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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신앙인의 모습
조회수 | 1,974
작성일 | 09.02.07
고해성사를 집전하다보면 오랜 동안 냉담을 하시다가 성사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그들의 경우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교회를 다시 찾아올 때는 마음의 큰 변화를 일으켰던 동기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본당에서 장례가 날 때 가끔 그 변화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느끼게 됩니다. 장례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그 동안 냉담해 왔던 고인의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고해성사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고인의 유언이나 예의로 성사를 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신자들의 기도와 도움에 마음이 움직여진 것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의 기도와 위로 속에서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던 것입니다. 비신자든 쉬는 교우든 간에, 사람들은 신앙인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행위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비롯해서 수많은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을 고쳐주고 계십니다.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병에 걸리면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이지만, 정신적으로도 참으로 외롭고 힘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해방과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의 치유를 통해서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치유 기적의 본질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신원과 사명을 늘 깨닫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통교를 이루셨고, 그분의 뜻을 찾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행위가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도 당신 행위의 본질이 복음 선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일이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복음 선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병의 치유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체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은 예수님의 일이면서 우리 신앙인에게 주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심으로서 복음을 선포하신 것처럼, 이웃을 향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실천은 무엇보다 힘있는 전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항상 기도 안에서 주님과 일치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과 사명을 분명히 알게 하고 우리의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 모두가 기도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고, 행동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황인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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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징과 믿음의 관계

상수도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에 우리들은 주로 동네 우물이나 아니면 지하수를 파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올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좀 산다는 사람들은 지하수에 배관을 연결하여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기도 하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경우 먼저 안에 한 바가지의 물을 넣고 펌프질을 해야 지하 깊은 곳의 맑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다. 우리는 이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지하의 물을 마중나간다고 해서 그렇게 명명되었는지 모른다.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른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테16,1-4) 하시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 다른 사람들은 구하면서 자신은 구하지 못하는 군. 우리가 믿게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시지."( 마르 15,31-32)

"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에게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마르 11.24)

여기에서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 측과 예수님 사이에 서로의 요구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백성들 편에서는 표징을 먼저 요구하고 예수님 편에서는 믿음을 먼저 요구하신다는 사실이다. 이 긴장 관계는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도 그 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표징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려면 바른 믿음을 그분께 보여라. 그러면 만사는 형통이다. 무엇을 주면 믿겠다는 약은 술책은 우리 신앙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고 끝없는 요구의 삶으로 우리 신앙은 함몰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설득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분을 이기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분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지하수의 맑은 물을 원한다면 마중물을 먼저 넣어야 하듯이 하느님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먼저 바른 신앙을 갖추어 그분 앞에 나타나길 바란다.

정중규 신부님
  |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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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첫 번째 의무’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일생을 예수님을 본받아 살려고 한 사도 바오로도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첫 번째 의무라는 것 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듣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왜 내가 믿는 신앙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증거 하지 못합니까?

소설 ‘대지’의 작가인 펄 벅 여사는 자폐아를 가진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차라리 이 아이가 죽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외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자폐증 신자인 우리를 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속이 타시겠습니까? 복음전파는 내 안에 비겁함으로 가분다리처럼 붙어 있는 자폐증 마귀를 몰아내는 가장 좋은 자가 치유 행위입니다.

어릴 때 성묘 가느라 새벽에 아버지를 따라 구마산 역에 기차를 타러 갔는데, 역 안에서 사람들 뒤통수에 대놓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서도, 60여 년이 된 아직 도 뇌리에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입 있고 발 있는 멀쩡한 사람이, 자폐증 환자 흉내나 내면서 사는 요즘 우리를 보면 누가 그렇게라도 한번 외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교는 신앙의 표현이며, 내 신앙의 결론입니다.

<마산교구 김상진 레미지오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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