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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8주일 독서와 복음 [나는 생명의 빵이다.]
조회수 | 1,429
작성일 | 09.07.31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탈출기 16,2-4.12-15

그 무렵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4,17.20-24

형제 여러분, 17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22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23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24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24-35

그때에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묵상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을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분께 ‘삶의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기에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전혀 아닌 곳’에 가서 자신과 가족들의 앞날을 묻고 있습니다. 답이 나올 리 없습니다. 생명은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어떤 생명이든 주님의 섭리 안에서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삶이 밝아집니다. 그것이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육체는 활기찬데 영혼은 굶주려 있다면 삶의 균형은 무너집니다. 사는 것이 불안하고 왠지 허무한 것은 영혼이 보내는 ‘갈증의 신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심히 넘깁니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기에, 불안과 허무는 더 심해집니다. 사람들이 물질에 매달리고 본능에 탐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에게 생명력이 주어져야 합니다. 영적 음식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서 답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빵’이라 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영성체를 통해 생명의 빵을 체험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영성체인지요!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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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 독서와 복음 해설

제1독서(탈출 16,2-4.12-15) 해설 /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내려 주리라

성경에서 구원이란 단순히 하느님이 거두시는 승리를 말하지 않고, 구원 자체를 적대하는 세력을 극복하는 행위와 활동으로서 나타난다. 이 같은 측면이 탈출신학에 있어 본질적인 측면으로서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된 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면에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극복해야 할 적대 세력은 파라오의 정치권력・거짓 마술가들・물・ 바다와 같은 세력이었고, 사막과 광야를 건너는 동안에는 뜨거운 열기・뱀・갈증・기아였고, 마지막으로 복된 땅에 들어와서는 가나안 백성과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이방인 왕들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밀어 닥치는 반대 세력도 세력이지만, 더 극복하기 힘든 적대 세력은 이스라엘 백성의 내부에서 나오는 세력이었다. 이미 모세 자신이 자기 백성의 저항에 부딪힌 적이 있다(탈출 4,31). 파라오가 강력한 억압 정책을 발동하자, 백성은 즉시 모세의 지도력 을 문제 삼아 따지고 나섰다(탈출 6,9).

이집트인들에게 재앙이 내려지고 있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극히 소극적이었다. 열 번째 재앙이 내려지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믿고 모세의 명령에 따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백성은 하느님께 반항했다(참조. 탈출 14,11이하; 17,2이하; 민수 14,2-4 등). 백성이 ‘불평했다.’는 뜻은 구원하러 개입하시는 하느님께 반항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백성이 의심하고 반항하자, 주께서는 신비스런 음식인 만나를 선물로 내려 줌으로써(15절),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현존하여 계심을 드러내 보이신다(12절). 만나를 내려 주시면서 주께서는 각자 필요한 양 만큼만 가져가고 안식일 분량은 그 앞날에 가져다 놓도록 지시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당신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기를 바라신다(탈출 16,1-30). 만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상징일 수도 있고(신명 8,2이하), 종말론적 잔칫상에 나오는 ‘천상 음식’일 수도 있다(지혜 16,20-29).

신약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은 먹고도 죽는 만나가 아니라 예수 자신이시고(요한 6,32이하), 예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요 인간을 위해 바치신 당신 살과 피와 목숨이다. 오늘날에도 예수께서는 당신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 주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는 제사를 통하여 인류가 먹고 영원히 살게 될 참된 음식을 베풀어주고 계신다.

제2독서(에페 4,17.20-24) 해설 /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로운 인간’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 가운데 일치를 유지하도록 권고하고(4,3),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신비스런 몸(신비체)을 특징짓는 여러 가지 특은에 대하여 말한 다음, 회개한 그리스도인일진대 그에 합당하게 올바르고 거룩하며 진실한 생활을 하라고 권고한다.

