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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생명의 빵"
조회수 | 2,090
작성일 | 09.07.31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무엇을 먹을까’라는 것입니다. 식사 때마다 무엇을 준비할지 고민하는 것은 보통 어머니들의 몫이지만 가족이 먹게 되는 음식 속에는 준비하는 이들의 사랑도 함께 녹아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준비된 음식에서 행복을 느끼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는 영상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가난으로 빚은 빵, 진흙 쿠키를 아시나요?’입니다.

아이티라는 나라는 중남미의 흑인국가입니다. 오랜 내전으로 가난에 시달리지만 여느 나라들처럼 아이들이 장난기 넘치고 호기심 가득한 곳이라고 합니다. 기자가 가서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 동글납작한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이 과자는 보통 과자와는 다릅니다. 땅을 파서 나온 흙을 체에 거르고 오염된 물에 소금과 마아가린을 넣는 것이 재료의 전부입니다. 이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 햇볕에 말리기만 하면 진흙 쿠키는 완성됩니다. 하나에 42원짜리 쿠키를 먹으면 3시간 동안 배고픔을 잊을 수 있게 되고 빵 하나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음식이 됩니다. 쿠키를 먹어서 온갖 병에 걸리지만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나라에서는 행복을 주는 음식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찾아온 낯선 외국인에게도 거리낌 없이 이 쿠키를 건네고 함께 음식을 나누자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라고 하십니다. 얼핏 보면 예수님의 ‘생명의 빵’과 아이티의 진흙 쿠키는 너무나 달라 보입니다.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음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유일한 음식인 그 쿠키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이들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육체를 살리는 음식을 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혼을 살리기 위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빵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신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과 뜻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명의 배고픔을 보시고 먹을 것을 구하실 때 한 어린이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실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귀 기울이고 따를 수 있는 삶,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나의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청해야겠습니다.

황성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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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의 주 통신 수단은 휴대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문자서비스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 역시 매일 아침마다 그날 우리가 가슴에 새길만한 성경말씀을 문자메시지로 보내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 문자메시지를 주로 이용합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우리 본당의 고3 학생들에게 힘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의 번호를 모를까봐 메시지 맨 뒤에 ‘빠다킹신부’라는 글을 적어 넣었지요.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여보세요.”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울리는 음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누구세요?”

보통 전화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여서 저는 몹시 당황스러웠지요. 그리고 “조명연신부인데요.”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네?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데요?”하면서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문득 ‘방금 내가 문자를 보낸 고3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주소록을 보니 맞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지요.

“나 본당신부라고.”

그때서야 알아보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연락이 다시 왔는데, ‘빠다킹 신부’라고 적혀 있어서 결혼이벤트회사 광고 전화인줄 알았다는거에요.

아무튼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서운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이렇게 응답을 하니까, ‘앞으로 문자를 보내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하지만 저를 알아본 다른 고3들의 고맙다는 답장을 보면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문득 ‘100%의 만족?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긴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인데,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는 그 모습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해 왔던 봉사와 희생을 이제는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큰 욕심입니다. 사람들에게 100%의 인정을 받겠다는……. 주님께서도 100%의 인정을 못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나는 100%의 인정을 받아서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그리고 그렇게 가슴에 많이 와 닿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욕심을 보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모든 행동과 말씀도 100%의 인정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떤지요?

오히려 내가 받는 부정적인 평가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기에……. 그리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속상해하지 마세요.

