같은 울림으로 선포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부정한 동물인 낙타 털옷을 입고서(레위 11,4) 고행과 참회의 음식인 메뚜기와 들 꿀을 양식 삼아 회개를 선포하던 요한의 모습은 죄인과 의인 모두를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과연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요한에게 나아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마르 1,5) 단순하고 소박했던 군중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가슴 가득 받아 안았을 때 느꼈을 기쁨이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한다는 예언(말라 3,1; 집회 48,10)을 알고 있었기에 요한에게 “당신이 엘리야요?” 하고 묻기도 하고, 모세가 예언했던(신명 18.18) 바로 “그 예언자”인지 묻기도 합니다.

사실 요한은 분명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루카 1,17) 예언자였고, 예수님께서도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마태 11,14)라고 말씀하신 바 있지요. 그러나 이리저리 재어보기만 하고, 믿음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고서 스스로 결단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하며 진심 어린 회개로 응답하지 않는 그들에게 요한은 주님의 현존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 제2독서, 심지어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쁨과 설렘이 정점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는 결코 그 기쁨을 강요하거나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되신 하느님,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의 사랑에 우리 역시 낮추는 자세와 회개로 응답할 때 얻게 되는 선물, 우리 존재를 통째로 바꾸어 놓을만한 구원 체험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베푼 선행과 자선은 회개의 진정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나를 더 작게, 주님을 더 크게 드러내고자 했던 세례자 요한처럼, ‘가장 작은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위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대구대교구 강수연 베드로 신부 : 2017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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