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21.6%
[대구] 말씀을 잉태한 사람들
조회수 | 2,014
작성일 | 08.12.20
대림 제 4주일을 지내는 교회는 임박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복음을 전하며, 성모님께서 어떻게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응답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의 말에 마리아의 반응은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하느님의 일을 하기에는 부적당한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활동하신다는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쓰시다니요?" 

그러나 하느님의 힘이 그녀에게 내릴 것이고, 엘리사벳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응답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순명하였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수락하자, 믿기지 않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서둘러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가 주님을 찬송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순명할 때, 우리는 큰 기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당신의 힘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고, 우리 영혼에 기쁨과 평화, 희망과 사랑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입니다. 사랑과 순수한 양심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간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보기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는 거룩한 일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말씀이신 예수님을 당신 태중에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소중한 도구로 쓰실 것입니다. 임박한 성탄을 준비하며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다시한번 말씀 안에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처럼 이렇게 말해야 하겠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전재현 베네딕토 신부
450 21.6%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며칠 후면 성탄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위대한 변화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십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상식 밖으로 이렇게 반문하십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약혼자가 있는 여인에게 하느님께서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아무개라 하여라.”하시면, 당연히 “아! 신랑과 나 사이에 생길 첫 아이는 아들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여인의 반응이 아니겠습니까?

마리아의 이 반응은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할 때 평생 동정부부로 살자고 깊이 맹약한 것을 전제로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마리아는 세살 때 당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자헌)하셨고,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의 동정녀 공동체에
입소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의 법에 따라 혼인을 위해 퇴소한 뒤 요셉과 약혼하셨으니, 두 분 사이에 그런 약속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으시기 전에도, 낳으신 후에도 항상 동정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두 사람 사이의 맹약을 모르실 리 없으시건만 어찌 그런 전갈을 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든 마리아의 반문에 가브리엘 천사는 그 아들이 요셉의 아들이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상세히 설명을 하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순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순명에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선 요셉을 납득시켜 주시리라는 신뢰입니다. “아니, 평생 동정은 고사하고 외도까지 저지른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배신감에 사로잡히게 될 요셉의 모습이 불 보듯 훤히 내다보입니다. 무슨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을 신뢰하십니다. 또 간음자와 신성모독자는 재판도 없이 돌을 던져 죽이는 모세법을 모르실 리 없는 마리아입니다. 세 살 때 이미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정도면 굉장히 뛰어난 지성을 지니셨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마리아께서 아이를 잉태한 후의 여파를 짐작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마리아께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고 응답하실 때는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 주님께서 마무리하시리라는 믿음과 동시에 주님의 뜻을 따르다가 죽어도 좋겠다는 각오를 지니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주님에 대한 이러한 신뢰와 자기투신이 곧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통로였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성탄의통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마리아의 마음과닮을 때에 우리 안에서도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이종하 스테파노 신부>
  | 12.19
450 21.6%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복음 묵상

독서2:로마 16,25-27
독서:2사무 7,1-5.8ㄷ-12.14ㄱ.
복음: 루카 1,26-38

그때에 26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시작기도

위로자이신 성령님, 말씀으로 기쁘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메시아는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메시아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릴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메시아의 도래는 그래서 기쁜 일이다.

기쁨은 어떠한 걸림돌도 존재치 않는 방법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기쁨은 격정적 고민과 갈등을 거쳐야 하고, 급기야 완전한 포기를 통해 절대적 의탁에로 방향 지워진 여정 안에서 가능하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을 곰곰이 따져본다.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리아를 갈등 속으로 몰고 간다. 처녀의 잉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마리아가 다다른 종착지다. 여기서부터 기쁨은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지는데 거기에 하느님이 계신다. 인간의 불가능 너머에 하느님은 가능한 무엇을 확증하신다.

기쁨에 대한 자세는 겸손이다. 대개의 기쁨은 욕망의 성취와 완성에 대한 결과물로 주어지지만, 복음의 기쁨은 상실과 불가능 너머에 있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체험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복음의 기쁨은 절대적 신뢰가 전제된 것이어야 한다. 두렵고 떨리지만, 거기서 메시아를 만날 수 있다는 철저한 의탁이 복음의 기쁨이다.

메시아는 영광스럽게 오신다. 메시아는 또한 기쁨 속에 오신다. 영광과 기쁨이 인간 인식작용 안에서 이해된다면, 그건 메시아가 아니라 인간이 바라는 욕망의 부산물이 돼버린다. 메시아는 우리를 비켜가서 저만치에 멀찍이 떨어져서 오신다. 우리에겐 그곳이 어디든 믿고 바라고 따라가야 할 일만 있을 뿐이다.

묵상(Meditatio)

사회사목을 하다 보면 ‘연대’라는 말마디를 많이 접한다. 김규항 선생은 연대를 이렇게 표현한다. “연대란 많은 사람이 제 주체와 개성은 그대로인 채 어떤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연대는 개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개인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지혜가 연대라는 말마디 안에 놓여있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천사의 인사말은 연대에 대한 초대와도 같은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과 가치관에 대한 초대였고, 처녀였던 마리아는 온전히 의탁한다. 마리아는 분명히 자신을 밝혔다. 남자를 모른다고 말이다. 하느님은 남자를 알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만의 방법으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실 테다. 마리아는 마리아대로, 하느님은 하느님대로 각자의 주체와 개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서로는 예수를 통해 하나가 된다.

