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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생명의 빵
조회수 | 1,886
작성일 | 09.07.31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시작으로 우리는 앞으로 몇 주일 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빵"에 관하여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 든 이유는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그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기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따라 왔고 왕으로 모시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담긴 뜻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매여 방황합니다.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매여 있고, 물욕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것에만 마음과 눈이 쏠려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의 복음은 강한 경고의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썩어 없어지고 말 허망한 것에 매이지 말고 영원함의 원천이신 예수님께로 돌아오라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지만 아무리 잘 먹고, 좋은 것을 먹어도 결국 죽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먹고 살아가는 것에 비례해서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을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썩어 없어질 빵은 우리도 역시 썩어 없어질 존재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인 생명의 빵을 주십니다. 썩어 없어지게 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는 양식을 예수님은 주십니다. 한번 먹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것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며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을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신의 몸을 온전히 내어 놓으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 그 자체이고, 생명의 빛이며,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믿음을 통해 그분과 연결되어 있으면 우리는 참 생명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생명의 빵을 먹지 않고서는 영원한 배고픔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빵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생명의 빵에 관한 영적갈망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차호철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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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알아듣기 위하여

‘동문서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과는 다른 엉뚱한 대답을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고 싶은 빵’을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시련과 고통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알고 싶어 합니다. 신앙적인 의미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힘을 얻게 되고, 좌절하지 않고 더 높은 희망을 향해 적극적인 자기 투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삶의 의미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임준기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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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세상 속의 나

무더위에 평안들 하십니까? 농촌은 일손이 부족한데 세상은 휴가철이라 분주한가 봅니다. 그 분주한 세상 사람들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한 군중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군중들은 그저 정신없이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군중이 맨먼저 기적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해서 다시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이라는 도시로 갑니다. ‘카파르나움’은 당시 교역의 중심지여서 여타 지역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었고, 해서 외국인들도 많았고 온갖 상품들이 많아 물질적으로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곳이었기에 군중은 예수님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했나 봅니다. 다분히 세상의 논리에 근거해서 군중은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곳이 아닌 ‘호수 건너편’에 계셨습니다. 군중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예수님을 얻어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 하느님의 논리와 세상의 논리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군중은 많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한 6, 25)라는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기도 했겠지만, ‘하필이면 이런 곳입니까?’라는 군중이 지닌 세상의 논리가 묻어나는 질문이자 불만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계셨다면 자기들이 이렇게 피곤하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세상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 30)라고 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 31)고 말합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닌 자부심이며 자기들의 일상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곧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방식과 습관화된 생활양식의 결정적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참된 뜻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인 걸림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군중의 모습은 분주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군중의 모습을 통해 재화와 명예를 찾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고, 지금까지 먹어왔던 그 먹거리만을 찾아 헤매는 군중은 자신들이 생각과 행동양식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빵을 “늘” 달라고 자기들 입장에서 청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방식과 논리로만 세상의 모든 현상과 일들을 판단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의 생각과 방식에는 무디게 반응합니다. 믿음이 곧 생명이라는 진리를 분명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런 군중들과 우리들을 그래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을 찾아 헤매던 군중들이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요한 6, 24) 떠납니다. ‘배’는 운명 공동체로 서로 간에 믿음이 없으면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빵의 나눔이라는 기적을 체험한 군중은 부지불식간에 배를 ‘나누어 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이기적이고 세상의 분주함에 한눈팔고 있는 우리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안동교구 정진훈 타대오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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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생명의 빵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내고는, 그분이 어떻게 그곳에 오셨는지 놀라며 그분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까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던 분께서 이제 또 다른 종류의 양식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배불리 만들어 주시려고 다시 군중 속에 섞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보다는 ‘무엇을 얻을 생각’에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육체의 양식에만 쏠려 있습니다. 일은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일의 목적 또한 그렇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영이 아니라 육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현세에서 이익을 얻어 보려는 마음만으로 예수님을 찾습니까! 어떤 이는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면 성직자의 중재를 청하고, 어떤 자는 자기보다 큰 권력을 가진 자에게 억압당하면 교회로 피합니다. 자기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자와의 일에 다리를 놓아 줄 것을 바라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원하고 어떤 이는 저것을 원합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단지 예수님만을 원해 그분을 찾는 이는 참으로 드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너희는 다른 것을 위해 나를 찾는다. 나를 원해서 나를 찾거라.’ 당신 자신이 곧 양식이라는 진리를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세상에 수많은 민족이 있건만 만나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배부르게 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너희는 어리석게도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생각하는구나. 너희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좁게, 단지 한 백성에게 양식을 주시는 것으로 당신의 자애를 드러내려 하셨다 생각하느냐?”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이라 생각하지 마라. 너희는 온 세상을 확실히 배불리 먹이고 완전하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의 외아들이야말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모든 이성적 피조물에게 주신 참된 만나,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람들의 몸을 배불리 먹이신 것은 그들이 덧없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을 추구하게 하려는 뜻이었을 뿐임을 사람들이 알기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음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인정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이신 그분은 거룩하신 분의 인장, 곧 날인이시기에 우리는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도 하느님의 인장을 받으며, 그 인장은 우리 안의 사랑과 완전함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듣고도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군중은 아직도 믿음이 모자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또 가르치십니다. 당신께서 방금 말씀하신 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밝히며, 군중의 생각을 덧없는 빵과 포도주에서 서서히 당신의 참된 몸과 피로 돌릴 기회를 찾아내십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신 그분은 우리의 유일한 생필품입니다. 그분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와 생명을 주는 유일하게 참되 빵이시며, 만나는 예시였을 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그분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약속하신 물이 그녀의 구원을 보장하듯 먹는 이를 새롭게 하고 계속 살아가게 해 줍니다.

▦ 안동교구 최상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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