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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과부 헌금] - 평신도주일
조회수 | 1,991
작성일 | 09.11.06
프랑수아 조제프 나베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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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는 제 밀가루로 작은 빵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다.
열왕기 상권 17,10-16

그 무렵 [예언자] 10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히브리서 9,24-28

24 그리스도께서는,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곧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25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26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또는 12,41-44>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묵상

생활비를 다 바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바쳤습니다. 적은 돈으로 살고 있었기에 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희생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든 삶에 만족하면 부자이고, 만족하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여인은 만족하며 살았기에 바쳤을 것입니다. 삶을 저주하고 있었다면 바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부자입니다.

가난을 돈으로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입니다. 늘 일상에 쫓겨 사는 이들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바치는 것도 헌금이 됩니다.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알짜배기 시간’을 바치는 정성입니다. ‘주일’에 제일 중요한 일로 ‘미사 참여’를 정하고 만사에 앞서 실천한다면 복음의 여인을 닮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정성으로’ 바치는지 보고 계십니다. 돈을 내는 것만이 봉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주간 겪었던 억울함과 아픔도 함께 바친다면 봉헌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그분께서 주셨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살아 있는 봉헌이 됩니다. 매 주일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달라진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2009년 11월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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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외로운 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남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그녀가 오히려 자신의 생활비마저도 모두 하느님께 바친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녀는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며 보살펴 주신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아낌없는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헌금은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 그 헌금에 담겨진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물의 양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돈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시간 등 우리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적게 가졌기 때문에 하느님께 드릴 것이 궁핍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궁핍하기 때문에 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마음의 지향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매일미사 2012년 11월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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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는 이가 서 말, 과부는 은이 서 말.”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스라엘에서 과부는 울타리 노릇을 해 주는 가장을 잃었기에 고아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로서 대개 자선에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신뢰로 놀라운 결단을 내리는 과부들을 만납니다.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먹어야 할 마지막 끼니의 식량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엘리야 예언자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대접하였고, 복음의 과부도 자기의 그날 생활비를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엘리야 예언자도 그렇고 과부의 헌금을 받아 주시는 하느님 편에서도 그렇고, 얼핏 보면 하느님께서는 마치 가진 것 모두를 요구하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것을 요구하셨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생활비를 몽땅 봉헌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죠. 복음에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는 율법 학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는데, 과연 하느님께서 가난한 과부에게 가진 것 모두를 요구하시겠습니까!

율법 학자들처럼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길게 하고 긴 겉옷을 입고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 드는 이들은 제물도 많이 바쳤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도 그가 소나 양을 몇 마리나 바쳤는지가 중요합니다. 성금이나 후원금, 미사 예물을 봉헌할 때도, 많이 낸 사람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량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의미입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남에게 보이려고 내놓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와 진심을 담아 내놓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 매일미사 2015년 11월 8일
  |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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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한다고 합니다. 가뭄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과 기름으로, 죽기 전에 아들과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던 사렙타의 한 과부는 엘리야 예언자를 믿었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 궁핍한 가운데 하루 먹고 살 생활비를 모두 헌금함에 넣는 과부의 모습을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워 주신다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십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생존 욕구를 갖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살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인간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 생존의 문제라면 도덕 가치나 윤리 규범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도 도덕적으로 남에게 흠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윗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뽐내면서 기도하는 위선적 삶입니다. 예수님께 심한 질책을 받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결코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지금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선뜻 부정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자기 비움으로 하늘 나라의 문을 여시고, 죄와 죽음을 이겨 내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희망을 두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봅니다. 비록 현실은 어둡고 힘들지만, 그리스도인은 시편 저자의 기도가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아멘!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8년 11월 11일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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