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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낮은 곳에서 ‘생명의 빵’ 되어라
조회수 | 1,754
작성일 | 09.08.01
배고프지 않도록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전해 주는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제우스’ 신을 속인 죄로 카우카소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습니다. 인간이 추위로부터 따뜻할 수 있도록, 음식을 조리하여 안전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불을 전한 그의 사랑에 비하여 형벌은 참으로 끔찍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이같은 신화의 이야기인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화의 이야기일 뿐 실화는 아닙니다. 반면 예수님의 인간 사랑은 실제로 있었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 얼마나 배고파 굶주려 하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같은 지극한 사랑이 세상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사랑의 말씀인 성경은 잘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창세 1,29).

창세 이래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대지가 아무리 메마르고 척박하여도, 마치 오늘 탈출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이 결여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생수를 마셨듯이,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멈추어지거나 불가능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진실한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 같은 끊임없는 사랑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할 것입니다. 이 같은 가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보답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찾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받은 생명의 양식인 이 사랑을 찾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결코 세상적인 것 때문에 배고프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니라,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받은 그 생명의 빵을 이웃과 주님께 향한 나눔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갚아야 할 은혜

“당신은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지불한다. 가구를 사고 싶을 때 은전을 지불한다. 그리고 토지를 사고 싶을 때 금전을 지불한다.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당신이다.”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은, 영원한 생명의 사랑을 체험한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성인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거저 얻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의 값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함을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먼저 당신 삶의 표양으로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 놓는다는 것은 낮춤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를 로마의 ‘노바티아누스’는 창세기의 말씀으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람이 먹은 첫 양식은 나무에서 얻은 것들과 열매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은 결과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양심에 따라 몸가짐이 달라집니다. 양심에 꺼리지 않는 한, 죄가 없는 이는 나무에서 양식을 얻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지만 한때 죄를 지었던 인간은 땅에서 곡물을 얻기 위해 몸을 낮추게 됩니다.”

이를 생명의 빵을 얻게 되어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을 꿈꾸게 된 우리에게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4,22-24).

분명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빵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우리 또한 생명의 빵이 되어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이 살기 위하여는 가장 겸손의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먹이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낮추실 대로 다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빵인 성체의 신비이며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지상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양식, 그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다시금 우리는 세상의 음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먹고 나누어야 할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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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양식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는 무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할 때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라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영하는 주님의 성체는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통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마시므로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반 투안 추기경님께서는, 월남이 공산화되면서 옥중생활을 하실 때 밤 9시 30분이면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바로 그때 침대 위에 몸을 구부린 채 기억을 더듬어 미사를 봉헌한 후 모기장 밑으로 손을 내밀어 성체를 분배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는 성체께 밤에는 교대로 성체조배를 하였다고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매일 성체를 영하고 성체조배를 함으로써 옥중생활 13년 동안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십니다. 물질적인 양식이 육체에 효과를 주는 것처럼, 영성체는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인 생명 효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성체를 먹고 마시므로 실질적으로 영적인 힘과 육적인 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 온 마음과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도 다 죽어갔지만, 오늘 우리가 모시는 주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기에 전심으로 감사하며 모셔야겠습니다.

주님,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조용히 감실 앞에서 당신과 함께 합니다.

춘천교구 이흥섭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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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하느님의 일

오늘 복음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겪은 군중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은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것을 알고 예수님께서 혼자서 산으로 물러나셨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자신들의 뜻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음날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있는 곳에 머무르고 있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향합니다.군중은 예수님을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이 말씀에도 군중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같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바로전날 빵을 배불리 먹고도 새로운 기적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빵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응답하십니다. 군중은 믿지 못하고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다툽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어리석다’라고 느껴지시나요? 다시금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일은 무엇인가요? 레지오 활동을 통해 기도 하는 것, 성당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는 것, 이웃사랑을 위해자선을 실천하는 것 등.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의 가슴 아픈 성체훼손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 사건 안에서 기억에 남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여도 검색어 1위를 하기 힘든데 그깟 빵쪼가리 태웠다고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하루 종일 있다”라는 댓글입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처럼 이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수님께서 남기신 성체성사의 신비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단지 빵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안에 존재하는 신앙인에게 세상의 일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남과 북으로, 좌와 우로, 노와 사로, 남자와 여자로, 국민과 외국인으로 나뉘어진 갈등의 해결책은 싸워서 이기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 안에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일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성체성사의 신비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처럼 분열이 가득한 세상 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세상의 일은 하느님의 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는 신비를 세상 안에서 우리가 증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춘천교구 김영태 시몬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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