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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희망 2009
조회수 | 1,904
작성일 | 09.02.06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파피용」에서 우주 범선 ‘파피용’은 인류의 희망을 찾아서 마치 누에가 그동안 지내던 고치를 떠나듯이 나비가 되어 날아갑니다. 누에가 나비가 되기까지는 자신에게 전부였던 하나의 세계인 누에고치를 버려야 하는 상실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을 견디어 내면 어느덧 하나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욥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을 살아갈 맛이 뚝 떨어지는 듯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며, 착하게 살던 욥은 어느 순간 모든 재산과 자녀, 그리고 건강마저 잃는 지독한 상실을 재앙과 같이 체험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욥이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부르짖는데, 욥이 섬겨온 하느님은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욥기>의 끝을 보면, 시련을 견뎌낸 욥은 자신의 삶에서 생생하게 하느님을 체험하고, 겸손하게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욥은 전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할 만큼, 갑자기 닥치는 고통은 우리의 계산을 넘어 있어 비합리적이게 여겨집니다. 욥이 뒤돌아보면서, 비합리적이라고 여겼던 시련과 고통을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얻은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그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말이라 이렇게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욥의 신앙에 이런 내적인 성장이 있기까지는 긴 내적 투쟁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시몬의 장모는 열병으로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는 부인을 치유하십니다. 자신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알게 된 시몬의 장모는 이제 예수님 일행의 시중을 드는 생활의 변화를 체험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에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고통은 인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한다”고 제시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몸소 이것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써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새로운 삶을 희망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 안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기도해주었으면 합니다.

김대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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