실상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이며,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참조. 로마 1,7; 1코린 1,2)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참조. 로마 1,6)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일진대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려야 한다.”(23절)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로마 6,6)

‘새로운 인간’은 끊임없는 투쟁으로 ‘옛 인간’의 행실을 끊어가는 사람이다. ‘새 인간’은 또다시 “마음이 어두워져서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지 않으려고”(참조. 20절)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이다. ‘새 인간’은 방심하지 않고 ‘불의와 미움’에 빠지지 않고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기로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복음(요한 6,24-35) 해설 / ‘사람의 아들’이 주시는 음식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이다

‘음식에 관한 담화’의 첫째 부분은 26절부터 시작된다.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이룩하신 기적들을 ‘사람의 아들이 이룩한 아버지의 업적’으로 알아듣도록 초대받고 있다. ‘업적’에 수반된 말씀이 가지는 구실은 매우 명백하다. ‘사람의 아들’은 지상 생활에 필요한 양식도 주며, 동시에 영원한 생명도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해 준다.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서도 그 기적들이 말하려 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물질적 음식과 배부름에만 관심 있었지, 참 생명 자체이신 예수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일반 음식은 배부르게 먹어도 마지막에는 죽고 말지만, 예수의 생명과 마음을 받고 그 생명과 마음으로 살아가면 죽어도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유다인들이 예수께 청했어야 할 음식은 온갖 인간적 수고와 노력을 무한히 뛰어넘는 종말론적 시기에 내려지는 풍요로움이다(참조. 이사 55,1-3).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 주시는 그 음식은 온갖 인간적 공덕을 초월하고 인간의 온갖 상상과 소망을 무한히 초월하는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음식이다. 그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부활한 것이다(요한 11,26).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음식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씨와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바치신 그분의 애정과 사랑과 살과 피가 참된 음식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그분의 마음씨에 따라 그분처럼 모든 인간들(인간이라면 하나도 빼지 않고 인류, 그 중에서도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는 인간들)을 위하여 애정과 사랑과 살과 피와 목숨까지 바치고 음식으로 나누어 주기로 결심하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분의 인류 구원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인간들을 진정으로 살리고 일치시키고 부활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음식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 사랑뿐이다.

우리신학연구소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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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많게 한 기적의 현장에 있던 군중은 예수님의 일행을 찾아 나섭니다. 군중이 기억하는 것은 빵의 기적으로 자신들의 육신의 허기가 채워졌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빵의 기적은 영적 선물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주심으로써 영혼을 배부르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믿으면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더 이상의 배고픔과 갈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원의를 충만히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양식에만 맛들이다 보면 영적인 양식에 대한 입맛을 잃게 됩니다. 주님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이 해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소화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참된 인간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식단을 끊어야 합니다.

매일미사 2012년 8월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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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찾아 얻도록 제게 지혜를 주소서.

▬ 세밀한 독서(Lectio)

사람은 보이는 많은 것 가운데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큼만 그리고 추구하는 것만 보게 마련입니다.

군중이 예수님과 그분의 일행을 찾아 나섰던 이유는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에 대한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는’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요한 6,24-26; 참조: 6,1-15)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27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것’을 볼 수 있고 그 가치를 알고 있다면 누가 ‘썩어 없어질 것’을 구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 주는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표면에 와닿는 현실에 몰두하며 물질적인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서의 고유개념으로 ‘인간구원’을 의미하며, 공관복음서의 ‘하느님 나라’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3,5; 마르 9,43.47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사람의 아들이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요한 6,27 참조) ‘사람의 아들’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칭호로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지상에서 활동하다가(1,51) 다시 천상 영광에로 들어 높여질 분의 정체를 시사합니다.(3,13-14; 6,62; 12,23.34; 13,31-32)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확증된 하느님 계시자(6,27ㄷ)로서 사람의 아들이 주실 천상의 선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빵”(33절) 곧 예수님 자신이십니다.(35ㄴ절)

