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2 31.6%
[대구]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조회수 | 2,027
작성일 | 09.04.18
저는 생각과 다르게 말을 하고 나서는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더욱 글은 내 생각대로 써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한 쪽 밖에 되지 않는 주보 원고 청탁 받고도 마감시간이 다 돼서야 이렇게 쓰게 되었고 그것도 몇 번씩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고 인터넷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대중문화의 영향 아래 살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특징은 그 대중 속에서 개인이 몰각되기 때문에 높은 윤리의식이나 책임의식은 희박해지고 맙니다.

어설픈 과학의 조작은 미숙한 지성인들을 불신앙에로 인도했으며 과학만능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조를 조장하여 실증주의로 치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도 깊이 있고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점점 가벼워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참으로 걱정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영적인 성장보다는 외형적인 성장을 더 중시하고 질적인 변화보다는 양적인 변화에 더 신경을 쓰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이것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을 벌려 놓고 정신없이 바빠 깊이 있는 삶을 살 여지가 없습니다. 필요 없는 필요를 너무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루카10,42)인데 말입니다. 고독 속에서 생각이 선별되듯이 깊이 있는 삶에서는 주제가 선별되는 법입니다. 겉만 보고 바삐 돌아가는 세상은 고결한 상태를 잊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가 여러 사도직 활동들을 벌려 놓고 그 성패에 희비를 걸고 온갖 시간과 정력을 투입하며 그걸 선교로 생각한다면 영성적 차원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하느님까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세속화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있는 것이지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성공이나 실패에 달린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으려고 하지 않는 과학만능, 실증주의. 이성이나 논리를 따지는 오늘의 우리가 아닌지요.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는 토마스의 말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히브 11,6)

토마스 사도의 이름을 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알기위해 믿는다고 했습니다. 아는 만큼 사랑할테니까요.

손성호 요셉 신부
  
452 31.6%
“평화가 너희와 함께!”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3년간 모든 것을 걸고 뒤따라 다니던 스승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잡혀간 것을. 스승은 며칠 동안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중은 그를 십자가형으로 몰았고 총독 빌라도는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스승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받으며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었습니다. 무슨 흉악범도 아닌데 산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아,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스승의 주검이나 정성껏 처리하려고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스승의 주검이 사라졌습니다. 제자들은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싸인 채 한 집에 몰래 모여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그들 가운데 죽었던 스승 예수님이 갑자기 보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너무도 당황스럽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스승은 친히 당신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내가 맞다. 너희의 스승 예수다. 나는 살아 있다.”라는 말을 그 한 동작으로 보여줍니다. 상처 입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이제야 그들은 깨닫습니다. ‘맞구나. 스승 예수님이 살아 계시구나. 분명히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셨구나.’ 그러나 함께 있지 않았던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했겠지요. 그는 자신이 직접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8일 뒤 그들은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전과 다름없이 문을 잠가 걸었습니다. 이제는 토마스도 함께 있습니다. 잠시 후 또다시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토마스에게 그분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손가락을 넣어볼 일도 없습니다. 그분입니다. 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평화의 선포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싶은 다른 말씀이 많이 있을 텐데 그분은 평화를 가장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분이 선포하신 평화는 단지 걱정거리나 불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다시 살아났고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희망의 선포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 바로 그 자체가 평화입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떤 두려움과 불안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나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한인갑 베네딕토 신부
  | 04.2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688   [수도회] 오늘 나로부터  [1] 883
687   [대전] 하느님 나라의 비유  1200
686   [전주]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나무  [1] 1264
685   [부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1] 1299
684   [인천] 세상의 도전에 대한 우리의 믿음  1
683   [군종]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꾸준함의 결실”  73
682   [서울] 작은 것이 크다  [2] 1383
681   [수원] 하느님 나라는 씨앗과 같다  [2] 1475
680   [의정부] 하느님께서 심으시고, 성장시키시고, 열매를 맺으십니다.  74
679   [춘천] 아버지, 아버지의 말씀이 저희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소서  [1] 1054
678   [청주] 가장 훌륭한 선교는 사랑의 실천  67
677   [대구] 하느님 나라의 씨 뿌리기  [1] 1664
676   [마산]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1] 1732
675   [안동] 하느님 나라의 표지(標識), 신앙인의 말과 행동  [1] 1300
674   (녹) 연중 제11주일 독서와 복음 [겨자씨 비유]  [3] 1292
673   [수원] 영적 눈을 깨웁시다.  137
672   [청주] “저 여기 있습니다.”  116
671   [의정부] 하느님의 뜻을  110
670   [서울] 나의 삶 속에  115
669   [원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06
668   [춘천] 자유로운 순명  112
667   [대구] 가치관 선택  113
666   [군종]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가족”  223
665   [마산] 우리는 모두 승리자입니다  225
664   [안동] 하느님께 미친 사람이 되어야  244
663   (녹) 연중 제10주일 독서와 복음   [1] 215
662   [수도회] 사랑의 실체  [2] 2286
661   [전주] 사랑은 우리 삶의 본질  [3] 2343
660   [수원] 형제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  [2] 2411
659   [대전]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  1221
658   [청주] 묵상 : 꽃이 진다고  109
657   [마산] 주님의 사랑 안에서......  [3] 1904
656   [부산] 예수님은 하느님이 어떤 사랑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5] 2458
655   [안동] 벗(친구)이라 부르겠다  [3] 2463
654   [대구]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2] 2408
653   [인천] 짝사랑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누가…?  [6] 2280
652   [서울]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5] 2512
651   [의정부] 주님, 당신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1] 82
650   [춘천] 서로 사랑하여라  [3] 2590
649   [군종]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1] 88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