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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적
조회수 | 1,914
작성일 | 09.02.07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 보이는 것들의 겉을 보면서 지나쳐 버린다. 가끔은 지나쳐 버릴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나로 하여금 꿰뚫어 보게 하여 진면목을 보게 한다. 그것들이 내 삶을 바꾸게 하고, 내 삶을 이끌어 준다.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있었다. 왕으로서 공정한 판결을 내려 억울한 백성이 생겨나지 않고, 어리석은 판결로 못된 불한당을 석방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왕이었다. 그러나 늘 판결 때마다 공정한 판결인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만약 사람들의 마음속을 알 수 있다면, 정말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고 난 행복할 텐데” 그러자 악마가 나타나 “그런 특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은 쉽지” “악마란 공짜가 없잖아” “아니, 특별히 당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니까 내가 선심을 쓰는 것이지. 원한다면 서약서도 써 줄 수 있다” 그래도 왕은 거절 했다.
며칠 후 왕은 나랏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하의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 그 신하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왕은 악마에게 서약서를 받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알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의 그 신하가 유죄인 것은 물론이고 들키지 않았을 뿐이지 죄 지은 신하들이 수두룩했고, 아끼고 믿었던 측근들조차도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 차있었다. 사람의 속마음만 알면 세상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던 왕이 과연 행복했을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신 기적을 베푸셨다. 기적은 우리를 놀랍게 하고, 푹 빠지게 만든다. 지금도 세상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기적의 겉만 본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기적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때 그것은 진정한 기적이 되고, 그것이 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기적은 의미가 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다. 경제만 나아지면 세상이 평화롭고, 내 삶이 행복할거라는 생각 속에 빠지게 한다. 과연 그럴까? 왕의 어리석음은 어찔할까 ? 삶의 진면목은 고뇌와 고통을 통하여 있다.
예수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저희에게 주소서. 아멘.

나진흠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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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도 은혜는 갚을 줄 알건만…….

어느 외딴 섬에 주민들이 100여 명 살았는데, 육지가 멀어 병원에 가기 힘드니 온갖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의료 봉사단이 와서 주민들에게 무료로 건강검진과, 질명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100여 명의 주민들 모두 건강검진을 받아 병이 심한 사람은 수술도 받고 약을 타서 먹기도 하여 모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봉사가 끝나고 의사들이 떠나던 날, 주민들이 모두 부둣가에 나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섬 주민들에게 10여 명의 의사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을,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을 되찾아 준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섬 주민들은 의사들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짐승들도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얼마나 알고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을 하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병자들에게는 병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는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이 사건은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교회와 성사를 통하여 세상 종말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인간들은 눈앞의 이익과 쾌락만 찾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는 것은 과학기술과 문화와 예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와 예배를 드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얼마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불평만 하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살아가도록 모든 은총을 주시고 끝에 가서는 천국을 주시는 무한정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김교산 알체리오 신부
  |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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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주일 말씀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 주시네(화답송).
제1독서는 선한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욥은 고통 중에도 믿음으로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은 욥의 고통 중에 그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심으로써 선(善, Goodness)을 되찾아 주십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선이 악보다 강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현존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말씀과 교리
인간을 죽음의 그늘 아래 버려두지 않으셨다(성찬기도 제4양식).
하느님께서 왜 악을 허용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원죄로 인하여 인간은 “손상되고 악에로 기우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407)고 말합니다. 즉, 원죄 때문에 인간은 불완전해졌고, 이로 인해 악이 존재하고 따라서 인간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습니다.

악에 대하여 생각할 때 하느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고 하였고, 부활찬송(Exultet)은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죄에 대한 승리는 죄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줍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420).

사랑과 선의 근원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악의 권세를 부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의 치유를 가져다주십니다.

말씀과 성사
성사는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을 현존케 하고 실현시킨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한 생명을 줌으로써 원죄를 없애고 인간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합니다. 하지만 약해지고 악으로 기우는 인간 본성의 경향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세례 후에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회개와 내적 참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성령의 힘으로 당신의 치유와 구원사업을 계속해주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두 성사, 즉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입니다.

말씀과 생활
·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악을 이길까요?
· 나는 하느님의 치유와 사랑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주국진 보나벤투라 신부
  |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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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밤낮 쉬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회당에서 병자들을 고쳐 주셨고,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셔서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저녁에는 거리에서병든 사람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장소에서든, 그리고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시고, 또한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신다는 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는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는가?’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 그들은 예수님께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몰려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만을 듣기 위해서 찾아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채우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면서도 진정으로예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쁨과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도 자주 하느님께 기도드리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청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요구를 먼저 앞세울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요구가 이루어졌다 해도 하느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그 모든 기쁨과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기쁨과 영광으로 받아들일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더욱 더 귀 기울이고,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멘.

<대구대교구 이창영 바오로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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