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16.8%
[대구] 성체는 생명과 사랑의 음식
조회수 | 1,764
작성일 | 09.08.08
예수님께서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 장정의 수만 헤아려도 5천명이나 되는 허기진 군중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더욱 적극적으로 쫒아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위해 가실 곳을 미리 앞질러 가서 기다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게 적극성을 띠고 쫒아오는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 26)

그 말을 들은 군중들은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6,34)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사람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갔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음으로서 살 수 있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듯이, 이제는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새로운 만나로서, 당신을 먹는 사람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체를 영합니다. 성체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음식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되 그 음식을 잘 소화시켜야 합니다.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한다면 음식을 먹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체도 마찬가집니다. 성체를 영하면서 성체의 영양분을 제대로 소화 흡수하지 못하면 차라리 영하지 않는 만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체의 영양분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영양분은 사랑입니다. 성체는 인류의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과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하고 그 성체 속에 포함된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신토불이라 하여 제 철에 난 과일, 제 땅에서 난 채소, 농약이 아닌 유기농 비료로 지은 농산물을 찾습니다. 제 철따라 제 땅에서 난 과일과 채소와 농산물로 만든 웰빙 음식자체도 좋지만, 그 음식을 먹는 이의 마음도 참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음식물 자체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든 이의 정성을 먹고 사랑을 먹습니다. 또한 음식을 통해 그것을 같이 먹는 이들과의 우애와 나눔도 같이 먹습니다. 가족을 식구라 함은 그런 의미에서일 것입니다.

성체도 그런 자세, 그런 마음으로 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체를 영할 때마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내어 주시는 그 사랑을 먹고, 그것을 영하는 이들과의 우애와 나눔을 먹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고, 우애를 나눌 수 있는, 영혼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김정환 미카엘 신부
    
450 16.8%
환자 봉성체 중에 늘 읽는 복음이 바로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한 할머니께 병자성사를 드리면서 성체성사의 은총을 체험했던 날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그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영성체를 하고 나서는 어느 새 눈에 눈물이 고이며 눈이 반짝이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어느 새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얼굴로 변하고,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이 헐떡거리던 숨결이 조용히 안정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제로 체험했던 것입니다. 늘 봉성체를 하면서도, 어느새 그분의 현존을 잊어버리고 습관적으로 성체를 영해 주는 저를 회개시키시기 위함인 양 이렇게 환해지는 환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새삼 저를 반성하게 되고, 소름끼치는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또 다른 예수님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다른 이에게 내어주어야 합니다. 성당을 성당 즉 거룩한 집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성체의 형상으로 계신 예수님이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성체를 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이 현존해 계시는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 우리의 몸 자체가 예수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당에서 사람들이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듯, 우리 역시 우리의 이웃들이 편안히 쉬고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세상 안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모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삶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세상에 증거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현존하시지 않는 성전은 허물어야 하고, 그 사랑을 증거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존재 이유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성찬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실 빵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 역시 다른 이에게 먹히는 또 다른 빵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평화, 영원한 생명, 즉 사랑 그 자체를 다른 이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님처럼, 우리 역시 다른 이에게 이 예수님을 낳아주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하 늘에서 내려 온 살 아있는 빵 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진정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김종호 요셉 신부
  | 08.15
450 16.8%
[대구] 생명을 주는 빵

찬미예수님!
무더운 여름 건강히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하시고, ‘이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을 묵상하던 중 어느 날, 한 신자부부가 성당 근처 작은 동네 제과점에서 빵을 사서 드셨는데 빵에서 작은 철사가 나와서 입안을 찔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신자부부는 제과점에 전화를 해서 ‘우리는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하면 되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 부탁하고 조심해 달라.’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답니다. 제과점 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놀라고, 한편으로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이해하기 힘든 대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당연한 것 같은 다툼과 보상들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면서 그분들의 행동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가르치셨는지 엿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하지만 그것이 사랑과 희생으로 온전히 연결되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당연한 보상을 바라지만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는 용서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 되어 먹히기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유다인들에게는 이집트 다음에 사막이 있었지만, 여러분에게는 여정이 끝나면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성 요한 크리스토모 주교 ‘예비자교리’에서)라는 가르침처럼 유다인들은 광야에서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먹음으로써 영원히 살게 됨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4)“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 대구대교구 김대식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2018년 8월 12일
  | 08.10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원] 진정한 권위는 봉사와 사랑에서 
!   [광주] 첫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봉사하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   [부산]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   [인천] 그리스도교적 모든 권위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봉사적 권위이다. 
!   [서울]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청원  [1]
703   (녹) 연중 제29주일 독서와 복음 [섬기러왔다]  1537
702   [부산] 공수래 공수거  [5] 2339
701   [수도회] 자기 해방의 여정  [5] 1971
700   [수원] 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  [5] 2216
699   [대구] 내 깡통  [3] 2117
698   [군종] 부자와 하느님 나라  49
697   [서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6] 2139
696   [의정부] 소유와 나눔  [4] 2246
695   [안동] 부족한 것 하나  [2] 1077
694   [마산] 나눔의 훈련을 하자  [4] 1935
693   [인천] 거지는 ‘하느님의 배려’  [5] 2201
692   [전주] 영원한 생명  [2] 2138
691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1] 63
690   [춘천] 나눔 + 버림 = 영원한 생명  [4] 2346
689   [원주] 영적법칙  [1] 70
688   [대전] 그 놈의 돈이 뭐길래  [3] 2441
687   [청주] 부족한 한 가지  85
686   (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4] 1572
685   [수도회] 이혼, 그 뜨거운 감자  [1] 661
684   [원주] 휴가증  73
683   [부산] 창조 사업을 함께 하는 남녀  [5] 2196
682   [인천] 나비는 가비야운 것이 미(美)다.  [6] 2374
681   [서울] 남자의 감격  [6] 4365
680   [대구]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1] 2220
679   [마산] 기도의 보루(堡壘)로 진을 치자  [4] 2273
678   [안동] 사랑의 공동체 가정  [2] 2068
677   [수원]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의 완성  [4] 2466
676   [광주] 혼인은 새로운 탄생  [1] 2174
675   [전주]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간에 맺어준 사건, 혼인  [2] 91
674   [대전] 어린애 하나를 더 낳아 나눠 갖게  [2] 2235
673   [군종] 4주간의 탐색기간을 드리겠습니다  1936
672   [춘천] 최고의 기적  [2] 2370
671   [의정부] 둘이 하나가 되는 사랑  [3] 107
670   (녹) 연중 제27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3] 1657
669   [부산]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단  [2] 1822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