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8 47.6%
[마산] “진심으로 믿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놀라움”
조회수 | 1,843
작성일 | 09.01.31
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실 겁니다. 비는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때도 있지만 무섭게 할 때도 있고 우울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많은 비 피해를 입을 때도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데 무작정 비를 맞고 있으면 아마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비는 처음 맞기가 힘들지 일단 옷이 젖고 나면 아무 두려움 없이 맞을 수 있습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는 잊고서 생활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비는 계속 내리는데 우리는 선뜻 몸을 내놓지 못합니다. 옷이 젖을까 두려워서, 감기 들까 겁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우리는 망설입니다. 하지만 일단 은총에 젖기만 하면 쉽게 은총에로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은 자기를 온전히 맡깁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무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턴지 놀라움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뎌진 우리 마음에서 놀라움과 감탄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의 권위에 탄복한 군중들의 놀라움과 감탄을 전해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군중들 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듣고 있습니다. 매 주일 새로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진한 마음을 통해서 닫혀진 영혼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영혼의 문을 열 때 비로소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롭게 다가오고 그 가르침에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진심으로 믿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놀라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실하지 못한 더러운 영의 고백을 물리치시고 오히려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신앙이 없는 바리사이의 요구는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진실한 믿음입니다.

진실한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의 권위에 맡길 때 은총의 빗물은 우리를 적실 것입니다. 그리고 은총에 젖은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에 찬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분을 전파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감탄한 군중들이 그것을 전할 수밖에 없었듯이 하느님의 은총에 온 몸이 젖은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28절)

이렇게 이웃과 함께 주님께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이 더러운 영의 고백이 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주님께 바칩시다. 진실한 삶을 통해서 나 자신과 이웃에게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이현우 신부
448 47.6%
[마산]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다(마르 1,21-28)

우리가 방금 들은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에서 처음으로 가르치셨다고 전해 줍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신앙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르침과 더불어 예수님의 첫 행동은 더러운 영의 추방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이란 사람을 자기 속에 가두어놓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담아 듣지 않으며, 자신의 뜻만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말하며, 부자유스러운 행동으로, 자기 말고 다른 모든 것은 소외시켜버리려 합니다. 거기에 믿음과 친교는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고 통제하려 합니다. 지배와 굴복만을 추구합니다. 결국 사라지고 없어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참조). 모든 것에서 모든 분이시지만, 마치 아무것도 아닌 분처럼 처신하십니다. 그런 하느님에게서 지배와 굴복은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친교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영은 분노와 경련을 일으키며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 앞에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더러운 영은 그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다.”(마르, 1,26) 하고 오늘 복음은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워합니다. 뒤틀리고 뒤집힌 세상 사물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은 사람을 자기 속에 가두어놓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제도와 구조와 법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이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자조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심으로써,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 그리고 올바른 정의와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와 우리 신앙공동체의 삶은 자신을 사로잡아 자신 속에 가두어버리는 더러운 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더러운 영이 우리 교회 안에서 발붙일 곳을 없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주일 복음 말씀을 새겨들으면서, 예수님께서 맨 처음 하신 행동이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산교구 차광호 파스칼 신부>
  | 01.2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25   [청주] 감사의 생활  [1] 2552
724   [대전]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1] 969
723   [수원] 그리스도의 왕권은 어디로부터?  [2] 2090
722   [수도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4] 1928
721   [의정부] 주님! 왕입니다요!  [1] 1998
720   [안동] 그리스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1] 2002
719   [춘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  [2] 2048
718   [전주] ‘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1] 178
717   [원주] 우리 삶의 왕이신 주님과의 만남  116
716   [서울]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2] 2581
715   [마산]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계승해야 한다.  [3] 1962
714   [대구]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1] 1887
713   [군종] 왕입니다요.  97
712   [광주] 이 세상 왕이 아니다  [1] 2026
711   [인천] 고백하자! 누가 왕인가?  [2] 2029
71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독서와 복음  [4] 831
709   [수도회] 하루 하루를 꽃밭으로  [4] 2558
708   [대전] 환난 이후 종말의 희망이  [2] 1058
707   [부산]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5] 2262
706   [수원] 시간에 대한 영원의 승리  [5] 2686
705   [원주] 역사의 완성인 종말은 분명 있다는 사실  [2] 2630
704   [대구] 빛과 소금의 삶  [2] 2075
703   [청주] 낼까 말까? 얼마 넣을까?  140
702   [광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26
701   [서울] 악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  [8] 2716
700   [인천] “미쳤어. 저렇게 왜 살까?”  [4] 2389
699   [전주] 종말론적 교회  [1] 2511
698   [의정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3] 2161
697   [춘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4] 2901
696   [안동]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한 표징  167
695   [군종] “끝에서 만나는 은혜로운 시작”  148
694   [마산] 내 삶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194
693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 세계가난한이의날  [5] 1913
692   [수도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4] 2692
691   [수원] 사랑은 작은 법이 없다  [4] 2678
690   [군종] 컵에 우유가 반밖에? 반씩이나?  [1] 2336
689   [부산] 참된 봉헌  [5] 2473
688   [안동] 나눔은 변화된 삶!  [2] 2540
687   [춘천] 정성어린 이 제물  [4] 2725
686   [의정부]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한 카리스마  [4] 2405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