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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가 생명의 빵이다"
조회수 | 1,950
작성일 | 09.08.01
군중들이 예수님께 믿을 만한 근거로 기적이나 일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믿을만한 예로써 자신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제시합니다.
만나를 먹고 광야에서 살아날 수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는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만큼 절실하고 가장 믿을 만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기적을 보여준다면, 기꺼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만나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바로 당신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무엇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이 바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순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예수님께 믿을 만한 징표를 요구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믿음, 잘못된 믿음, 순수하지 못한 믿음을 탓하기보다
예수님께 모든 책임을 돌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 자체로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신 것인데도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기에 신앙생활이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것에서 신앙생활의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위로나 주변의 칭찬, 활동 속에 느끼는 인간적인 기쁨이
신앙생활의 기쁨의 참된 원천인 양 착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고,
어느 정도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인 기쁨이 주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자체의 기쁨과 의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면,
분명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문병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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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선물

빵의 기적을 보고 열광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야 할 단 하나의 올바른 이유는 썩어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어야 한다고 하시며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선포하신다. 이 생명의 빵은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의 최상의 선물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그 빵이 사람들을 살리시기 때문이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아르스의 작은 외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에는 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을 거요.” 이에 그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해야 될 일이겠군요.”

비안네 신부는 곧장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새벽 2시에 일어나 어두운 성당의 제대 앞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성무일도를 바치고, 묵상을 하고, 미사를 준비하고, 미사가 끝난 후에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정오까지 멈추지 않고 기도했다. 한 손에는 묵주를 들고, 감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다.

성체의 예수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바친 그의 열렬한 기도가 조금씩 사람들을 본당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그가 오기 전까지 이 성당은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제대와 감실은 버려져 있었고, 낡은 고해소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비안네 신부에게는 돈도, 재주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훌륭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렇다. 그러한 변화는 오로지 그분에 의한 것이었다. 성체의 신성하고 무한하신 힘에 의한 것이었다.

아르스의 감실로부터 뻗어나가는 그 힘이 신부의 활동을 통하여 숱한 영혼들에게까지 닿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은총을 받기 위해, 또는 도움과 위로를 얻기 위해 찾아 왔을 때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이 구하는 모든 것은 성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듣고자 하는 따뜻한 말들, 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적들…. 예, 그렇습니다. 성체 안에는 기적들까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 우리를 하느님다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당신 것으로 만드시고 당신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예수님께로 향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최상의 선물을 받고자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자.

채창락 요셉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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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훌륭히 선택된 친구가 만든다.

요한복음 6,24-35

군중은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에 와서 예수님을 만났다. 여기서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이르셨다.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 인자 人子)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을 상징한다. 이 칭호는 다니엘서 7,13-14에 나오는 신비스러운 인물을 가리킨다.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아버지께 받은 인류구원의 과업을 완성하고 부활하여 본디 계시던 하늘로 다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강조하는 칭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람의 아들로서 빵을 많게 하고 구원의 가르침을 베풀어 영생을 주는 분이라고 이르셨다. 그러나 군중은 영생 대신에 만나와 같은 썩어 없어질 물질적인 양식을 얻는 데 집착했다. 모세가 준 만나는 하늘에서 온 참된 음식이 아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고도 죽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베풀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닮아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분만은 내가 당신을 배신해도 늘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친구로 삼고 그분의 신비를 날로 더욱 깊이 깨닫고 그 신비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가는 사람만이 예수님과 우정관계를 보존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예수님이 영원히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새장에 갇힌 새는 밖에서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는 새들의 수명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장 안에 거울을 비치해두면 그 수명이 밖에서 자유롭게 사는 새들보다 배로 오래 간다. 거울속의 새를 친구로 여겨 고독하지 않고 먹이걱정이나 천적의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이는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사람이다”(F. Bacon).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요, 잘 웃는 친구는 희망을 가져다준다. 내가 망망대해에서 피곤할 때에도 친구는 옆에 있다. 친구는 나를 책망하고 어려울 때 내 짐을 자기 등에 업고 길을 가준다. 진정한 행복은 수많은 친구들이 아니라 훌륭히 선택된 친구들이 만들어준다(벤 존슨). 노후 행복의 열쇠는 친구이다. 이처럼 친구는 나의 건강과 생명과 행복과 자아실현에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친구는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다. 친구관계는 아름답고 소중하기도 하지만 힘겹고 어려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는 어렵지만 그분만이 나의 영원한 친구이시다.

박영식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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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문제”랍니다. 한 번 풀어보시겠습니까?

전쟁이 일어날 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① 이 날이 결혼식인 사람
② 로또 1등 당첨된 사람
③ 현역 군인
④ 8년 차 고시생
⑤ 국회의원

어렵습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신앙의 문제가 있습니다. “왜 종교를 갖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다음의 순서로 대답했다 하지요(2005년 6월 12일자 평화신문).이는 가톨릭 입교 동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가톨릭신문 2007년 3월 30일).

왜 종교를 갖게 되었습니까?
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67.9%)
② 복을 받기 위해서(15.6%)
③ 죽은 다음 영원한 삶을 위해서(7.8%)
④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7%)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온 군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예수를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굳이 이 좋은 날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를 찾아 성당에 오셨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예수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십니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그분을 애타게 찾고 그분과 함께 하고자 하십니까? 그저 이 땅에서 배부르고, 병 낫고, 사업 번창하고, 승진하고, 합격하기 위해……? 결국 이 땅에서 말하는 성공, 그것이 곧 썩어 없어질 양식인데도 오직 그것을 얻으려고 힘쓰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진정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 는 양식을 얻기 위함입니까?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빵만을 찾아 남은 인생 이리저리 헤매며 낭비하지 마시고, 생명을 위해 예수를 찾는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오 16,26)

대구대교구 노건우 루카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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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 마음을 알아다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말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의 처지를 너무나 모르는 철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생각했고 그렇게 믿어온 이 이야기가 사실은 루이 14세의 아내 마리 테레즈의 말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빵이 없다면 파이의 딱딱한 껍질을 먹게 하라.”

사람들은 묻고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사람들이 문제고, 해답은 예수님이십니다. (문제투성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해답예수님)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는 제가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고 싶은 여러분이 답하십시오.
“그분은 누구시고 또 그분께서 보내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대의 대답)”
“예, 맞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문제에 문제로 예수님을 마구 몰아세웁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우리 조상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우리도 만나 먹고 싶어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불쌍한 혼이 제병을 훔쳐다가 불에 태우고, 낙태를 금하는 교회를 조롱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비통한 마음에 가슴 아파하지 않을 이가 없을 입니다. 그 상처 깊은 영혼이 그 상처를 먹이 삼아 들어온 마귀의 속삭임, 쾌락에 몸을 맡겨 자신을 해하며 당신을 모독하는 데까지 이르는 과정을 예수님은 말없이 지켜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애절한 이 마음을 알면 눈물 흘리지 않을 영혼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공동번역 호세 6,6)

▦ 대구대교구 임재우 마르첼리노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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