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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조회수 | 2,205
작성일 | 09.11.13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분의 평신도가 계십니다. 저와 같은 본명을 갖으셨던 토마스 형제님이십니다. 한 달 전에 그 분의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토마스 형제님의 선종 소식에 눈물을 흘렸고, 장례미사 때 정말 많은 분들이 그 분과의 마지막 시간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제가 토마스 형제님을 뵌 것은 본당에 처음 왔던 1년 전입니다. 토마스 형제님은 매일 성당에 나오셔서 아침 기도를 바치시고 미사 전에 성경을 읽으셨던 분, 손에는 하도 읽어서 너덜해진 성경을 끼고 계셨던 분, 낡은 곤색 점퍼 차림으로 담배와 커피를 좋아하셨던 분, 본당에서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신자들이 있으면 상담도 해주시고, 격려도 질책도 잘 해주셨던 분, 본당을 사랑하셨고 성경 공부 봉사가 삶의 전부이셨던 분이셨습니다. 유명 영화배우가 일본에서 ‘사마’라고 불리운 것처럼, 본당에서 성경 공부하시는 신자분들은 그 분을 으레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저도 토마스 형제님을 ‘선생님’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본당의 성경 공부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셨고, 많은 신자분들이 성경 공부에 맛들일 수 있도록 3년 과정의 특강도 준비해주셨습니다. 제가 토마스 형제님과 함께 나누었던 마지막 이야기는 본당에 성경 대학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더 이야기 하자며 마지막으로 자판기 커피랑 담배 한 대씩 피우고 헤어졌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었으니까요. 다음 날 선종하신 것입니다. 절대 아프시지 말라고, 아프시면 우리가 함께 세운 계획 저 혼자서는 못하니 절대 아프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드릴 때마다 ‘전 괜찮아요. 신부님 건강이 걱정이죠. 신부님,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미소지으셨던 분이셨는데 말입니다. 함께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조금 만 더 토마스 형제님의 건강을 챙겨드렸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토마스 형제님이 저에게 남겨주신 것은 함께 준비했던 3년 과정의 성경 특강과 본당 성경 대학 초안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느님 곁으로 떠날지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때’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고, 어쩌면 그것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를 위해 준비하며 살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이 ‘그 때’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신앙인은 ‘그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때’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기다림은 그러한 준비를 위한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때’를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러면 ‘그 때’가 오면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그 때’를 다시 준비할 것입니다.

저도 먼저 가신 분이 남겨둔 그 초안들을 다시 정리하며 저에게 다가올 ‘그 때’를 준비하려 합니다.

이재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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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말씀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29-30)

창조된 모든 것 안에는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끝을 향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 시작된 모든 것 안에는 끝이 있으며 그 끝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삶도 예외는 아니다. 영원하지 않다. 60년이 지나고 70년이 지나면 한 세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했어도 자기 끝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유한한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오늘 예수님은 종말에 관해 이런 말씀을 들려주신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이 다 없어질지라도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만이 영원히 사는 방법이요, 죽어서도 죽지 않고 천국의 삶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 뜻밖에 없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젊음도 건강도 재물도 명예도 죽음 앞에서 인간을 지켜 줄 수 없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사람이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카 12,15).

누구든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느님의 뜻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영원한 행복을 준비하는 가장 최고의 지혜다.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열심히 오늘을 산 결과는 반드시 내일의 영원한 우리 운명을 만든다.

아무리 힘들고 갈등스러운 순간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고, 하느님의 뜻에 충실을 다하는 복된 우리 신앙의 모습이기를 기도한다.

의정부교구 최건봉 신부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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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호시우보

벌써 2015년 달력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력으로도 이제 두 주를 남기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보내며, 오늘 들은 복음 말씀은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언제인지 모르는 그날,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을 떨치며 이 세상에 올 것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전조현상이 일어날 터인데 너희는 그것을 잘 알아차리도록 항상 깨어 있어라.’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종말은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희망의 날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도 모르는 어느 날입니다. 때를 모르는 종말을 잘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미’ 와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를 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호시우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올린 한자성어입니다. ‘호랑이의 눈으로 보고, 소처럼 걸어가라’라는 뜻입니다. 호랑이는 멀리 봅니다. 그리고 예민하게 봅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먹잇감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눈을 가졌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이러한 ‘호시’가필요합니다. 그분이 오시는 작은 종말의 전조를 볼 수 있는 호랑이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표징들을 주십니다. 수없이 많은 일들과 관계 속에서 하느님은 나에게 말씀을 건네고 계십니다.

붉은빛의 가을은 나에게 겸손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풀 죽은 친구의 표정은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시 돋친 말은 나를 내면의 성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호랑이의 눈으로 ‘우보’ 해야 합니다. 황소처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우보천리’라 했습니다. 느린 황소의 걸음이지만 멈추지 않는 걸음은 천리를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리의 끝자락에 구름을 타고 오시는 희망의 종말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박병주 세례자 요한 신부 / 2015년 11월 15일
  |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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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장례미사를 봉헌하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과 마주할 경우가 있습니다. 노환도 아니고 투병생활을 한 것도 아닌 갑작스럽게 맞아한 죽음이 그러합니다. 물론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그러한 이유는 화해와 용서뿐만 아니라 작별인사마저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는 고인당사자만이 아니라 유가족, 그리고 고인과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장례미사의 강론은 저에게 있어 참으로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문득 잠자리에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내일 일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안되는 신부의 삶이지만 그동안 내 의도와 상관없이 꼬여버린 인간관계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던 일들,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신 예수님을 닮은 신부가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사목하면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사람들을 다그쳤던 수많은 과오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용서도 화해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가 종말론적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내 욕심을 채우기만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주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마르 12,31-32)입니다.

사람(신자든 아니든)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같은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의 죽음은 쉽게 이해하면서도 정작 나의 죽음은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치 자기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처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마르 13,32). 당연한 것 같은 내일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잘 지내다가 오늘 싸우고 내일 당장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혹여나 그동안 서운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소원한 관계가 있다면, 오늘“잘 지내니”라고 문자 한통 보내 보면 어떨까요? 물론 저도 막상 그렇게 하려니 용기가 부족하여 잘 되지 않습니다. 화해와 용서의 조그마한 움직임도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이제 전례력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왕으로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새롭고 홀가분하게 대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번 한주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양종석 베다 신부 : 2018년 11월 18일
  |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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