이 ‘참된 빵’을 얻는 조건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29절) 그러나 ‘하느님의 일’이 율법실천에 있다고 생각하는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생명을 얻으려고 합니다.(28절) 마치 우리 자신이 스스로 공덕을 쌓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우리 믿음에 있으며, ‘믿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어떤 성과가 아닙니다.(39-40.44절) 믿음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그분의 구원의지를 받아들여 따르는 우리의 전인적인 신뢰에 있습니다.(3,14-16; 10,25-27 참조) 그럼에도 군중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구원자라면,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같이 오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상적 기적을 보여줄 때 믿겠다고 함으로써 예수님께 대한 불신을 드러냅니다.(6,30-31)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를 통해 만나를 주신 분은 “내 아버지”(32절)라고 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의 신원을 드러냅니다. 그뿐 아니라 만나를 ‘내려 주었다’는 과거형 동사에서 참된 빵을 ‘준다’는 현재형 동사를 사용해 메시아 시대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4,23 참조)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참된 빵’은 만나보다 뛰어난 ‘생명의 빵’이며, 신적인 본질과 생명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빵’임을 나타냅니다.(6,33)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물을 청하듯이(4,14-15) 그들은 단순히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6,34)라며 기적의 빵을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33.35ㄱ절)라는 결정적인 자기 계시를 통해 청중들한테 ‘오는 사람’, ‘믿는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는 한편, ‘배고프지 않을 것’과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구원을 약속합니다.(35절)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될 것입니다.(27.29절)

▬ 묵상(Meditatio)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생명의 빵, 곧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예수님께 있는데, 마치 우리를 살리는 것이 ‘만나’에 있는 것처럼 지나갈 물질세계에 희망을 걸며, 생명의 빵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은 아닌지요? ‘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뿌리는 무엇인지, 과감히 ‘만나’를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성령의 인도를 구합니다.

▬ 기도(Oratio)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이사 55,2)

▦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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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인류를 더불어 살게 하고
영원히 살게 하는 참된 음식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집트를 벗어난 ‘탈출체험’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집트 탈출은 과거의 두 가지 체험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는 이집트 탈출에 일단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약속된 땅에 도착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고, 또 한 가지는 끊임없이 진군하여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매순간 특히 어려움을 당할 때 하느님이 언제나 현존하고 직접 개입하신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체험은 그리스도인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결코 안심하거나 안주할 수 없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이 강력하신 당신 팔을 펼쳐 인류 역사 현실에 개입하고 계심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받으면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개입하신다.

하느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놓은 다음 그대로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라, 복된 땅을 향하여 광야를 거치는 여정에서 온갖 시련과 유혹을 견디어 내고 이겨 내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와주신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온갖 인권탄압과 수탈과 박해와 굶주림과 병고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민중)을 해방시켜 복된 땅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당신 성령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계신다.

그들에게 자기네 인권에 대한 자각과 자존심을 일깨워 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자각과 자존심에 상응한 처신과 행동을 취하도록 끊임없이 부축하고 도와주시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취한 선택과 결정과 판단과 투신과 투쟁을 후회하지 않고 그 어떠한 시련과 유혹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꾸준히 밀고 나가도록 도와주신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된 음식은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세계 곳곳에서 압제와 수탈과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자신을 내던져 신뢰하면서 복음에 상응한 생활을 해야만, 그들은 자기네가 처한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벗어나, 굶은 배를 채울 수 있고 죽을병을 고칠 수 있다.

빼앗기고 탄압받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상태는 한시바삐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 불의(不義)의 결과요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이다. 하느님은 그 누구도 부당하게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맞아 죽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하느님이 그들에게 굶어 죽지 않도록 음식을 주시되, 그들을 자각시켜 자기 음식을 자기가 찾아 먹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방법으로 음식을 주신다.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에게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네가 처하게 된 억울한 상황을 참고 견디고 감수하고 받아들이라는 소식이 아니라, 하루 빨리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나라는 소식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날마다 먹고 살 수 있는 음식을 넉넉히 주고 계시는 아버지시다. 그런데도 인류 가운데 극소수 사람들만 호사와 환락에 넘치고 나머지 대부분은 비참한 생활을 견디고 있는 상태는 하느님의 뜻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가 아직 임하시지 않은 상태이다.

재화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위하여 공평하게 나누어 쓰이면 합심과 기쁨과 평화를 이루어 주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이어질 음식이 된다. 그렇지 못하고 유능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을, 부강국이 가난한 나라를 무시하고 이용하려드는 한, 재화는 오히려 인류공동체에 재앙을 가져다주고 분열과 증오와 전쟁과 자멸을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재화는 인류 전체의 진정한 공동선과 합심과 일치의 기쁨과 안정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이용가치로서 귀중한 가치이다.

