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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생명의 빵
조회수 | 1,865
작성일 | 09.07.31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생명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요한복음 6장의 말씀도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유다인들에게 자신의 신원을 밝히시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엘리야의 40일 동안 고난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음식에 힘입어서 목적지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엘리야의 음식(과자와 물)에 대한 체험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빵’안에서 더욱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과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을 받아 들여야만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생명 자체이십니다. 인간으로서 세상에 오시어 온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그 뿐 아니라 생명의 빵(음식)으로서 세상 안에 늘 함께 하십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인생여정 안에서 행복하게도 생명의 빵이신 이분을 만난 자들입니다. 새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제2독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죄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생명을 얻고 구원으로 초대된 자들입니다. 이 얼마나 크신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며 사랑입니까?

축성된 빵을 볼 때마다 생명을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게 되며 세상과 인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 우리 모두는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삽니다. 버림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을 닮아서 매일같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양재철 안토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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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을 나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5).

배고픔과 목마름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육신적인 배고픔이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요구를 들으시어 현세적인 구원을 주셨다.

둘째는, 영혼의 정신적인 배고픔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루카 4, 4).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도 채워 주셨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공허와 고독과 정신적 가난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이것을 해결하는 복음을 전해 주셨다.

세상은 지금 무엇을 먹고 또 얼마나 많이 먹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자기 배만 채우려는 이기주의가 세상을 병들게 하고 망치고 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진정한 삶에 대한 갈증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갈증과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우리가 느끼는 갈증과 배고픔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를, 아니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우리 모두를 생명의 잔칫상에 초대하시고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이사 55, 1-3).

결국 이 하느님의 사랑을, 삶의 잔칫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우리 신앙인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갈증이 사랑이냐, 빵이냐, 명예냐, 인격이냐에 따라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지며, 새로운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미사성제 안에서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라 하시며 먹고 마시라고 주신다. ‘몸’, ‘피’라는 말씀은 ‘살’과 ‘피’자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자신, 즉 예수님의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전체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기적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요,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고 우리를 신앙에 인도하는 것이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역시 하느님 현존을 나타내면서, 하느님의 속성 중의 하나인 ‘나눔’을 보여 주신 사건이다.

성체성사의 의미는 명료하다. 나눔의 신비이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오늘 말씀이나 최후만찬 이야기, 또는 빵을 많게 한 기적에서 보듯이 기적은 나눔에서 생긴다. 생명은 기쁨이며, 기쁨은 나누어야 더 커지고 많아진다. 그게 기적이다. ‘모인 이들 우리 끼리만’ 나누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범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치 잔칫집과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객들이 잔치 음식을 싸들고 가듯이, 우리도 또다시 나눌 기쁨을 싸들고 세상에 나아가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생명’이 되는 ‘음식’으로 내어 주신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나눔의 신비를 묵상 해 보자.

전주교구 정성만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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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생명의 빵은 나눔이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바로 예수님 자신으로 소개합니다.“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생명의 빵을 우리는 미사 때 영성체를 통해서 받아 모십니다.

교회에는 신자들이 미사에 자주 참석하고 영성체를 하라고 권고합니다. 영성체는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힘인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신자들이 노래할 때 사제는 성체를 조금 떼어서 성작 안에 넣으며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영성체는 예수님의 몸을 우리가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사제가 영성체를 할 때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키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하면 “아멘”하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몸이 되어서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나눔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의 성체가 쪼개어 져서 많은 신자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함께 나 누어 먹는 것은 바로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생명은 혼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 혼자 태어날 수 없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어야만 생명은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 자의 사랑과 엄마의 인내와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은 여럿이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혼자 살아가 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는 그 생명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나눔의 삶이 필요 합니다. 나 자신을 너와 나누고, 너 자신을 나와 나누고, 우리 자신을 우리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영성체는 나눔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빵 을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 전주교구 송년홍 타대오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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