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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손이 아니라 달을...
조회수 | 1,690
작성일 | 09.07.31
1960년 7월 뉴욕에서 활동하던 ‘가톨릭일꾼’의 ‘도로시 데이’는 자신들의 집이 지하철공사와 재개발로 뉴욕시에 수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보상받아야 할 집값에 대한 이자를 3,579달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자를 거부하여 이 돈을 뉴욕시에 돌려주며 편지를 썼습니다. 초기 가톨릭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이윤체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 이자가 누구에게서 오는지, 돈은 생산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현재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편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초기 공의회의 모든 가르침들은 대부 제도를 금지했고 돈을 빌려주어 이자로 돈을 버는 것을 비난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중세기의 교회법도 이자 대부제를 금지했고 이자로 번 이윤은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다양한 칙령에서 명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섬김에 대하여 물질주의적 시각을 갖는 사람은 이윤을 취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 형제들에 대한 섬김의 의무를 임금 없이 수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어느 프란치스코 회원은 문명의 가장 큰 재앙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 체제에서 우리 자신도 매일 수많은 작은 방식으로 타협하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할 수 있는 껏 그런 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뜻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기적들은 징표이고 그 징표는 예수님을 통해서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빵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보낸 이를 믿는 것이고 그분이 생명의 빵임을 믿는 것입니다. 즉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어야 다른 모든 것이 충만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배고프고 지쳤으며 의미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노예로서 배부른 것이 더 낫다는 불평을 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도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표징이었습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우리의 여정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원하고 여정의 목적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배부르기 위한 방법을 택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부족하지만 가톨릭 일꾼처럼 본질을 바라보고, 다시 한 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해인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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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빵

오늘 요한 복음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믿으라 하고 사람들은 믿음직한 표징을 보여달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에게 대중성을 지닌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뜻을 중심으로 서로 모여 마음을 열고, 물질을 나누었습니다. 모두 풍족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부족함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미 하느님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총을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총의 풍부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는 순간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은 은총을 깨닫지 못합니다.

육적으로 배고프지 않을 빵을 달라고만 합니다. 사람들은 그 옛날 조상들이 광야를 헤매며 굶주릴 때, 모세의 도움으로 ‘만나’를 먹고 살게 되었다고 모세를 칭송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니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육적인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했지만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한 오병이어의 기적은 생각을 바꿔 이웃을 초대하고 마음을 열어 나누는 것이기에 한 번 먹고 끝나는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생명의 빵을 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김유철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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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양식을 달라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그 불평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만나를 처음 대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묻자 모세는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다하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영원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인간은 생명에 더욱 집착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내가 빵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생명의 빵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일상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을 끝없이 유지하게 해주는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뛰어넘는 양식으로서 “생명의 빵”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생명의 빵”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뢰와 의탁’이고, 두 번째는 ‘추종’입니다. 병자가 병이 낫기 위해서는 의사를 신뢰하면서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고 생활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빵”을 예수님으로부터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신뢰와 의탁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온전한–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신뢰와 의탁을 원하십니다. 그와 더불어 추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이시기에 당신을 내어 주셨던 것처럼, 사랑이신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김으로서만이 “생명의 빵”을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의정부교구 김시용 베드로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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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우리의 보양식인 성체

얼마 전인 7월 27일은 중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중복 때우리들은 보양식을 먹으며 이 더위를 이겨 냅니다. 여러분들은 중복 때 어떤 음식을 드셨나요? 누구나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먹는 자신만의 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으로 이 더위를 이겨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 역시도 당시 힘든세상에서 먹을 것을 주셨던 예수님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보다도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 중에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해 주신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제1독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이집트를 나설 때에 그곳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시 그들이 배고파지자 모세에게 배고픔을 호소하였습니다. 즉,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기쁨은 잠시일 뿐 그들은 다시 고통의 빵이라도 먹고 싶어서 아우성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시자 그들은 그 기적만을 기억할 뿐 기적의 의미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적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 때문이지 모세의 능력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가 바로이스라엘 백성이 배고픔에 있을 때 생명이 되었듯이 하느님의 빵은 우리들의 영적인 배고픔을 배불려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순서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느님의 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착취하지만 영원한 생명인 그리스도는 다른 이들과 나눔으로써 나를 배불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돈이라는 인간이 만든 물질로써 사람들을 배불리지만 우리의 영적 배고픔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채워 지게 됩니다. 즉,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믿음이 나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없을 때 우리들은 단지 밀떡을 받아먹을 뿐인 것입니다.

참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내면 깊은 원의를 채워 줄 영적 양식을 주심으로써 몸만이 아니라 영혼도 배부르게 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신 하늘의 참된 빵으로 우리에게 참 생명, 영적 생명, 하느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생명,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명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우리를 위한하느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오근 다니엘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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