그렇게 하여 인류 전체가 합심하고 서로 애착하는 기쁨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씨가 지배하여 이루어지는 기쁨이요 천상 기쁨으로 이어지는 기쁨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인간과 인류에게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는 음식이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과 피와 목숨을 나누어 주고 바치신 그 위대하신 인간 사랑이야말로 인간들로 하여금 하느님 소유인 재화를 함께 나누면서 합심의 기쁨을 누리게 하고 영생을 주는 유일한 음식이다.

▦ 우리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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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 먹이셨던 곳에도 계시지 않자, 그들은 그분을 찾아 배를 타고 카파르나움으로 갑니다(24절). 마침내 예수님을 찾아내고는 어떻게 그곳에 가셨는지 당황하며 묻습니다.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전에 있던 곳에는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제자들이 그 배를 타고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22절).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왜 그토록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잠시 이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개의 이적 설화 가운데 공관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유일한 설화인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6, 1‐15)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 가운데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어 그들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놀라운 일을 보고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킬 종말의 예언자 또는 정치적 메시아로 여기면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 하자, 그분은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지요(15절). 그 뒤 카파르나움으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사람들은 바로 그분을 정치적 메시아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인 듯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는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 상태를 지적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26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부르게 된 ‘이적’, 곧 ‘놀라운 일’과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신 ‘표징’은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상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이적’과 ‘표징’은 예수님의 활동과 제자들의 사명에서 곧잘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예 : 사도 2, 22. 43; 6, 8). 보통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이적’에는 그것을 지시하는 ‘표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바람과 달리 빵과 물고기로 배불렀던 이적 사건에만 마음이 가 있고, 그 속에 담긴 뜻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27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과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 13‐14)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있는 물질로서의 물 그 이상을 알지 못하였듯이, 지금의 군중도 먹어서 배부른 물질로서의 빵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신다고 하신 예수님은, 이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27절) 다른 어느 누구한테서가 아니라 예수님한테서 그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께 파견받은 분으로 그분께서 행하시는 표징들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일에 정통성과 권위를 보장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 35)

이에 그들이 다시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28절)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본디 그리스어에서 ‘하느님의 일들’입니다. 곧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여러 일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이지요.

그들의 이런 모습과는 상반되는 명쾌하고 단호한 대답이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29절)이라고요. 여러 가지 일들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이루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일’은 오직 한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음으로써 그분의 일에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대화의 상대방인 예수님 쪽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며,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해 행진할 때 만나를 먹었던 일을 들추어냅니다.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보고(6, 14 참조), 모세가 행한 것과 같은 기적을 예수님께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요. 몰이해와 아집의 두꺼운 벽이 예수님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이해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구약성경을 들고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신 분은 모세가 아니고 하느님이셨다.’라고 설명해 주시고, 지금 ‘그들에게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당신 아버지이며 그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4, 15) 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말합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34절) 그러나 그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우물로 물을 길러 오는 수고를 덜겠다는 생각에서 물을 구한 것처럼,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청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깨닫지 못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당신이 누구신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을 영원한 양식이신 당신을….

“나에게 오너라, 나를 원하는 이들아. 와서 내 열매를 배불리 먹어라.”(집회 24, 19)

▦ 강선남 형제의 묵상은 은혜롭다.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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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하신 생명의 빵에 대한 설교를 듣습니다. 모세 법을 가르치는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고 사람이 구원을 얻는 ‘일’이 기도와 단식과 자선, 십계명 준수, 성전 예식과 깨끗한 정화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나와 있는 규정을 그대로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을 바꾸어 “하느님의 일”, 곧 하느님 마음에 드는 유일한 길이 그분께서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일이라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선물인 믿음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은총이고 선물이며, 동시에 주님의 계획과 거저 내어 주시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과 그에 따른 임무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면 되고, 목마른 이에게는 마실 것을 주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군중처럼 빵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빵을 많게 하신 분을 보고 열광만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또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물질적인 빵만을 원하는 군중에게 탁월한 계명을 전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걱정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힘쓰고 있습니까?

▦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매일미사 2018년 8월 5일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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