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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수님의 선택 기준
조회수 | 2,132
작성일 | 09.02.13
작년에 친구와 함께 디지털카메라를 사기 위해 용산에 있는 한 전자쇼핑몰에 갔습니다. 친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현재 팔리고 있는 디지털카메라의 종류와 가격에 대해 이미 통달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의 수첩에는 가격대, 제품 성능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사전준비를 본 저는 10분이면 쇼핑이 끝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이라는 저의 판단과는 달리 친구는 30여 개의 점포를 들러보며 끊임없이 제품들을 비교하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1시간 30분 동안 여기저기 휘젓고 다닌 끝에 결국 친구는 한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전철을 타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구입한 제품이 얼핏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지도 않고 또 싸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별건 없어. 플레이어를 파는 형제님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샀어. 계속 웃잖아.”

저는 기능이나 가격 등이 선택 기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기대를 벗어난 사뭇 의외의 대답이었지요. 30여 개의 점포를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지만 종업원이 자신을 정말 반갑게 맞아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곳은 그곳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이성적으로 물건을 고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자신을 반겨주며 기분 좋게 해주는 점포에서 제품을 샀던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하는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나병 환자의 아픔을 떠올려 봅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나병이 걸리는 순간,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지요. 심지어 고향과 가족에게서 쫓겨나게 됩니다. 지금도 혼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당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내쳐졌을 때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런 아픔 속에서 나병 환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 간절한 마음, 당신께 대한 간절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결코 그가 부유해서, 능력이 많아서, 또 앞으로 하느님 일을 하는데 큰일을 할 것 같다는 조건을 달고서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서 물건을 구입하는 기준이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이 아니라 종업원의 친절함 때문이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부와 명예 그리고 능력 등의 세속적인 기준을 보시고 우리들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이 노력해야 할 것은 분명해집니다. 더 많은 부와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 안에서 비로소 깨끗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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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소외당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덕적도에서 사목하고 있는 신부로서 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미묘합니다. 아직도 섬이 저에게 어떠한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흑산(黑山)이라는 제목으로 저에게 다가온 책을 읽으며 작가 김훈 씨가 정한 후기 표제가 마음을 아련하게 울려왔습니다. 표제는 다음과 같습니다.“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이 책에서는 조선 후기에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백성의 삶이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내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구석이 복잡했던 이유는 이 소설에서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이 제가 항상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섬 주민들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흑산도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떠올리면서 문득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느껴야 했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형태였을지 궁금했습니다. 천주교라는 신념을 관철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을 극단적인 형태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과연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었을까요?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마음을 문장으로 더듬었던 작가 김훈 씨는 후기 한 단락을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가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위에 쓰여 있는 문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유한한 언어로 인간의 세분화되어 있는 이념체계를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수많은 사람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자신을 이루고 있는 사회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과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주체는 무엇인가?”“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내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고통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오늘 복음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나병 환자의 심상(心想)을 위로자의 모습으로 어루만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단 한 번도 나병 환자의 과거라든지 그가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묻지 않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나병 환자에게 드리워져 있던 어두운 의식을 너무나 확연하게 통찰하고 계셨던 예수님은 치유와 위로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며 안아주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토록 꺼렸던 나병 환자에게 있어서 예수님과의 만남은 이해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으리라 짐작됩니다.

항상 이와 같은 만남을 꿈꿔봅니다. 철저하게 소외당하였던 모든 시대의 마이너리티(minority)들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일깨워 주셨던 예수님의 느낌을 끊임없이 되살려낼 수만 있다면……. 가톨릭교회가 마이너리티들의 진정성을 단 한 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철저하게 소외받은 이들을 두려워하고 외면하지 않는 나를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정성종 요한베르크만스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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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된다는 것

‘나는 눈앞에 놓인 사람, 사건, 기회를 말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을 허락하고 준비해준 주인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앞에 놓아두고 잠시 나의 대답을 준비해 본다. 겉으로 드러내 보이려는 욕구를 잠재우고, 내면의 실체와 만나고 싶은 바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병의 치유도 놀라운 뜻으로 다가오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신 삶의 자세를 더 깊게 바라보게 된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주님의 은총으로 깨끗해지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신 것이 아닐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는 숨기고 싶어 하고, 자랑거리만 늘어놓고 싶어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을 고백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활동 중심주의가 아닌 내적 성장의 시간을 갖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 저절로 복음의 향기가 펼쳐지게 됨을 깨닫도록 함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자랑하거나 돋보이려는 가벼운 존재의 틀에서 벗어나 내 삶의 가치를 묵묵히 그러나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교회로 초대받았음을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 나의 병을 고치시고 깨끗하게 만드신 것임을 바오로 사도의 고백에서도 느끼게 된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1코린 10, 31-11, 1)

우리의 바람이 아닌 하느님의 복음 선포가 새로운 창조의 세계, 일치와 화해의 선언으로 바뀌는 삶을 일궈내시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외적 선포로서의 삶도 필요하지만, 정신과 마음이 빠진 공허한 행위가 더 아쉬움과 어둠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지만 우리의 징표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안에 주님의 선물이 가득하다. 우리의 부족하고, 더럽고,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도 주님께서는 어루만지며 회복시켜 주시고, 새롭게 살아가도록 다가오신다. 아쉬울 때 청하는 것이 아닌 치유 후에도 깨끗한 삶을 살아가려는 내적 준비를 통해 그 뜻을 풍요롭게 만들 수만 있어도.

나병 환자도 처음에는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신기한 표징만 전하였음을 주의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서 작용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새 날을 시작해보자.

<인천교구 차호찬 시메온 신부>
  |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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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입니다. 어떤 바보들의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수박을 귀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을을 지나던 어떤 사람이 이 어리석음을 없애주려고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수박을 급하게 먹어 치웁니다. 이 행동을 본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아마 우리도 저 귀신을 먹듯이 먹어 치울 거야. 도망가자.”

또 다른 사람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수박을 귀신으로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마을 사람들과 함께 깜짝 놀라며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서 조금씩 수박에 가깝게 다가서게 했습니다. 결국 이 수박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서 더 이상 수박을 귀신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지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예수님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당신의 전지전능하신 힘으로 세상의 온갖 죄악을 직접 쫓아내는 편이 훨씬 더 쉬울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같이 이겨낼 수 있도록 그래야 더 심한 죄악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시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사랑을 기억하면서 큰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 사랑이 오늘 복음에 뜨겁게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시지요. 어려운 사랑의 길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우리 역시 쉽고 편한 세상의 법칙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직접 손을 대신 장면이 등장합니다. 당시에 나병 환자를 만지는 행동은 율법으로 금지된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병 환자를 직접 만지십니다. 커다란 스캔들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외적 불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정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동이셨습니다. 즉, 나병 환자가 지닌 육신의 상처나 허물 때문에 그를 멸시하고 혐오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눈으로 그 안에 있은 마음의 깨끗함을 보셨고, 그 깨끗함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만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외적 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단죄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얼마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 연예인들의 상당수가 정신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잘못된 소문 하나가 퍼져서 인터넷 안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면 도저히 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리는 우리였습니다. 소위 ‘~카더라.’ 통신에 의지해서 거짓이 진짜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우리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려 할 때,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떠올려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은 따뜻하게 변할 것입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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