조명연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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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주라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즉 입을 옷과 먹을 음식 그리고 쉬고, 잘 수 있는 집은 더욱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먹고 살아가는 문제는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생명과 가장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먹는 문제가 가장 컸던 모양입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십니다. 군중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놀라운 체험이었고 감동 그 자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누구도 자신들에게 이렇게 배불리 먹게 해준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세우려는 것을 아시고 홀연히 그들을 떠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떠난 사실을 알게 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호수 건너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군중에게 실망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 하시며 그들을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음식을 얻는데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구하고 얻고 문을 두드려야 할 참된 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먹고 마심으로써 잠시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세상이 주는 빵이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꺼지지 않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영원히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미사를 통해 주님을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게 되고, 주님 또한 우리 안에 머물게 되리라는 확신과 믿음을 간절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인천교구 나기원 미카엘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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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던 철새들이 옥수수 밭을 발견하고 그곳에 내려앉아 옥수수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나서는 다시 날아올라 남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마리만은 다시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데 힘들게 남쪽으로 날아가는 거야? 참 바보 같은 친구들이군!’

그 철새는 이렇게 생각하며 옥수수 밭에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철새는 동료들이 모두 떠난 들판에서 혼자 먹이를 먹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료들이 괜스레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좋은 자리를 두고 구태여 멀리 가려고 하는 새들이 미련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양식이 풍부한 이곳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새라고 하면서 흐뭇해했지요.

그렇게 먹이에 취해서 며칠을 보내고 있는 동안 겨울이 가까이 오고 기온이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그 많은 먹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철새는 계속 남아서 먹이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쳐도 부른 배에 만족하면서 웅크리고 잠을 청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눈보라가 휘날렸습니다. 그리고 그 철새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택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늘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빵의 기적 뒤에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즉, 군중이 예수님을 찾았던 이유는 눈에 보이는 빵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이 빵의 표징을 통한 주님께 대한 믿음인데, 그들은 눈에 보이는 그리고 곧 사라져 없어질 것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바로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철새와 같은 것이지요.

여기서 문득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왜 찾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내게 있어서 예수님은 필요한가?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 살면서 기쁘고 행복하다면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놀러갈 때, 주일미사나 매일 바쳐야 하는 기도를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때, 그때 우리들은 주님을 불러 보지도 않습니다.

나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때에만 주님을 찾는 우리들, 내게 절실하게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만 주님께 미사 봉헌이나 희생 그리고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 바로 빵의 기적만을 보고서 예수님을 찾는 이천년 전의 군중들과 다를 바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철새가 현실에 안주해서 결국 얼어 죽은 것처럼,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입니다. 주님께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며 지금 당장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가진 손은 움켜쥔 손이 아니라 활짝 펼쳐진 빈손이다(고도원).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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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회용 Out

우리 주변에는 ‘일회용’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일회용 컵, 종이, 비누, 칫솔, 렌즈 등등….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쉽고 편하기 때문에 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회용품은 가격도 저렴하고 귀중하게 여길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물건에만 이러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 역시 일회용품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태아 낙태, 아동 학대,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 등 힘없고 나약하며 소외된 이들을 필요 없다는 식으로 버리려고 하는 많은 모습이 바로 일회용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나 자신이 일회용이라면 어떨까?’라는 것입니다. 일회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지금의 삶을 포기하듯 어렵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일회용 삶은 희망이 아닌 절망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희망을 늘 간직하면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일회용 취급을 받으면서 절망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라는 희망을 간직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증거로 빵의 기적을 행하시지요. 이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졸졸 따라만 다닙니다.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편하고 쉬운 길만을 쫓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불평처럼 우리도 자신이 원하는 편하고 쉬운 길을 얻지 못하면 계속해서 불평만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편하고 쉬운 일회용의 삶을 버리고, 대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에페 4,17)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참된 삶을 살아야 할지를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6-27)

새 인간이 되는 길,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라고 하시면서 당신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당신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이 과정이 무조건 쉽고 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순간의 기쁨을 넘어서는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래서 일회용의 삶을 뛰어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듣고서도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요한 6,30 참조), 우리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다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표징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부족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순간의 만족만을 원하는 삶, 쉽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삶, 생명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일회용’의 삶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또한 그분께 대한 굳은 믿음을 두면서 우리는 이제 ‘일회용’을 벗어나 ‘영원함’을 간직하는 참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8월 4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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