서로 다름에 대해 익숙해져야 예수 탄생의 기쁨을 우리는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자리에, 너의 방식과 사상을 담아내는 자리가 예수 탄생이다. 예수께서 오시는 게 기쁠 수 있는 것은 내 삶의 자리가 어떻게 다른 삶의 자리와 통교하고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는 데서 가능하다.

기도(Oratio)

주님, 열려있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대구대교구 박병규 신부>
  | 12.24
450 21.6%
[대구] 수태고지(受胎告知) 그리기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은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잘 알려져 있지요. 우리가 화가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천사가 세 번 말씀을 건네는 동안 마리아가 보인 세 반응, 그 표정에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우선 놀라면서도 곰곰이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사실을 토대로 단순히 묻고, 끝으로 주님의 종임을 단호히 고백하면서 메시지의 실현을 희망합니다.

천사는 전대미문의 소식,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를 오히려 기쁨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야말로 은총과 기쁨이 됩니다. 모든 슬픔의 참된 위로, 구원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성모송의 첫 구절과 더불어 새로 귀 기울일 소식입니다.

마리아는 몹시 놀라면서도 이 인사말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첫 표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후 예수님의 여정을 동반하며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순례하는 마리아의 전형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 때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깊이 살핍니다. 과연 마리아는 여기서부터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신 분, 피조물에게 창조주께서 오시도록 지상에 하느님 자리를 마련하는 분입니다. 경이와 숙고의 표정이 첫 장면의 포인트입니다.

둘째 장면은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립니다. 이를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 장면과 나란히 놓으면 중요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지만,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의 앎을 보증해 줄 표징을 증거로 요구하는 반면, 마리아는 동정과 출산이 연결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순수한 의문을 표현합니다. 편견 없는 마리아의 표정에는 의심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대화와 탐구의 진지함이 스며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천사가 성령의 힘과 하느님의 전능을 선언하고,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라 고백하며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메시지의 수용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메시지와 섭리에만 신경 쓰던 마리아는 이제야 처음으로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데, 그 응답은 단호합니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이미 수없이 되풀이해오던 구약의 사무엘의 응답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또 거기에는 영원으로부터 성부께 드리는 예수님의 화답도 들어 있습니다.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마리아의 마지막 단호한 목소리와 표정에 우리의 목소리와 표정을 겹쳐보면 우리도 마침내 수태고지를 우리 삶으로 그릴 수 있겠습니다.우리가 진정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그 모습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되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늘과 땅이 주고받는 가없는 사랑의 화음이 우리 표정에 스칩니다.

▦ 대구대교구 천지만 베드로 신부 : 2017년 12월 24일
  | 12.2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원] 진정한 권위는 봉사와 사랑에서 
!   [광주]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봉사하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   [부산]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   [인천] 그리스도교적 모든 권위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봉사적 권위이다. 
!   [서울]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청원  [1]
703   (녹) 연중 제29주일 독서와 복음 [섬기러왔다]  1600
702   [부산] 공수래 공수거  [5] 2344
701   [수도회] 자기 해방의 여정  [5] 1976
700   [수원] 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  [5] 2216
699   [대구] 내 깡통  [3] 2120
698   [군종] 부자와 하느님 나라  58
697   [서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6] 2141
696   [의정부] 소유와 나눔  [4] 2246
695   [안동] 부족한 것 하나  [2] 1077
694   [마산] 나눔의 훈련을 하자  [4] 1935
693   [인천] 거지는 ‘하느님의 배려’  [5] 2202
692   [전주] 영원한 생명  [2] 2139
691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1] 66
690   [춘천] 나눔 + 버림 = 영원한 생명  [4] 2346
689   [원주] 영적법칙  [1] 72
688   [대전] 그 놈의 돈이 뭐길래  [3] 2443
687   [청주] 부족한 한 가지  89
686   (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4] 1576
685   [수도회] 이혼, 그 뜨거운 감자  [1] 661
684   [원주] 휴가증  74
683   [부산] 창조 사업을 함께 하는 남녀  [5] 2196
682   [인천] 나비는 가비야운 것이 미(美)다.  [6] 2374
681   [서울] 남자의 감격  [6] 4365
680   [대구]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1] 2220
679   [마산] 기도의 보루(堡壘)로 진을 치자  [4] 2274
678   [안동] 사랑의 공동체 가정  [2] 2070
677   [수원]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의 완성  [4] 2466
676   [광주] 혼인은 새로운 탄생  [1] 2177
675   [전주]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간에 맺어준 사건, 혼인  [2] 92
674   [대전] 어린애 하나를 더 낳아 나눠 갖게  [2] 2235
673   [군종] 4주간의 탐색기간을 드리겠습니다  1936
672   [춘천] 최고의 기적  [2] 2371
671   [의정부] 둘이 하나가 되는 사랑  [3] 108
670   (녹) 연중 제27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3] 1657
669   [부산]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단  [2] 1823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