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40%
[대구] 겸손한 자의 권위
조회수 | 1,936
작성일 | 09.01.31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율법 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권위를 느꼈다. 더러운 영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눌려 곧바로 물러갔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러한 권위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부께 대한 절대적 순종에서 나온 것이다. 그 순종은 예수님을 성부와 일치시키고, 예수님은 그로 말미암아 악령도 두려워하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게 된다.

성부께 대한 절대적 순종의 바탕에는 예수님의 겸손함이 깔려 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해야 한다. 교만한 마음에서는 순종의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회당의 사람들이 느낀 예수님의 권위는 성부께 대한 절대적 순종의 바탕에 깔린 그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겸손은 바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인 사랑의 전제 조건이다. 겸손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는 일체를 이룬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겸손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은 겸손하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힐난을 받았던 것도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다. 교만한 자는 자기만을 생각하다 자기에게 도취되어 남을 보지 못한다.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고개 숙이고 그 분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그 분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부께 극도로 겸손하게 순명하셨다. 그리고 지고의 겸손과 순명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상의 권위를 갖게 하였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모세 역시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민수 12, 3). 하느님께서는 다른 예언자들에게는 환시나 꿈을 통해 말씀하셨으나, 모세에게는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다(민수 12, 6-8). 성모님께서도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셨고, 겸손을 강조하셨다. “주님께서는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루카 1, 5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겸손을 가르치신다.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 25-30).

지고의 겸손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게 한다는 이 역설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인의 삶이어야 한다.

서경돈 알베르토 신부
  
450 40%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여러분은 어제 하루 수돗물을 얼마나 쓰셨습니까? 우리는 수도꼭지만 돌려도 따 뜻한 물, 시원한 물을 마음대로 쓰며, 집집마다 평균 20∼30톤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식수를 얻기 위해 매일 수킬로미터를 걷는 아프리카의 여성과 어린이를 생각해 봅시다. 그나마도 오염된 물밖에 구할 수 없어 전염병을 무릅쓰고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지난 1년 동안 식품이나 약품을 얼마나 구입하셨습니까? 곳곳에서 음식물쓰레기통이 넘쳐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집집마다 먹다 남은 약품과 건강식품이 작은 상자로 한 상자는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은 영양실조나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천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백신이나 약을 구할 수 없어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어제 원두커피 한잔을 얼마에 사서 드셨습니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1,500만 명인데 하루 평균 임금은 1달러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역시 가난한 나라인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는 노예 상인에게 팔려간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하루 열 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당하며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원료를 따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빈곤, 내전, 지진, 홍수, 쓰나미 등으로 인해 가족과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천막에서 변변한 가재도구조차 없이 살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에 의하면 전 세계에 전쟁과 박해를 피해 이주한 난민이 4,37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 지구상에는 극심한 빈곤과 기아, 전염병과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은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왜 사람들에게 그 권위를 인정받았고 또 그분에 대한 소문이 왜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로 사랑하지 않으셨고 삶으로 사랑을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시고 차별 없이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 3,17-18)

오늘은 지구촌 형제들을 기억하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기도와 미사 중에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형제들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외원조사업을 시작한 우리 교구의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전화 053-422-3411)와 한국 카리타스의 해외원조 후원회(02-2279-9204)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사랑을 실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정효 예로니모 신부
  | 01.28
450 40%
[대구]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예로부터 진리를 갈망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탐구하길 원하던 사람들은 더 큰 가르침을 얻기 위해 훌륭한 스승들을 찾아 나섰다. 스승이 제자들을 먼저 불러 모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먼저 권위 있는 스승의 곁으로 모여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흔히 나름의 이상과 방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학파가 구성되었고, 본격적인 학문의 연구와 저술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 권위 있는 단 한 분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맙게도 제자들이 당신을 찾아 헤매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 친히 그들을 불러 모으셨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신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그저 흘려듣고 그분의 능력을 마냥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놀랄만한 것을 우리가 먼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놀라워 할 수 있으리라.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고 했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고 했다. 이미 우리 교회는 놀랄만한 신비를 기초로 설립되었고, 우리의 신앙도 일종의 놀람에서 출발하였음을 잊지 말자.

권위 있는 가르치심을 듣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단한 능력을 보기 위해 헤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참 스승이신 주님께서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도와주고 계시지 않는가! 가깝게는 미사와 영성체를 통해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말씀전례를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찬전례를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신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며, 주님으로 성화되고, 주님과 하나가 된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 가르치고 계신다.

권위 있는 가르침을 펴시고 마귀까지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준다. 그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성교회를 통해 이미 시작되고 실현되고 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소식을 듣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 복음에서 악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거룩한 사람이라고 고백하였다. 더러운 악령도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우리의 모든 생활 순간순간마다 주님을 참 하느님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내 안에 주님을 모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주님을 나의 참스승으로 모셔드리자. 그분의 권위에 내 자신을 굴복시켜 드리자.

<대구대교구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
  | 01.2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주님의 또 다른 얼굴, 고통 
!   [전주]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  [1]
!   [수원] 우리가 청해야할 신앙의 빛  [3]
!   [인천] 다시 보기  [3]
!   [서울] 그는 더욱 큰 소리로  [1]
!   [마산] 선생님 저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3]
!   [부산] 자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3]
!   [안동]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2]
!   [대구] 예수님을 보는 눈  [2]
702   [청주] 계란으로 바위치기  2
701   [대전] 제 눈 좀 뜨게 해 주십시오  [1] 2243
700   [원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
699   [의정부]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은  [3] 2399
698   [춘천]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1] 2245
697   [군종] 주님! 잠 좀 깨워 주십시오  1
696   (녹) 연중 제30주일 독서와 복음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5] 1625
695   [수원] 진정한 권위는 봉사와 사랑에서  1769
694   [광주]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봉사하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1906
693   [부산]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2957
692   [인천] 그리스도교적 모든 권위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봉사적 권위이다.  2053
691   [서울]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청원  [1] 1930
690   (녹) 연중 제29주일 독서와 복음 [섬기러왔다]  1601
689   [부산] 공수래 공수거  [5] 2344
688   [수도회] 자기 해방의 여정  [5] 1976
687   [수원] 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  [5] 2217
686   [대구] 내 깡통  [3] 2120
685   [군종] 부자와 하느님 나라  59
684   [서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6] 2141
683   [의정부] 소유와 나눔  [4] 2246
682   [안동] 부족한 것 하나  [2] 1077
681   [마산] 나눔의 훈련을 하자  [4] 1935
680   [인천] 거지는 ‘하느님의 배려’  [5] 2203
679   [전주] 영원한 생명  [2] 2140
678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1] 66
677   [춘천] 나눔 + 버림 = 영원한 생명  [4] 2347
676   [원주] 영적법칙  [1] 72
675   [대전] 그 놈의 돈이 뭐길래  [4] 2448
674   [청주] 부족한 한 가지  89
673   (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서 나를 따라라.]  [4] 1577
672   [수도회] 이혼, 그 뜨거운 감자  [1] 661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